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들이 함께하면 외교의 ‘판’ 바꿀 수 있어”

2016.07.21 19:21:50

초대석> 박기태 반크 단장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민간 외교관’
우리 역사 바로 잡으려면 동참 절실

세상 바꿀 10대 기르는 곳, 교실
반크 활동·자료 수업에 활용했으면

“해외 사이트서 오류 내용 찾아보고
어떻게 대처할지 함께 생각해볼 것
영어로 수정 요구하는 활동도 추천”


안부를 채 묻기도 전에 그의 최근 일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피로 가득한 얼굴로 “하루도 쉴 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엄살’이라는 걸 금세 알아챘다. 일본의 역사 왜곡 행태를 지적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최근 활동에 대해 설명할 땐 말이 빨라졌다. 잘못 표기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10대들의 활약을 소개할 때는 미소가 떠올랐다. 10여 년 전 열정으로 똘똘 뭉친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박기태 반크 단장 이야기다.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는 1999년 설립된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이다. 초·중·고등학생, 대학생들과 함께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홍보한다. 온라인 펜팔로 시작해 한국 역사 바로 알리기·동해 표기 오류 바로잡기 사업, 한국 홍보 자료 배포, 사이버 외교관 교육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박 단장은 “10년 넘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 품었던 마음과 꿈은 변함없다”며 “반크 활동은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력하고 있는 활동이 궁금하다.
“10년 이상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꿈과 비전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트렌드가 바뀌었다. 우리 역사와 독도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반크가 하고 있는 활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더라. 과거에는 반크 자체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소년·대학생을 교육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반크를 몰라도 누구나 한국과 독도를 홍보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대상 활동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활동 영역을 넓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더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최근 일본은 시도 때도 없이 독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마치 사실인양 전 세계에 퍼트리고 있다. 올해 들어 더욱 심해졌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에 대해 한국이 불법적으로 점유한 지역이라고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분량을 늘리는 걸로도 모자라 시험 문제에도 출제했다. 독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나라를 택하라는 식이다. 일본 사람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시스템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을 두고 야만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 한국은 불법을 저지르는 나라, 한국인은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영토 문제는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다. 반크의 활동만으로 이를 바로잡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학교를 대상으로 어떤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가.
“반크가 했던 활동을 모든 수업과 학교 프로그램에 접목, 운영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전 국민이 글로벌 홍보대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교육청에서 역사·지리 교사, 교감, 교장을 대상으로 연수를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이 해온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를 설명한다. 또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고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학생과 교사,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광복절을 앞두고 준비 중인 행사가 있는지.
“가장 피하고 싶은 질문이다. 광복절, 3·1절이 다가오면 많이 하는 질문이지만, 특정한 날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아 아쉽다. 광복절, 3·1절은 모든 국민이 하나 되는 날이다. 이상하게도 이 날만큼은 과거로 돌아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족을 생각하더라. 하지만 다음 날이면 금세 그 마음과 열정이 사그라진다. 특정한 날에만 치솟는 열정 그래프가 어떻게 하면 수평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이다. ‘반짝’ 관심을 분산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새롭게 만든 홍보물을 일선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교실에 붙여놓고 늘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또 반크 활동에 열심인 청소년 70여 명을 선발해 함께 독도에 갈 예정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독도에서 통일까지 100% 완전한 대한민국을 향하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려고 한다.”

-슬로건의 의미가 궁금하다.
“반크를 두고 ‘21세기 광복군’이라고 말한다.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던 광복군과 비교하는 것이다. 과거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전, 먼저 독도를 빼앗았다. 러일전쟁 때는 독도를 발판 삼아 아시아를 정복하려고 했다. 독도를 지키는 일은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일종의 ‘방파제’인 셈이다. 남과 북이 여러 문제를 두고 다퉈도 독도 문제만큼은 예외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반크 활동을 통해 독도를 지키는 동시에 통일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복절 하면 반크, 반크하면 가수 김장훈 씨가 떠오른다. 최근 독도에서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두기도 했다.
“김장훈 씨가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반크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부터라고 하더라. 반크를 좋아하게 돼 독도 사업을 후원하다 보니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었다. 반크가 김장훈 씨의 활동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독자적인 행보로 보는 게 맞다. 얼마 전 독도에서 이세돌 씨와 바둑을 두는 퍼포먼스를 통해 바둑 애호가들이 독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키워드인 바둑을 독도와 연결시킨 건 그 분의 능력이다. 우리도 얼떨결에 조명이 된 것 같다. 100점 만점에 보너스 점수까지 주고 싶을 정도로 반크 홍보대사로서 역할을 잘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앞서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스마트폰만 이용하면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지금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때다. 교과서에 있는 역사를 배워 시험 문제를 푸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 기록된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반크에서 활동하는 십대는 브리태니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 잘못 표기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고, 또 바꿨다. 과거 교수, 외교관들이 했던 일들을 해낸 것이다. 십대가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곳이 바로 학교와 교실이다. 우리 학교, 고장, 나라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입시와 취업을 넘어 교육의 본질과 목적을 추구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원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마다 당부한다. 교사는 많게는 수천 명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가르친 제자 가운데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재가 나오지 않으리란 법 없다고. 이 학생들이 훗날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국가를 위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를 주제로 수업을 계획하는 교사가 적지 않다.
“하루를 정해 특별 수업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깊이 있는 수업이 불가능하다. 보통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일본의 입장 차이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끝나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걸 알지만, 다른 나라의 인식은 다르다. 문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를 직시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반크에서 제작한 홍보물을 활용하면 모든 교과와 독도를 연계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우선 학생들에게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코리아 히스토리(korea history)’ ‘독도’ 등을 검색하게 한다. 한국의 역사와 독도를 소개한 외국 사이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부분도 눈에 보일 거다. 검색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해외 교과서를 수업 자료로 활용해도 된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 일본의 식민지라고 열거한 내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직접 써보는 활동도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영어로 번역해 해당 출판사, 사이트에 수정을 요구하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역사·국어·영어 수업이 한 번에 가능해진다. 반크 홈페이지(diplomat.prkorea.com)와 활동 사례, 프로그램을 담은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 외교관’ 사이트(wearethe.prkorea.com)를 참고하면 된다.”

-민간단체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과 대처도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각종 문제가 산재해 있다. 이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반크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함을 내보일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독도 관련 정책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살펴야 한다. 정부에서는 종종 해외 유명 교수와 출판사 관계자 등을 초청해 관련 컨퍼런스를 열곤 한다. 바람이 있다면 여기에 쓰이는 비용 일부로 청소년과 청년, 교사들을 지원했으면 한다. 우리나라 외교관은 2000여 명이다. 일본은 5000여 명, 중국은 7000여 명이다. 일본이 자국을 홍보하는 데 쓰는 비용은 우리나라의 10배에 이른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맞는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 일본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외교관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외국 학교 교사들과 교류할 때, SNS로 다른 나라 학생들과 소통할 때,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등 민간 외교관으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반크의 행보는.
“지금 반크가 하고 있는 일은 왜곡된 100년 전의 역사를 제대로 되돌리는 일이다. 때문에 앞으로 100년을 더 노력해야 뭔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정보통신혁명 덕분에 100년 걸릴 일을 10년 만에 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민간 외교관이 될 수 있지 않나.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외교의 판을 바꾸고 싶다. 청소년들에게, 교사들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확신한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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