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31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00년을 마감하면서 지난 천 년 동안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칭기스칸을 최고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그는 복숭아만한 핏덩이를 손에 쥐고 태어나서 1206년 몽골인의 갈채 속에 “대해(大海)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가 최고의 인물로 선정된 배경에는 이 세계를 작게 만들어, 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9개월의 혹독한 겨울과 고작 3개월에 불과한 여름을 나면서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의 성공 비결을 단지 정치나 경영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교육과 관련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약속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가 교육현장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야간 경비를 서던 몽골 병사가 깜박 잠이 든 것을 알고 스스로 놀라 친위대장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만일 내가 잠든 시간에 적이 쳐들어왔더라면 우리는 모두 위험에 처했을 것입니다. 경계 중에 잠들었다는 것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는 병사의 의식도 놀랍지만 이런 고백에도 불구하고 군법대로 사형을 집행하는 친위대장의 처신 또한 놀랍다. 바로 몽골에는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사회적 관계의 기초가 되어 있었다. 바로 여기에 몽고 군대의 경쟁력이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약속은 ‘당시의 어려움을 적절하게 회피하기 위한 핑계’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치가들의 공약(公約)은 늘 ‘거짓부렁이’로 끝나고 마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약속의 참뜻마저 왜곡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법은 죽었다. 단지 떼법만 살아 있을 뿐이다’는 비아냥거림도 곱씹어 볼만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교육이 살아날 수 없다. 학교의 규칙을 엄한 규정으로 이해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없는 한 우리 교육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적당히 무시하고 큰 소리로 뭉개버리는 국민들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은 글로벌교육을 지향할 수 없다. 약속이 없고 원칙이 없는 우리 교육현장에 새 학년에는 신선한 약속들이 맺어져서 우리 교육현장을 활기차게 바꿔나갔으면 한다.
둘째,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사를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칭기스칸은 ‘너커르’라는 전투 전문가 집단을 창설하여 전투력 향상에 최선을 다하였다. 당대 최고의 군사 전문가들을 ‘너커르’에 끌어들여 늘 함께 대화하고, 전략 전술을 마련하였다. 항상 사명을 공유하는 칭기스칸과 너커르, 그들은 하나같이 전쟁터를 ‘직장’으로 삼은 전사들이었다. 그들이 말을 타고 칼을 잡으면 ‘출근’이요, 적진을 향해 돌진하면 ‘근무’였고 싸우다가 죽으면 ‘퇴근’으로 생각하였다. 어떤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사명감을 공유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또한 전문가로서 위상을 높여주어 사명감으로 충만하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어떠한가. 그 동안 교육개혁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도 늘 교육개혁의 현장에는 교육전문가는 소외된 경우가 많았다. 이상에 들뜬 모험적 실험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우리 교육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칭기스칸의 ‘너커르’와 같은 존재는 없었다. 교육발전을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칭기스칸이 국가발전 전략으로 '테크노헤게모니'를 강조한 것처럼, 글로벌교육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높은 사명감과 신뢰를 주는 '티쳐헤게모니'를 제안한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최근 몇 년간 스승의 날을 전후한 ‘교사 두들겨 패기’는 교사집단을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각인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그래서 늘 개혁의 대상이 되었고 어느 정도는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사와 함께 교육개혁에 노력하기보다는 늘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해서는 교수학습 방법 및 교육 환경 개선에 노력하는 등, 수준 높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러면 교원개혁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정말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워주어야 할 교원을 매로 치면서 무슨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교권이 무시된 학교, 권위가 무시된 교육행정을 통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권위가 사라져버린 사회는 죽어 있는 사회이다.
셋째, 창의성을 키워주는 수평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세계 선진국들이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있을 때 셰이크 모하메드는 세계를 조망하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두바이의 기적’을 일궈냈다. 만약 징기스칸이 신화의 그늘에 갇혀 있었다면 그는 역사 속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과 가족이 처한 불행한 과거는 한층 더 자신을 단련시켜 주었고, 미래를 여는 황금열쇠가 되었다. 놀라운 상상력으로 미래를 조망하면서 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들은 ‘안녕하세요?’ 또는 ‘식사하셨어요?’라고 인사할 때 칭기스칸의 사람들은 “소닝 새함 요 밴? (무슨 새로운 소식 없느냐?)”라는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인사말은 현실 또는 과거에 매달려 있지만, 그들의 인사말에는 새로운 변화에 대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교육은 이제 과거의 유산에 지나치게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눈과 귀를 열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1000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된 칭기스칸, 10만의 기마군단으로 몽고 고원에서 내려와 중원을 정복하고 이슬람문명을 통합한 그 위대한 저력에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이 평생에 걸쳐 전쟁터에서 행한 리더십은 오늘에 되새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내친김에 그가 남긴 리더십을 통하여 우리 교육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고 싶었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