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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편견의 덫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 최대 문인 단체로 한국문인협회가 있다. 협회는 1961년 12월 창립했다. 역대 이사장을 보면 전영택, 박종화,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조병화 등 한국 문단에 큰 획을 그은 분들이다. 여기서 ‘월간문학’과 ‘계절문학’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한다. ‘월간문학’은 1968년 발행해 2015년 7월호로 통권 557호를 냈다. ‘계절문학’은 계간지다. 이 잡지는 회원들의 작품 발표 확대를 위해 창간했다. 이제 통권 31호를 발행했으니, ‘월간문학’에 못 미치는 나이다. 하지만 발행 부수도 같고, 원고료도 같아, ‘월간문학’의 연장선에 있다.

이 협회에서 금번 7월호에 ‘월간문학·계절문학에 바란다’라는 특집을 기획했다. 26대 임원진의 등장으로 한국문인협회의 기관지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회원들에게 물었다. 임원진이 이 시도를 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임원들이 회원과의 소통을 통해서 편집의 방향을 점검하겠다는 의지가 바람직하다. 물론 문인협회가 회원이 모여서 이룬 단체이니, 전 회원에게 물으면 좋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회원만 1만 3천을 이루고 있으니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중진들에게 그 뜻을 물었다. 그들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선배 문인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의견은 전 회원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나도 문인협회 회원으로 20년 가까이 몸담고 있어 이번 기획 글을 관심 있게 읽었다. 선배 문인들은 등단이 쉬어 시인 1만 명 시대로 회원은 늘었지만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걱정을 먼저 했다. 이런 사실을 전제로 원고 청탁 때 가급적 우수한 작가에게 청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한 마디로 작품이 좋은 문인들로 필진을 넓혀서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중진은 비슷한 이야기를 신진 문인들의 작품 수준에 높낮이가 크다라는 표현으로 했다. 등단 연대순으로 실리는 앞쪽의 몇 분 말고는 모두 수준 이하의 졸작이라는 의견이다. 무명인의 작품도 일정한 비율로 발표하자는 배려도 보였지만, 이 또한 메이저급 시인들의 작품을 다수 실어야 한다는 말끝에 덤으로 한 말이다.

중진들의 표현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궁극적으로 말의 내용은 같았다. 전반적으로 수록 작품의 수준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문예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작품을 게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하다. 수준 있는 작품을 실어야 한다는 논리를 탓잡을 사람은 없다.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수준 있는 작품의 선별에는 이견이 있다. 의견을 표출한 중진의 표현에는 등단 연도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 즉 등단 연도가 오래된 문인의 작품은 우수하고, 젊은 문인들은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등단 연도가 오래된 문인들은 작품을 창작하는 치열한 경험이 풍부하다. 그러다보니 좋은 작품이 술술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문인의 작품도 눈여겨보면 우수한 것이 있다. 유명한 시인의 대담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신춘문예 작품이 축복이자 감옥 같은 작품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시집을 여러 권이나 냈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그 작품을 기억하더라는 말을 했다. 내가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렵지만 독자는 그의 신춘문예 작품이 담고 있는 문학성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젊은 날 죽을힘을 다해 썼던 그 작품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신춘문예 작품이 실려 있다. 따라서 등단 연도가 오래 되면 좋은 작품이고, 짧으면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일종에 편견일 수 있다.

편견을 깨야 한다는 이야기를 위해서 최근 유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언급해야겠다. ‘복면가왕’이다. 여기서는 가수가 복면을 쓰고 노래한다. 외모가 복면에 의해 차단되었기 때문에 관객은 노래에 집중한다. 복면의 효력은 대단했다. 우리가 노래를 못하는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집중해서 들으니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도 모두 ‘복면’ 속에서 살고 있다. 집안과 학력과 재산이라는 복면을 쓰면 어디서든 통한다. 사람의 내면보다 외모라는 복면에 이끌려 사람을 평가한다. 명품, 브랜드, 유명세를 무조건 맹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란 위인도 편견의 눈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인사동을 배회하다 불쑥 미술 전시회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림을 아무리 봐도 수준 이하다. 이건 어린아이가 장난을 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알 수 없는 붓 칠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참 돌다가 그림 밑에 화가의 약력을 보고 다시 보게 됐다. 갑자기 화가의 깊은 생각이 밀려오는 경험을 했다.

등단 연도에 따라 원로, 중진, 중견으로 분류하고 그들이 생산하는 작품도 이렇게 분류하다보면 작품을 제대로 못 본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결국 등단 연도라는 복면이다. 복면가왕은 댄스 가수는 노래를 못 할 것이라는 편견을 없애줬다. 마찬가지로 작품으로 엄중하고 공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 젊은 문인의 작품도 잘 읽어 보면 들꽃에 비치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의 취향이라는 것은 저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는 기준이고 가치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는 편견이라는 것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이 편견이 상대방에게 불공정성을 드러내고 불리함을 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상을 왜곡해 바라보는 시선으로 고정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과 관심이 먼저다. 나태주님의 시 ‘풀꽃’처럼 자세히 보는 것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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