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학생 C모군이 친할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학생은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있어 늘 게임에만 몰두하였다. 이를 걱정하던 가족들의 간섭이 싫어 가출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 귀가한 자신을 꾸짖는 할머니를 넘어뜨리고 둔기로 머리를 내리쳐서 숨지게 한 사건이다.
무엇이 이 학생을 이렇게 잔인한 패륜아로 만들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잔인하고 무서워졌을까.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은연중에 ‘폭력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구조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차제에 학교 현장의 생활지도를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폭력을 연습시키는 게임산업과 영상산업이 문제다. 앞의 C군의 경우 평소 야쿠자들의 격렬한 격투와 살인 장면이 나오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2006년도 정보통신부 발표에 의하면 3-5세 인터넷 사용자가 64.3%이고 이 중 92%가 게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아들이 즐겨하는 게임의 대부분은 주먹과 칼, 총기를 사용해서 상대방을 죽이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유아기부터 게임에 몰두하면서 폭력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상생활에 그대로 나타나 조금만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폭력을 휘두르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강국’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면서도 ‘게임중독’에 멍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있는 것 같다. 게임중독 예방지도를 하자고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청소년의 정서를 해치는 게임을 만들지 말자는 얘기는 없다. 게임산업진흥법을 만들기에는 야단을 떨면서도, 이것의 부작용은 외면하고 있다.
세계의 석학들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의 하나가 ‘게임에 빠져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코큰족(Cocoon : 사이버 공간의 나홀로 족)’으로 게임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현실 속에서 겪게 되는 분노와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을 제2의 조승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외국의 WOW 게임 같은 경우는 스케일도 크고, 퀘스트(Quest)들의 연계도 잘 되어 있어 다양한 사고와 방법이 동원되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두뇌개발에 도움이 되는 게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사행성이 강하고, 폭력, 살인 등이 중요한 이벤트들이다.
또한 영상산업의 편향적 신장에도 문제가 있다. 소위 ‘조폭영화’가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깍두기 머리를 한 배우들의 맹목적 의리를 학습하여 일상생활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둘째,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다. 자녀의 행위의 잘잘못을 따져 적절하게 지도하는 가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 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다. 그리하여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관대하지만,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고 한다. 남에 대해서는 용서와 관용이 없는 부모들의 태도도 문제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한 학생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되어 학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다. 학부모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우리 아이는 지금까지 집에서 한 번도 혼낸 일이 없어요. 내가 알아서 지도할 테니 체벌을 하거나 벌을 주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부모에게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하며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학생징계기준에 따른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정도 되면 교사가 무엇을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약화시키는 있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학부모들의 자녀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생각의 극단이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학부모에 의한 교사폭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는 학교의 교육적 역할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도 문제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에는 학생과 관련된 사안들은 철저하게 학교 중심으로 해결되었다. 선생님이 나서야 경찰에서도 해결되고, 선생님이 나서야 가·피해자간의 합의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생님은 지도 잘못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만 할 뿐 해결사로서의 역할은 아예 기대할 수조차 없다. 물론 선생님들의 교육적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에도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 사안이 일어나면 무조건 경찰서로, 병원으로, NGO 단체에로 달려간다. 사법적 판단이 내려져야 하고, 민사상의 처리를 지켜보면서 손을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학교는 그저 교육청 등의 상부기관과 외부기관 및 단체의 심문(?)에 응답하는데 급급하고 만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교에서는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이러다보니 선생님들은 아이들 앞에서 작아지고 소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섣불리 개입하였다가는 망신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건강한 국민을 길러낼 수 있을 터인데, 학교와 교사 때리기에 급급한 작금의 현실로 보아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학생의 생활지도는 학교만으로 힘으로는 부족하다. 학교와 학부모, 사회 모두가 일관된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도덕적 용기와 신념을 갖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잘못된 제도와 구조는 법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게임산업과 영상산업의 폐해를 논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하나의 이익에 급급하여 자손만대로 이어질 우리 후손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는 것은 죄악 아닌가.
또한 학부모는 자녀 중심의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고, 사회 또한 학교를 지원하는 세력으로서 학교 생활지도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학교와 선생님을 왜소화시켜서 얻게 되는 이익은 과연 있을까.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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