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육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방송교육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보건선생님께 한 가지를 부탁했다.“방송실에 학생 몇 명만 앉혀 주세요.” 교육은 상호작용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강당에서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면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강의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 보이면 다시 설명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질문을 던진다. 웃음이 터지면 잠시 기다렸다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것이 살아 있는 수업이다. 하지만 방송교육은 다르다. 한 번에 천여 명에게 같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강사에게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교실의 학생들이 집중하고 있는지, 내 말을 이해했는지, 어느 대목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알기 어렵다. 자칫 40~50분 동안 강사 혼자 화면을 향해 말하는 일방적인 교육이 되기 쉽다.그래서 나는 방송실 안에 ‘작은 교실’을 만들기로 했다. 여섯 명의 학생이 의자를 펴고 내 앞에 앉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을 보면서 이야기할 거예요. 여러분 얼굴은 방송에 나오지 않지만 대답하는 목소리는 친구들에게 들릴 수 있으니 잘 듣고 대답해 주
2026-09-15 09:48강원도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 오전에는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오후에는 교육청으로 이동해 관리자 연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때 나는 40대였다. 에너지와 열정으로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교육계가 기억하는 나와 내가 기억하는 나는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 열정 자체가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이제는 학교 현장 밖에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그 시절 강원도로 가는 길은 지금처럼 편하지 않았다. 하루 전에 출발하거나 밤차를 타야 했다. 마침 밤 12시 반에 출발해 춘천에 새벽 5시쯤 도착하는 야간열차가 있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준비하려면 일주일 전부터 움직여야 했다. 특히 흡연예방교육을 위해 콩나물을 직접 키웠다. 생수병에 담배를 다섯 개비, 일곱 개비씩 풀어 넣고 조건을 달리해 콩나물을 키웠다. 담배에 노출된 정도에 따라 콩나물의 성장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담배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교육자료였다. PPT만 들고 가는 강의가 아니었다. 담배, 모형담배, 살아 움직이는 금붕어, 타르실험용 빈생수병을 비롯해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러다
2026-09-14 13:27저녁마다 숙제를 두고 같은 실랑이를 반복하는 집이 있다.아이는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면 소파에 눕고 스마트폰부터 찾는다. 부모가 숙제를 하라고 말하면 “조금만 있다가요”라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정말 잠깐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몇 번 더 말하면 아이도 짜증을 낸다.“알아서 한다니까요.”그러다 밤이 늦어서야 책상에 앉는다. 몇 문제 풀다가 막히면 부모를 부르고, 시간이 부족해지면 부모도 마음이 급해진다. 설명만 해주려고 앉았다가 어느새 남은 숙제까지 함께 보고, 다음 날 준비물이 있는지 가방까지 확인하게 된다.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면 부모는 답답하다. 해야 할 일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미루는지, 왜 몇 번씩 말해야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학교와 학원을 다녀오고 나면 피곤하고, 집에 와서까지 바로 책상에 앉는 것이 싫다. 잠깐 쉬려고 스마트폰을 들었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기도 한다.그 마음을 모르기는 어렵다. 그런데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데에는 피곤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아이가 늦게 시작해도 결국 숙제는 끝난다.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부모가 와
2026-09-14 13:21살면서 예기치 않은 위기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당황이 아니라 지혜일 것이다.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날이 있다. 그날의 긴박함이 내 기억 속에 아주 강하게 새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겨울방학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교사 연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달력과 수첩에 날짜를 기록해 두었다. 교육을 하루 앞둔 날이라고 생각하며 차 시간표까지 확인해 놓고 있던 아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 지금 오고 계시는 거죠?” 담당 장학사의 전화였다.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잠시만요.” 전화를 내려놓고 급히 공문을 확인했다. 세상에, 연수일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그날이었다. 달력에 날짜를 잘못 적어 놓은 것이다. 더구나 내 강의는 오후 시간 전체를 맡고 있어 다른 강사와 순서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노트북을 챙기고 머리를 감은 뒤 화장품 몇 가지를 가방에 쓸어 담았다.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택시를 잡아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버스는 막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간곡하게 세웠다. 다행히 기사님이 내 절박한…
