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회 임원 선출, 이렇게 한다

2007.03.21 15:25:00

올해 분교로 와 처음 학교행사로 계획한 게 어린이회 임원 선출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선거는 참여할 때 더 빛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적은 인원이라 임원 선출에 소홀하기 쉬운 분교의 어린이들에게 선거 과정을 자세히 가르쳐주기로 했다.

벌써 20도 넘은 얘기지만 학급 회장은 무조건 남자를 선출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여자를 학급 회장으로 선출해 곤욕을 치른 아픈 추억이 있다.

어린이회를 담당한 선배가 학급 회장 선출 조건에 남자를 빼고 1명이라고만 쓴 것을 그 학교에 처음 근무하게 된 내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게 발단의 시초였고 내가 담임을 했던 5학년 2반 어린이들은 여자를 학급회장으로 선출했다.

차점자였던 남자 어린이의 엄마가 '어떻게 여자를 회장으로 선출할 수 있느냐?'고 관리자들에게 강력히 항의를 했고, 잘못이 없던 나는 임원 선출을 다시 하라는 관리자들의 권유를 무시하면서 골치 아픈 교사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강력히 항의했던 학부모가 훗날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그 사건이 60년의 전통만 자랑하던 학교에 다른 학교보다 앞서 여자 회장을 선출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놨다.

본교에서 계획한대로만 하면 문제도 없고 편하겠지만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분교의 사정에 맞게 수정해 새로 결재를 맡았다. 3월 14일 학급 임원을 선출하고 17일에는 전교 어린이회 임원을 선출하기로 했다. 각 학급에서 이뤄지는 학급 임원 선출과 달리 전교 어린이회 임원 선출은 계획이 철두철미 해야 한다. 진행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기면서 지켜봐야 하니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복잡하고 엄두도 나지 않게 되어 있다.

혹 초등학교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임원을 선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산이다. 어린이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대충이라는 말이 통할까? 세부사항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통령에서부터 지역의 일꾼을 뽑는 어른들의 선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계획한대로 선거관리위원회도 구성하고, 선거일과 선거기간,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가 당선하는 선출방법을 공고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출마를 유도하려고 추천 인원도 적게 했다. 하지만 후보자 등록을 마감하고 보니 관심을 보이던 몇 아이들이 출마를 포기하며 회장과 부회장 후보로 2명씩 출마를 했다.

선거에 참가하여 투표할 수 있는 권리인 선거권을 가진 어린이가 3학년에서 6학년까지 총 19명이고,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인이 될 수 있는 권리인 피선거권을 가진 어린이가 회장과 부회장을 각 1명씩 선출하는 6학년이 5명ㆍ부회장을 1명 선출하는 5학년이 7명에 불과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또 너무 순진해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기도 했다.



후보로 등록한 어린이들을 불러 공정하게 기호를 추첨하며 어른들의 선거는 ‘국회에 의석을 보유한 정당은 다수의석순, 무의석 정당은 정당명칭의 가나다순, 무소속은 후보자성명의 가나다순으로 정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속속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지만 공고를 통해 회장, 부회장 후보자를 알렸다.






각 후보자들이 제작한 벽보는 지정된 장소에 선거운동 기간에만 게시하고, 선거도우미로 등록한 어린들만 후보자를 도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지도했다. 벽보가 게시되고 후보자가 도우미들과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쉽게 과열되는 도회지 아이들의 선거와 달리 조용히 이뤄졌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불법을 저지르는 후보자나 벽보에 흠집을 내는 어린이도 없었다.

선거권자가 적고 마땅한 곳이 없어 급식소가 소견발표와 투표를 하는 장소였다. 그래도 청원군선거관리위원회에서 어른들이 선거 때 사용하는 기표소와 기표용구, 투표함을 대여해줘 어린이들이 실감나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제대로 투표장의 모양새를 갖췄다.



투표소에 입소해 선거인 명부에서 본인 여부를 확인한 후 투표용지를 수령하며, 기표소에서 기표용구로 기표(㉦)하고 투표함에 용지를 투입한 후 퇴소하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해 알려줬다. 기표소에 있는 기표용구로 기표하지 않으면 무효표가 되고, 투표한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투표용지를 한번 접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왜 소견발표를 잘 들어야 하는지, 현명한 선택이 중요한지를 지도하고 소견발표를 듣게 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쑥스럽고, 집에서 연습한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겠지만 후보자들의 표정이 밝아 보기 좋았다.

어린이들이 차례대로 참관인에게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선거인명부에 손도장을 찍은 후 투표용지를 수령하도록 했다. 어른들은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선거인명부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해도 된다는 것도 알려줬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투표를 하는 순간은 진지하다. 선택이 쉽지 않은지 오랫동안 기표소에서 망설이고 있는 아이도 있다. 어린이들의 수가 적기도 했지만 교육한대로 잘 따라줘 순조롭게 투표를 끝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가까운 곳으로 투표함을 이동했지만 투표관리관이 투표마감시간에 투표종료를 선언하고 참관인 입회하에 투표함의 투입구와 자물쇠를 봉쇄하고 봉인한 후 개표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지도했다. 또 개표장에 투표함이 도착하면 이상 유무를 확인한 후 선거관리위원장에 의해 개함을 하고 집계가 끝나면 선거관리위원장이 후보자별 득표 집계를 공표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선거와 같은 방법으로 투표함을 열어 개표를 했다. 선거권자가 19명이라 개표가 쉬웠다. 회장은 11표와 8표, 부회장은10표와 9표로 개표결과가 가왔다.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였고 막상막하였다.

이번 어린이회 임원 선출을 통해 우리 도원분교 어린이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을 찍는’ 연습을 제대로 했다.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선거 과정을 지도했던 나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부르짖는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과 민주정치 발전’에 일조를 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으로 다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선거든 당선자와 낙선자가 있기 마련이다. 당선자와 낙선자를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면 후유증도 크고 그만큼 사회악이 된다. 선거에 참여했던 어린이들이 결과에 승복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모습도 가르쳐야 한다.

당선자는 선거 공약을 하나하나 지키면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낙선자를 배려하고 베푸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낙선자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당선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당선자나 낙선자가 그것을 알게 하고 실천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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