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안에 대해 학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하는가?, 아니면 학교의 자체적인 기초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수사기관에 신고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늘 학교가 고민하고 있는 사안일수밖에 없다. 이번호에서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 ‘아청법’ 제34조제2항, 학교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신속하고 성실한 조사는 필수, 교육적 판단 고려해야
2012.12.26, ○○중학교 1학년 A학생(피해자)이 화장실에서 같은반 남학생 5명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A학생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에 담임교사는 신고 접수 후 해당반을 중심으로 사실조사 확인한 결과, 사건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등 추행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피해주장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이를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A학부모는 학교가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튿날 관할 경찰청에 신고하였다.
*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제34조제2항
학교의 장과 그 종사자는 직무상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때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
해당 사건에 대하여 관할 지방경찰청의 1, 2차 조사에서 모두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어서 관할 지방검찰청에서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법률(이하 ’아청법‘이라 함)’ 제34조제2항*의 즉시 신고의무 위반으로 인한 직무유기건 여부에 대한 수사에서도 “혐의없음”이란 결정을 내렸으며, 관할 지방가정법원에서 “불처분” 결정을 내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관할 교육청은 2013.12.19, ‘성범죄 발생시 즉시 신고의무를 위반했다면서 교장, 담임교사에게 과태료를 각각 1백50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학교측의 항변은 이렇다. 교실위치 및 피해학생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피해자 학부모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에게 미치게 될 심적·물적 상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간과할 수 없어 법조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신고할 수 없었던 점, 당시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개별면담 및 설문조사를 하여 기초사실을 확인하라는 학교폭력 매뉴얼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아청법’ 제34조제2항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즉시 신고위반을 이유로 한 과태료 처분 대상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당 사건에 대하여 법적으로 ‘무혐의’ 판결이 내려진 상황에서 교육청에서는 과태료 부과를 내려 교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교육활동에 힘써온 학교는 더없이 침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즉시신고의 시점‘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아청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조항의 취지는 아동·청소년 범죄로서의 성범죄의 실체를 확인하였을 때 당연히 즉시 신고하여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처럼 학교의 1차 사실관계 확인 결과 성범죄의 사실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경찰조사에서도 가·피해 학생간의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혐의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사안이며, ‘단지 신고 지체를 이유로’ 처벌하려는 것은 법조항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이며, 학교현실을 고려치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무조건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가·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보지도 않고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하는 그야말로 “기계적 신고” 의무까지 학교측에 요구한다면 자칫 죄 없는 학생이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특히 법적인 신고의무에 앞서 피해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 교사와 학교의 교육적 판단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관할교육청도 처분을 내림에 앞서 여성가족부의 법령해석을 요청하는 등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과태료 부과 처분사유서를 살펴보면,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의 발생사실을 알게 된 때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할 의무가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바 피해자가 성범죄 피해사실을 말할 때가 성범죄 발생사실을 알게 된 때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성범죄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함께 수사기관의 수사단서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고사항이 반드시 사법부의 성범죄 유죄 확정과 일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유권해석을 인용하고 있다.
법원은 2014.2.20, “불처벌(과태료에 처하지 아니한다)” 결정을 내렸다.
“시설종사자 등이 풍문으로 성범죄 사실을 듣게 되거나 피해자의 진술을 전혀 신빙할 수 없는 경우 등에도 무조건적으로 신고의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면 신고로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어 법의 적용으로 다른 피해(예컨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정신적 피해)의 발생이 우려되는 바, 결국 법문은 신고의무자들이 성범죄의 풍문을 듣거나 또는 제보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였을 때 성범죄가 발생하였을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발생하는 것으로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판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사건에서 그 어느 범죄보다도 성범죄에 대해 사전에 예방하고 신속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기본취지를 공감하면서, 동시에 학교측의 신속하고 성실한 조사와 합리적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학교측이 불처벌을 받았지만, 학교측의 적절한 사후조치가 없었더라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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