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 문제의 만남
기획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이 더 좋은 가치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는 인간 고유의 문제의식과 해결 본능이 어우러진 아날로그적 사고(思考) 작업이다(남충식). 기획에서 문제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규정하는 것이고, 문제 규정은 가장 창의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 규정은 기획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문제의 정의는 문제 해결보다 훨씬 본질적이다. 문제 규정만 제대로 잘되면 해결책은 상식적으로 만들어진다. 기획력이란 한마디로 ‘어떻게 문제를 잘 찾고, 어떻게 해결책을 잘 발상할 수 있을까’의 게임이다. 문제는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문제를 잘못 찾거나 지나치게 많이 찾거나, 문제를 두리뭉실하게 규정하는 것 중 하나이다.
문제를 찾으려면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문제란 이상적인 목표와 그렇지 못한 현재 상태의 차이(gap)다. 문제란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고, 그 차이를 좁히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다. 문제의 본질을 찾는 방법은 심플하게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왜’란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유발한다.
질문의 중요성과 관련된 사례를 소개해 본다. 엘리베이터가 낡아서 속도가 너무 느려지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불평이 계속 터져 나왔다. 반상회에서는 비용 부담이 되더라도 새로운 엘리베이터로 교체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고, 엘리베이터의 느린 속도를 문제로 규정하였다. 반상회에서 주민들은 문제를 바르게 규정하였을까? 주민들의 불평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상적 문제이다. ‘왜 주민들이 불평하느냐’가 문제의 본질이다. 진정 엘리베이터 속도가 문제일까?
속도가 문제라기보다 엘리베이터를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나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문제가 아닐까? 문제점을 그렇게 규정하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주민들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련해주는 것이 해결책이었다. 그 해결책으로 엘리베이터 문 앞과 안에 거울을 부착했다. 그러자 주민들의 불편이 차츰 사라졌다. 거울을 통해 새롭게 옷매무새를 고쳐보고 표정도 새롭게 지어보는 등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자 문제는 해결되었다.
기획자가 생각이 많은 것은 좋지만 생각이 복잡한 것은 절대 금물이다. 생각이 복잡해지면 핵심을 놓치게 되고, 본질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본질이 흐려지면 피상적이고 통상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것은 심플의 미학(simplicity)이다. 애플의 전 디자인 총괄자인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는 ‘진정한 단순함이란 불필요한 장식이 없는 수준을 넘어서 복잡함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피력하였는데, 이는 기획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기획’이란 두 글자는 ㄱ으로 시작해서 ㄱ으로 끝난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것은 기획을 모르는 것이다. 기획은 기본이 중요한데, 기획의 기본은 사람이다. 기획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아날로그적 습작이다. 기획은 행복을 만들고 즐거움과 감동을 만들며 돈을 만든다. 기획은 가치를 만들기도 한다. 기획을 잘해야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고, 인류가 잘되는 것이다.
고수의 기획은 일목요연하고, 심플하며, 명쾌하다. 또한 쉽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재미가 있고 울림이 있다. 한마디로 고수의 기획은 맛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을 궁극의 정교함이라고 강조하였고, 셰익스피어는 간결함은 지혜의 정수라고 표현하였다. 단순함은 전체에서 본질을 꿰뚫은 지혜로움이며, 복잡함은 표면과 현상에서 겉도는 어리석음이다. 기획의 고수는 단순명료하면서 완성도 높은 기획안을 낳는 지혜를 발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은 복잡하고 본질은 단순하다’고 역설하였는데, 기획도 현상에 머무르지 말고, 그 이면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 기획에서 현상은 정보이고,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에 기획에서는 정보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획에서 정보의 본질을 보는 능력인 통찰력이 강조되는 이유다. 기획 고수는 통찰력으로 정보를 다루고 고수의 기획은 심플하다. 심플한 기획을 위해서는 깊이 들어가 기획에 대한 모든 것과 기획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기획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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