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학교폭력 대책 효과는 ‘글쎄’

2012.01.03 14:38:43

상담전화 설치, 형사 배치 학원‧PC방 일대 순찰
전화 없어 신고 못했나… ‘두려움’ 실체 파악해야
상황 급박한데 개정 폭력예방법 시행 6개월 후?
교과부 학교폭력근절委 구성, 1월 중 대책 마련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 경찰청, 한나라당에서까지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지난달 20일)만 해도 교과부를 비롯한 교육청의 대처는 그다지 급박하지 않았다. 매일 발생하는 사건·사고의 하나로 간주했다. 그러나 자살 중학생의 ‘애끓는’ 유서가 공개되면서 해당 학교와 가해자 부모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고 유사 폭력피해 사례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정부가 손 놓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사건 발생 6일 후 열린 시·도부교육감 회의에 참석해 철저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학교폭력 실태 매년 2회(3월·9월) 전수조사, 전문상담사 1800명 학교 배치, 공익근무요원 학교안전 보호 보조인력 활용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국회에서는 ‘강제 심부름’을 학교폭력 내용에 추가하고 가해 학생에 대한 30일 이내 전학조치 및 재 전입 금지 등을 규정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미성년자 성폭력범죄자는 공·사립 교원, 유치원 강사 등에 임용되지 못하도록 관련법도 손질했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도 2일 학교폭력과 왕따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 대표전화 시스템’을 신설키로 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학교폭력, 왕따를 당할 때 믿고, 상담할 수 있는 신뢰할 곳이 없다. (업무가) 경찰이니, 여성부니 흩어져 있어서 학생들은 어디에 상담해야 할지 모른다. 부모님에게도 말을 잘 못한다”고 말했다고 황영철 대변인이 전했다. 경찰청도 가세했다. 형사 1만2000명을 동원해 학교와 학원가와 PC방 일대를 순찰하게 하고, 폭력 학생은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학교폭력 전문가들은 정부 등이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 없는’ 전시행정의 전형이라며 오히려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신고전화가 없어 신고 못하는 게 아니고, 괴롭힘 등 폭력이 문자와 메신저, 웹 등을 통해 학교 안팎에서 지속되고 있음이 최근 일련의 자살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문상담사와 공익근무요원을 배치하겠다는 계획도 현실성이 낮고, ‘소원수리’ 방식의 설문조사로는 ‘두려움’에 떠는 학생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교과부는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학교폭력근절자문위원회(위원장 조벽 동국대 교수)를 구성했다. 시·도교육감(3명), 초·중·고 교원(3명), 대학교수(2명), 학부모·시민·사회단체(6명), 출연연(3명), 정부부처 국장(5명) 등 22명이 뽑혔고 2일 오후 첫 회의를 열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대통령도 신정 국정연설에서 따돌림과 폭력 없는 학교를 위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며 ”학교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자문위원단 논의를 통해 근본 대책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실질적 개선의 필요성을 누차 언급하면서 이번만큼은 ‘재탕 대책’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위원회는 2년 임기 동안 학교폭력 등 학생보호에 관한 사항을 다양한 전문가적 관점에서 검토해 범부처 종합대책 마련에 관여하게 된다. 기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핵심 임무다. 첫 회의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 등 형사 처벌 연령을 만 14세에서 만12세 이상으로 낮추고, 학교생활기록부에 폭력 기록을 남기며, 가해 학생 강제전학 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동기 대구교육감이 지난달 29일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와 다음날인 30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들이 대구교육청을 방문했을 때 건의한 내용들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예방에 집중하되 불가피하게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수습할 지에 대해 깊이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자문위의 의견 등을 들은 뒤 이번 달 안으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확정·발표할 계획이다.

중앙부처 외에 각 시·도교육청 차원에서도 대책 마련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부교육감)은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TF팀 구성을 2일 지시했다. 이 권한대행은 “그 동안 가해학생도 제자라는 생각에 다소 엄격하게 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나 학교폭력에 대해 관용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교내외 모든 학교폭력 행위에 대해 ‘불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도입, 폭력의 경중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퇴학 처분도 내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고영진 경남교육감도 시무식에서 “학교폭력은 어느 시·도교육청도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한 학생을 구하는 것이 모든 학생을 구할 수 있다. 중도탈락자를 감소시키는 것은 학교폭력에 노출돼 있는 학생들을 줄일 수 있는 만큼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예방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와 국회, 교육청 등이 마련하겠다는 대책의 실효성 및 의지에 의문이 든다. 2004년 국회에서 학교폭력예방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만 4년 뒤인 2008년에야 겨우 시행령을 마련하고, 뒤따라 만들었어야 할 시행규칙은 지금까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1월 공포 예정인 이 법안의 시행일은, 6개월 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6개월 후나 되어야 강화된 조항에 따른 처벌이나 치료가 이루어지고, 그나마도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으면 또 유야무야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교과부 관계자는 “법령 공포 후 시행령을 만들 시간을 두는 것은 관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서혜정 hjkara@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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