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교육을 보면 희망이 없다고 한다. 이미 우리 교육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학교에는 선생도, 학생도, 학부모도 없다고 한다. 모두가 하나 같이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소임 이상의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빗댄 이야기로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각자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지적한 표현일 것이다.
지난 번 한국교총과 동아일보가 함께 조사한 학생에 의한 교사 때리기의 실태를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선생님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선생님 앞에서 욕을 하는 것이 일쑤고 어떤 경우는 일부러 들으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니 걱정스러울 뿐이다. 정말로 학생에 의한 교사 때리기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지 걱정된다. 대부분 현장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살아날 리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학부모가 학교에 나타나면 선생님들은 긴장을 한다고 한다.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가 발걸음이 빠르거나 얼굴이 상기된 경우라면 한바탕의 소동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고 한다.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마디 자책이나 반성도 없고 인권을 침해하였느니 비교육적이니 하면서 대들고 따진다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이런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아예 생활지도에는 손을 놓았다고 하는 선생님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의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뻔한 일 아닌가. 그저 수업시간만 잘 하면 그만이다.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생활태도야 어찌됐든 내버려두는 교육을 원하는지. 옛날에는 집에서 고칠 수 없는 버릇을 학교 선생님이 고쳐준다고 하면서 선생님에 기대하지 않았던가. 못된 버릇 하나 고치려다가 괜히 기분만 상하고 창피만 당하게 되는 것이 오늘의 학교 현실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DJ정부 이후 계속된 교사 때리기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다. 40만 교원 전체를 촌지나 밝히는 집단으로 언론에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교사 몇몇이 저지른 파행을 전체교사의 도덕지수인 양 떠들어 대면서 교원을 매도했다. 정부에서는 교원정책을 통해서 교육을 활성화시킬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실패한 정책에 불과하다. DJ정권 때 이아무개 장관이 구조조정을 서두르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 한 명을 퇴출시키면 세 명의 신규교사를 채용하여 학교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결과는 학교현장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교육공동체의 갈등을 증폭시켜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특히 교원정책은 많은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운 좋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운 좋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만큼 안정성이 없다는 증거이다. 교원정책을 통해서 교단에 활력을 불어넣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그 동안 지름길을 두고 샛길로 돌아가다가 교육을 망쳐 놓았다. 교육개혁에 어느 정권보다도 열정을 보였던 DJ정부나 노무현 정권 하에서 교원의 갈등과 불신이 고조되었고 교육재정이 악화된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그저 요란스럽게 샛길 탐구를 하면서 서로 잘난 체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현재의 교육은 학생도 만족하지 못하고, 학부모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교사 또한 가르치는 일에 긍지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아무 일도 못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정말로 중요한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년 전에 실패한 열린 교육을 들여다가 그 요란을 떨던 그 많던 선구자(?)는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는 정말로 제대로 된 교육학자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 화가 난다. 교육정책 수립에 있어서 교육의 본질 구현보다는 정치논리에 얽매인 결과로 야기된 문제들이다.
정말 현재와 같은 추이로는 우리 교육은 국민에게 어떤 희망이나 용기를 줄 수 없다. 우리 교육이 변해야 한다. 교육이 변하기 위해서는 교육공동체가 변화하여야 한다. 학생이 변해야 하고, 교사가 변하여야 한다. 또한 학부모가 변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2007년을 교육 희망 찾기의 원년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교육 희망 찾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학부모는 학부모답게 어떤 역할과 기대를 갖추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정을 국민과 함께 제정해야
먼저 학생다움의 회복이다. 학생은 미성숙자이며, 교사의 가르침을 통해 점차 성숙해 가는 것이다. 성실하게 교사의 지시에 따르면서 학교생활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어떠했는가. 학생을 수요자로 치환시켜 놓고 수요자의 요구에 충족하는 교육을 하라는 것이다. 미성숙자인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까. 교육을 식당에서 음식을 골라 먹는 것 정도로 비유한 것에 지나지 않은 ‘수요자’라는 말은 이제 쓰지 말아야 한다. 학생을 왕으로 삼는 일은 결코 옳은 발상이 아니다. 미성숙자인 그들을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교육 아닌가.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식체벌주의를 도입했다고 한다. 그것은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라고 하여 학교생활에서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로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정을 국민과 함께 제정하자. 그리하여 학교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엄정하게 규칙이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들자. 각 학교에는 여러 규칙이 있지만 학부모의 극성과 학생의 무분별한 일탈로 사문화되어 버린 지 오래다. 말 안 듣는 학생들이 생활규정 앞에 왜소해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미성숙자라고 해서 무조건 같이 볼 일은 아니다. 적절한 상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실 교실 교육을 망가뜨리는 것은 소수의 문제학생들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수업에 열중하는데 몇 사람이 떠들거나 딴 짓을 하면 그날 수업은 엉망이 된다. 이런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조금 잘못되면 인권침해가 되고, 조금 더 잘못되면 학부모에 무릎을 꿇고 우리교육의 조종(弔鐘)을 울리며 적당히 포기하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우리 교사의 현실 아닌가.
다음으로는 교사다움의 회복이다. 교사는 단순한 직업인과는 너무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교사는 단순히 재화를 생산하거나 기술을 제공하는 직업이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에게 꿈과 비전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는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직업이다. 교사는 투철한 교직관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랑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또한 교과 교육에 대한 높은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부단한 교재 연구, 교실수업 개선을 위한 자기 장학, 연수와 연구 강화 등을 강화하여 최고의 전문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촌지를 요구하거나 성적을 조작하거나 하는 일은 천만부당한 일이고, 교사의 양심을 걸고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엄정하게 법정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생활지도의 기술을 습득하여야 한다. 생활지도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에서 비롯하여야 한다. 누구라도 잘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규칙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어야 하고 또한 엄정한 규칙의 집행자가 되어야 한다.
다음은 학부모다움의 회복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교육을 무력화시키는 원인의 하나이다. 자기 자녀 중심의 맹목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인식을 토대로 자녀 교육에 임해야 한다. 자녀의 잘못에 대하여 따끔한 회초리 한 때 때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학부모에게도 필요하다. 자녀의 잘못에 무조건적으로 감싸거나 옹호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자식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낼 수 있다.
학교는 단순히 학과공부만 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이다. 학교는 친구들과 함께 작은 사회를 이루면서 사회생활에 적응력을 기르는 곳이다. 봉사활동, 단체 활동, 수련활동 등을 통해서 사회의식을 성장시키는 곳이다. 학부모는 학력신장 중심의 교육관으로만 일관하지 말고 다양한 능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자기 자식 앞에서는 어떤 원칙이나 규칙도 없는 학부모,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특별한 혜택도 과감하게 요구하고 있는 학부모가 많은 한 우리교육은 발전할 수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력을 높이는 교육을 위해서는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제도를 바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식의 변화이다. 학생이 변하고, 학부모가 변하고 교사가 변화하면 우리교육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교육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변화해야 한다. 이들이 변화의 중심에 서도록 지원하고 배려해야 한다. 정부나 교육부에서 할 일은 바로 이런 일이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교육정책들은 교육주체의 당사자들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일이 결코 아니다. 교육재정을 확보하여 교육환경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고 교사의 사기 진작을 통해 교단교사가 신명나게 수업을 하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교사가 교실 수업을 신명나게 하면 학부모의 신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교사의 힘을 빼고 갈등을 부추기는 교육행정, 일을 잘 하라고 지원하는 정책보다는 끊임없이 재갈을 물리는 듯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교육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