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우리 반 아침 풍경
아침 7시 50분, 나보다 먼저 와서 금성초 샛별 도서관에서 독서하는 이채은, 이채린 자매. 아침 일찍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가 데려다 주고 가십니다. 별 일이 없는 한 2년 동안 늘 그래 왔습니다. 가끔은 승현이, 현우 형제가 일등이 되기도 합니다. 작년에 1학년 담임을 하며 아침마다 필자랑 1등 경합을 벌인 승현이도 아침독서 대장입니다. 역시 아침 일찍 출근 하시는 맞벌이 부부인 까닭에 학교에 일찍 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그곳이 도서관입니다.
요즈음은 1학년 우리 반 8명 중 4명이 이렇게 일찍 도서관에 와서 자리를 잡습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합니다. 학교 통학버스가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야 하니, 등교 시각이 빠르지 않은 아이들 4명은 8시 40분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일단 도서관에서 만나는 게 우리 반의 규칙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단 5분이라도 책과 만나게 하고 싶은 저의 희망 때문입니다. 도서관에서는 소리 내지 않고 목례 하는 거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혹은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그대로 자기 자리로 가서 책을 읽어도 된다고 해두었습니다.
3월 26일 아침에는 축구선수가 꿈인 우리 반 기탄이가 내 곁에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속삭였습니다. 그 순간의 행복함이란! 목소리도 우렁차고 재기발랄해서 늘 주변이 시끌벅적한 아이인데 도서관에서만은 선비처럼 차분합니다. 책은 전날 미리 골라놓고 아침에는 고르러 다니지 않기, 책장을 조용히 넘기는 방법, 의자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더니 꼭 그대로 하는 예쁜 모습!
이런 맛에 1학년 담임을 하는 지도 모릅니다. 금방 좋은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느 학년보다 빠르기 때문입니다. 8명 중에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가 3명이나 됩니다. 글씨는 몰라도 아침 독서에 몰입하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그림책을 보고 상상하며 혼자 웃기도 하고 영어 동화를 보며 즐거워합니다. 독서를 문자 읽기로 한정하는 것은 어른들의 편견입니다. 글자를 모르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며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를 시켜보면 그 상상력에 깜짝 놀랍니다. 그림 밑에 몇 줄 붙어 있는 글보다 훨씬 풍부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오히려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이 작가의 글에 묶여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비한다면, 상상력을 표현하는 면에서는 더 우수합니다.
학교마다 문자미해득 1학년 학생들, 공부상처에 시달려
개정된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입학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합니다. 8명인 우리 반의 경우 한글을 읽을 수 있는 학생이 5명, 5명 중 어설프지만 읽고 쓰기까지 가능한 학생이 2명, 떠듬떠듬 읽는 아이는 3명, 한글 미해득 학생은 3명에 이릅니다. 40% 학생이 입문 단계부터 한글 미해득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초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 개정에 참여한 실무진들이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한글 해득률은 70%로 가정하고 개발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깨우치고 들어와야 한다는 다급한 논리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출발점이 다른 교육을 제도적으로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잠재적으로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문자미해득 문제는 학습부진의 시발점이자, 공부를 싫어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안겨주고 시작하게 한 것입니다. 공부란 즐거워야 하는데 3월 적응기만 지나면 바로 긴 글을 접해야 하는 1학년 학생들의 두려움을 간과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발달 수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문자 해득의 속도도 다 다릅니다.
교사로서 교단 경험이 많은 필자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이 문자해득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8명을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공부를 진행하면 속진하는 학생과 따라가는 학생 사이의 간극으로 나도 아이들도 즐겁지 못합니다. 글을 잘 읽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게 즐겁다며 새로운 것을 배우자고 조릅니다. 반면에 글을 모르는 아이들은 "선생님, 힘들어요, 몰라요!'를 연발합니다. 학생수는 8명 뿐이지만 개별학습과 수준별 학습을 하려면 8개의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고민 끝에 8명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한글 미해득 학생을 중심에 두기로 한 것입니다. 내 몸도 아픈 곳이 중심이듯, 교실에서도 아픈 곳 힘든 곳을 먼저 돌보는 것이 담임인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런 내 마음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예쁜 우리 1학년! 선생님이 고민이 있어요. 그런데 이 고민은 여러분이 도와주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거랍니다. 선생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네! 선생님!"
약속이나 한 듯 모든 아이들이 큰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선생님 고민은 바로 아직 한글을 잘 모르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공부랍니다. 한글을 다 아는 친구들과 똑같이 공부를 하면 그 친구들이 힘들고 재미없어 한답니다. 공부는 잘하고 싶은데 읽지도 못하고 쓰는 것은 더 힘들기 때문에 속상하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선생님, 저는 책을 읽어줄래요!"
