“비판과 대안 제시, 교총이 ‘역할’ 해내야”

2010.08.05 14:45:56

▨ 민선교육감 시대, 교총은 무엇을 해야 하나

6·2 지방선거에서 사상 첫 동시직선으로 선출된 전국 16개 시도교육감(광주 제외)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본지는 민선교육감 시대 한 달 동안 나타난 교육현장의 변화와 개혁, 혼란, 갈등 양상을 짚어보고 향후 교육현안에 대한 전망을 가늠해보는 기획 좌담을 4일 마련했다. 좌담에는 안양옥 교총회장을 좌장으로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 강선보 고려대 사대학장이 참여했다.

안양옥 = 6·2 지방선거에서 곽노현, 김상곤, 민병희, 김승환, 장만채 교육감과 장휘국 당선자 등 6명의 진보 성향 교육수장이 당선되면서 지난 한 달은 정말 시끄러웠습니다. 그 첫 예가 지난달 13~14일 전국적으로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서울 등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교육청에서는 대체학습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문을 몇 차례에 걸쳐 내려 보내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또 지난달 19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지역 유·초·중·고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한다는 보도 자료를 냈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오장풍 사건’을 계기로 핵심 공약이었던 ‘학생인권조례안’을 밀어붙이기로 단단히 결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달 30일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의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진보 교육감들의 공통 공약사항인 ‘무상급식’ 문제는 9월 이후 논란의 핵으로 떠오를 예정입니다. 진보 교육감들의 일련의 행보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강선보
= 진보 교육감들의 이러한 행보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첫째, 진보교육감을 지지했던 조직들의 강력한 요구입니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외면할 경우 이 조직들의 비판에 직면하거나 앞으로 교육감의 재선 또는 삼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큽니다. 예를 들어,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학부모 선택권 보장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을 때에, 전교조에서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둘째,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진보교육감들이 자신들이 공약했던 교육정책들을 짧은 시간 내에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모 신문사 기자가 지적하였듯이, 진보교육감들이 각종 이슈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서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효과를 노리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효종 = 동감입니다. 이들의 행태는 한마디로 말해 자신들의 진보이념을 앞세운 ‘교육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교육감들의 행태를 보면 선거에 당선된 자신들의 입지와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교육감들이라면 선거에 의해서 당선되었다는 지나친 자부심으로 말미암아 “크게 거칠 것이 없다”는 오만한 마음이나 권력의지를 표출하기보다는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문제의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함께’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풀어가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선출된 권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독불장군’과 같은 오만한 마음으로 중요한 영역에 자기사람과 자기편 사람으로만 채우는 이기주의적인 행태를 버리고 일찍이 소크라테스나 페스탈로치가 한 것처럼 교육현장의 낮은 데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안양옥 = 좋은 지적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보 교육감들의 정책적 흐름이 교육적 측면에서 바람직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벌전면금지와 학생인권조례안 제정,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등 일련의 정책들이 가진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강선보 = 진보교육감의 정책들이 모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의 인권보호라든가 인권의식의 고취 등과 같은 순기능을 가진 정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 없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존의 정책을 뒤엎는데서 오는 역기능이 현장에서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역교육의 수장인 교육감은 당선 즉시 이념을 떠나 중립적인 행정가로서 자리매김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선거공약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성이 없는 무리한 공약이라면 즉시 수정,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의 경우 현재 많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물론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은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이념에 부합된다는 순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보편적 복지가 선택적 복지보다 반드시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상 급식을 전면 시행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마련되어야 하는 데, 국가의 재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전면 무상급식의 시행은 교육적 가치가 있는 다른 활동들의 희생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을 오히려 부유층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 모순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선출된 권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오만한 자세 버려야
“체벌, 학생인권조례안이 ‘공교육 정상화’의 최우선 순위인가”