"선생님, 저는 00 짝이 되어서 도와줄래요!"
"선생님, 저는 글자를 모른다고 놀렸는데 그러지 않을게요!"
"우와! 우리 1학년 친구들이 정말 아름다운 생각을 많이 하네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선생님도 생각한 방법이 있어요. 아침독서 시간이 끝나고 1교시에는 글자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선생님과 함께 재미있는 글자 게임으로 공부하고, 다른 친구 5명은 조금 더 어렵지만 재미있는 공부감을 줄 거예요. 빨리 끝낸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요. 어때요? "
"네, 좋아요! 친구들이 빨리 한글을 알아서 같이 공부하면 참 좋겠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 반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서 상처 받는 아이들 중심으로 하되 다른 아이들은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수준이나 그 이상을 수행할 수 있는 학습지나 프로그램을 접목시키는 이중구조로 국어 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도입한 후로, 글자 공부 시간마다 힘들다고 울거나 소리 지르고 돌아다니던 아이가 웃으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글자를 모르는 세 친구가 선생님과 편이 되어 글자 게임도 하고 아는 글자로 블럭도 쌓고 시합도 하면서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던 순간은 나도 좋아서 쉬는 시간에 그 아이 어머니께 전화로 알렸습니다.
"00엄마! 드디어 00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집에 오면 안아주고 칭찬해 줄게요!"
배우는 학생도 힘들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힘든 이러한 모순을 지닌 우리나라 개정 교육과정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1학년 시작부터 공부상처를 받게 하여 아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게 하고 좌절과 불안감을 갖게 하는 일이 국가가 할 일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제도가 삶을 지배하는 게 현실입니다.
교육과정 개발자들은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쉽다는 한글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추상적인 그림입니다. 서너 살에도 깨우친다는 한글이지만 어떤 아이들, 특히 난독증 아이들에게는 난해한 추상적인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일찍 깨우치고 입학한 아이들의 경우도 쓰기에 들어가면 심각합니다. 손 모양이 제대로 잡힌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손가락 근육이 발달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연필을 쥐게 하니 잡기 쉬운 방법으로 길들여져서 고치기 힘든 상태로 입학합니다.
초등 1학년 때 한글 깨우쳐도 늦지 않게
그러니, 제발 한 발 늦게 가도록 해야 합니다. 입학 전 까지는 쓰는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할 것입니다. 1학년 1년 동안 글자와 짧은 글에 노출시켜서 한글을 그림처럼 재미있게, 한글과 물체의 일대 일 대응 관계를 깨닫게 하며 천천히 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단번에 깨우치는 순간이 옵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폭발적 반응의 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아이 자신도. 다만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아이들은 공부를 좋아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한글을 깨우치며 자음과 모음의 만남을 공부하던 우리 반 아이가,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대로 글을 쓸 수 있어요! 한글이 참 재미있어요!"
라며 소리글자의 우수성을 발견하며 쏟아낸 기쁨을 접할 때 느끼는 가르침의 기쁨은 바로 맹자의 삼락이 분명합니다. 그런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 그 기쁨이 오래 갑니다.
그림책을 보다가도 아는 글자 하나가 나오면 쪼르르 달려와서 자랑하는 아이는 이제 세상에 널린 글자들 속에서 아는 글자가 부각되어 튀어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좋아하는 그림이 나오면 거기에 쓰인 글자를 읽어달라고 하는 단계가 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앎의 기쁨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억지로 쓰게 하거나 반복적인 학습을 시키면 배우는 즐거움을 몸으로 깨닫기 전에 공부란 지겨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합니다.
화단에 똑같은 꽃씨를 심어도 싹 트는 시기가 다 다릅니다. 어떤 씨앗은 한 달이 지나도 싹을 내지 못해서 다시 심기도 합니다. 싹 틔울 준비가 안 된 씨앗에게 물만 부어주면 썩어버리고 맙니다. 우리 1학년 아이들도 모두 자기만의 씨앗이 다 다릅니다. 속진하는 아이에겐 긴 문장의 동화책을 권해줍니다. 글을 모르는데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공룡이 튀어나오는 팝업북이 제격입니다. 공룡 이름을 줄줄 외는 아이는 그 이름부터 써댑니다. 글은 읽을 줄 아는데 쓰지 못하는 아이가 쓰고 싶어 하면 그 말을 받아서 써줍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읽기 공부, 독서가 모든 공부의 시작입니다. 공부의 기쁨을 오래 가게 하려면 제발 억지로 글자를 쓰게 하거나 단단한 연필을 손에 쥐어 주지 마세요. 그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평생 길게 보고 공부를 해야 할 아이들의 가슴에 공부상처를 안겨주는 위험한 일입니다. 쓰게 하더라도 부드러운 색연필로 쓰게 하고, 그 다음엔 4B 연필로 쓰게 해야 합니다. 2학년 정도가 되면 2B 연필로 서서히 대체합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 HB 연필을 쓰게 하는 일은 정말 무모한 일입니다. 글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스스로 쓰고 싶어 하는 단계가 옵니다. 그 전까지는 결코 억지로 연필로 쓰게 하면 연필 잡는 법을 그르칩니다.
초등 1학년 받아쓰기, 최대한 늦춰야
이 글을 쓰다 보니 저도 반성하고 고칠 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한글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세 아이를 위해서 중요한 알림장은 문자로 대체하고, 알릴 것이 많은 날은 인쇄물로 바꿔야겠습니다. 글을 모르는 아이들은 본인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직 발달 단계를 지나는 중입니다. 그들에겐 받아쓰기 시간이 피하고 싶은 순간입니다. 이제 겨우 8살인 아이가 날마다 모르는 글자를 써야 하는 고통을 학부모나 어른, 글을 아는 친구들은 짐작도 못할 것입니다.
받아쓰기도 4월부터 하려고 했는데 더 늦춰야겠습니다. 받아쓰기 점수도 공개하거나 자랑하지 못하게 해왔습니다. 다른 친구를 무시하거나 놀리는 첫 단추가 받아쓰기 점수 공개되면 아이들끼리도 비교와 경쟁이 시작되고 무시하고 잘난 척(?)하는 일을 조장하게 됩니다. 이는 교우 관계를 망치는 시작점이고 언어폭력을 유발하게 합니다. 우정을 배우고 상생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제일 먼저 우리 사회의 악습인 갑질문화를 은연중에 배우게 되니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이 책이라는 텍스트에 의한 교육이 대부분이므로 글자를 늦게 깨닫거나 독해력이 뒤지는 학생은 언제나 불리한 모순을 지닙니다. 학생이 가진 재능과 소질을 발현할 기회가 제대로 없는 학교교육의 맹점이기도 합니다. 손재주 있는 학생, 상상력이 뛰어난 학생, 악기를 잘 다루는 학생, 이야기를 잘하는 학생 등. 여러 줄서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모습이 공교육이 정상화 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지필평가의 잣대로 한 줄을 세우는 교육은 수많은 문제점의 시작이자, 상처 받은 인재들의 무덤이 되기에 충분하니까요.
공부도 개성의 일부일 뿐
공부란 자기 자신이 어제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자신과의 경쟁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늘 남과 비교하고 형제간에 비교하며 무시하고 짓밟는 갑질문화가 1학년 때부터 시작됩니다. 학과 공부를 잘하는 것은 노래를 잘하거나 달리기를 잘하는 것처럼 개성의 일부일 뿐입니다. 호랑이와 토끼를 비교할 수 없듯, 춤을 잘 추는 아이와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도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서 대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적응 기간을 현재의 3월 한 달에서 3개월로 늘렸으면 합니다. 학교생활과 기본생활, 입문기 교육활동, 특히 문자이해공부, 책놀이 활동에 집중할 시간이 길어졌으면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입문 활동은 그 후에 일어나는 학습동기 유발에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현재와 같이 문자미해득 상태로 입문기를 지나는 아동들은 이후에 학습부진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학년 때 뒤늦게 문자를 깨우쳐도 2학년이 되면 길어진 문장을 읽기는 하지만 글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니 다시 학습부진아가 됩니다. 3학년으로 올라가면 교과가 분화되어 더 어려워집니다. 특히, 사회와 과학의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여 문제를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 절망합니다.
문자미해득은 이처럼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으니, 초등학교 1학년 국어과 교육과정과 국어 교과서 개발의 속도를 늦춰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반 아이들 40%는 지금 글자와 싸우는 중입니다. 전국에 있는 문자미해득 아이들도 1학년 선생님들도 전쟁 중일 것입니다. 머리가 좋아도 문자에 약한 아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에겐 시간이 약이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학습지를 투입하고 날마다 읽어주며 달달 볶는다고 금방 읽지는 못합니다. 몇몇 속진하는 아이들 때문에 못 따라가는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거치고 있음을 확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씨앗이 싹 트는 순간을, 그 꽃이 피는 순간을 알아내지는 못합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할 경우, 문자미해득으로 인한 학습부진이 예상되는 학생들은 1학년 단계를 유보하여 더 다니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못 따라가서 늘 학습부진에 시달리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을 유보할 수 없다면 1학년 적응 기간을 현재의 1개월에서 3개월로 해주어서 문자미해득 학생들이 100일 동안 여유 있고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