박효종
= 취임 한 달 동안 내놓은 교육정책들을 보면서 ‘교육’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우리 교육현장은 ‘고르돈의 매듭’처럼 누구도 단칼을 휘둘러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많은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과연 그 가운데서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안과 같은 것들이 최우선 순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공교육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저는 실제로 그들 교육감에게 우리의 교육현장을 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는, 이른바 ‘교실붕괴 현상’이 극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내나 자기규율, 절제 등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공교육과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학생들에게 의무와 도리를 가르치는 것은 소홀히 하는 한편 권리와 권리의식만 가르치면서 마치 그것을 ‘교육천국’으로 만드는 냥 선전하는 것은 교육에 관한 포퓰리즘이며 극심한 불균형적 사고입니다. ‘권위’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학교교육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권리’만 배우고 ‘의무’와 ‘책임’을 배우지 못하며 ‘평등’만 내세우고 ‘권위’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런 학생들은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원만한 인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안양옥 = 그렇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정책을 둘러싸고 교육청과 정부,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이 대안 없이 계속된다면 우리 교육은 큰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을 예상하고 취임 당시 시민사회단체, 정부, 국회 등 모든 사회구성원을 아우르는 정례적 협의체를 구성 정기적으로 운영해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의장직을 맡은 나근형 인천교육감도 “회장으로서 지방교육 현안을 정부에 전달하도록 협의회 활동을 강화하고 법정기구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갈등을 풀 해결 방안,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효종 = 교육정책을 둘러싼 혼란의 피해자는 우리 학생들이고 학부모며, 결국은 교육현장입니다. 현장이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고 갈등과 반목의 장이 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선 교육감들이라도 “나는 선출된 교육감이기 때문에 내식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는 소통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보혁교육감들 사이에 또 정부와의 관계에서 의견이 다르고 추진하는 정책이 다르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같은 교육공동체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한다면, 차이와 이견을 해소할 구성원들 사이에 긴밀한 협의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상황에서 조율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견과 불협화음, 무질서를 해소하고 조율할 협의체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취임한 직선 교육감들도 이러한 필요성을 직시해 자신의 권한이 침해되지나 않을까하는 소아적 기우를 버리고 교육대의를 위해 협의체 구성에 흔연히 나서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육감은 당선 즉시 이념 떠나 중립적 행정가로 자리매김해야
대표성 갖춘 정례적 협의체 바람직, 토론 통해 합의점 도출을

강선보 = 교과부와 진보교육감 모두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만을 관철시키려 하기 보다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과부는 경쟁 중심의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에 진보교육감들은 선거에서 자신들을 지지했던 주민들 보다 지지하지 않았던 주민들이 더 많았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안 회장님께서 제시한 정례적 협의체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최근 행정학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가 서로 협력하는 협치(governance)가 강조되고 있고, 이 협의체를 통해 소통이 활성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협의체는 다수결과 같은 방식으로 쟁점 사항들을 결정하기 보다는 현안문제나 주요 쟁점들에 대해 여러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하고 협의함으로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할 경우 전문가들의 자문과 토론의 장도 마련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구성원 중 시민사회단체, 특히 학부모단체의 대표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직업인의 양성이고 학생들, 특히 전문계고교 학생들의 진로를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기업계의 대표도 이 협의체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안양옥 = 진보 교육감들은 취임 일성으로 교총과 전교조를 함께 아우르겠다고 천명했지만 현재 벌어지는 많은 상황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인수위원회 구성 시 전교조 등 진보진영 일색으로 구성했고, 최근 인사위원회에서도 그런 양상입니다. 한 마디로 선언 따로 행동 따로인 상황인데요. 이런 형국을 풀어나가기 위한 교총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강선보 = 학생을 위한 정책 수립에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가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합리적인 진보 측의 주장에는 공조를 할 수 있는 대범함도 지니면서,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인 진보 측의 주장에는 논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해 학생과 학부모들 및 시민단체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안적 정책개발이나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아까 안 회장님이 제시한 협의체 운영이라든가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위원회의 운영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총의 활동과 성과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홍보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효종 = 교총은 지금과 같은 혼란 상태에서 교육계의 균형과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한국교총에 부여된 시대적 소명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여기저기서 나올 수 있는 교육정책에 대한 문제에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입니다. 교육은 단순히 교육감과 교육현장, 학부모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 크게는 백년대계에 관한 우리 공동체의 문제, 국민적 관심사임을 감안해 교육과 국민들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소통의 채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교총도 과거의 교총의 역할과는 다른 새로운 역할을 시대와 국민들로부터 부여받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안양옥=오늘 주신 좋은 말씀, 한국교총에 부여된 소명을 제대로 실천하고 이루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혜정 hjkara@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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