2026-09-10 16:04내가 사는 광역시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흡연·마약·음주 예방 특강을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랫동안 학교와 보건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 흔쾌히 수락했다. 강의를 준비하기에 앞서 학교 홈페이지부터 둘러보았다. 학생 수는 1000여명, 남녀공학의 큰 학교였다. 화면 속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마음이 움직일까?’먼저 제목부터 고민없이 정했다. '뇌는 한번을 기억 한다' “담배 피우면 안 된다”, “마약은 위험하다”, “술은 몸에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이미 수없이 들어 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는 ‘하지 마라’는 금지보다 왜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알고 스스로 선택하는 근육을 길러 주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이 지향하는 중요한 목표도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질병에 걸리지 않고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그러기 위해 청소년기에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건강 습관 가운데 하나는 우리 몸과 뇌를 해치는 물질을 처음부터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흡연 교육의 방향을
2026-09-09 13:14요즘 네일아트는 하나의 패션이자 문화가 되었다. 색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화려하다. 작은 손톱 위에 그림을 그리고 보석을 붙이는 것을 보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인공의 아름다움이 궁극적으로 닮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 가진 색과 조화가 아닐까. 아무리 화려하고 정교한 네일아트라 해도 어린 시절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느꼈던 그 감성까지 따라오기는 쉽지 않다. 네일은 시간이 지나면 손톱이 자라면서 경계가 생기고 다시 손질해야 하지만, 봉숭아물은 손톱이 자라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밀려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우리 집 대문 양쪽에는 해바라기가 자랐다. 내 키를 훌쩍 넘어선 해바라기는 담장보다 높이 자라 한여름 햇살을 향해 커다란 얼굴을 들고 있었다.그 아래에는 봉숭아꽃이 피었다.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돌로 곱게 찧어 손톱 위에 조심스레 올렸다. 잎으로 손가락을 감싸고 실로 동여매면 밤새 손끝에 꽃물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하나씩 풀어볼 때의 설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얼마나 물이 들었을까?” 조심스럽게 잎을 벗겨내면 손톱마다 붉은 봉숭아물이 곱게 배어 있었다. 그 작은 변화가 얼마나
2026-09-08 10:23한 마을 경로당 어르신 안전교육을 다녀왔다.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호응 덕분에 교육 분위기는 시종일관 활기찼다. 교육을 마친 뒤에는 정성껏 준비해 주신 옥수수와 수박을 함께 나누며 질문과 답변의 시간도 가졌다. 요즘 지역 대학은 국가 정책에 발맞춰 전문가 단체와 협약을 맺고 지역 어르신들의 안전교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나 역시 전문가 구성원으로 참여해 여러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현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가르치러 갔지만 오히려 번번히 배우고 돌아오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오늘도 새로운 배움 하나를 얻었다. 교육을 마친 뒤 노인회 담당 부장님께서 강사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씀하셨다. “정말 매너 있는 강사님은 강의를 마친 뒤 TV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고 가시는 분이에요. 강사님이 가신 뒤 TV가 안 나온다고 어르신들께 연락이 오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넓은 지역을 담당하다 보니 금방 달려갈 수도 없거든요.” 그 말씀을 귀담아들었다.강의를 잘하는 것만이 좋은 강사의 전부는 아니었다.교육을 위해 노트북을 연결하고 TV의 외부입력을 바꾸었다면, 교육이 끝난 뒤에는 어르신들이 평소처럼 TV를 볼 수 있도록 원래…
2026-09-07 12:35교실에서 갈등이 생기면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보다 먼저 친구 이름부터 꺼내는 경우가 많다. “쟤가 먼저 그랬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어른에게는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실제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말일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과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정말 자기 잘못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자기에게 일어난 상처는 크게 기억하면서 자신이 준 상처는 잘 보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어느 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말로 상처받거나, 억울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스물다섯 명 가운데 스무 명 가까이가 손을 든다.이어서 다시 묻는다.“그럼 반대로 다른 친구를 따돌리거나, 말로 상처 준 적이 있는 사람?”이번에는 서너 명만 손을 든다. 손을 든 수만 보면 교실에는 상처받은 아이는 많은데 상처 준 아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그렇다고 아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지만 자신이 준 상처는 장난이나 상황 속에 묻어두기 쉽다. 교실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다른 아이의 이름부터 꺼내는 모습도 그와 닮아 있다. “쟤가
2026-09-07 11:46우리 집에는 엄마가 한 분 더 있었다.큰언니였다.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큰언니는 맏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찍 철이 들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껏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었을 텐데, 큰언니의 등에는 늘 어린 동생 하나가 업혀 있었다. 큰언니 등에는 마를 날이 없었다.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늘 누군가가 언니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언니는 그 시절 이야기를 이제는 동생들과 웃으며 나누는 추억의 소재로 꺼내곤 한다. 어느 여름날, 멱을 감으러 강가에 갔을 때였다. 포대기에 기대어 강가에 앉혀 두었던 어린 내가 어느새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고, 놀란 큰언니가 황급히 나를 건져냈다고 했다. 그 일은 내가 클 때까지 엄마에게는 비밀이었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친구들을 따라 동네를 뛰어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가볍게 뛰어갈 때 큰언니의 등에는 늘 동생의 무게가 있었다.아이가 울면 달래야 했고, 잠이 들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어린 나이에 동생을 업고 돌보아야 했던 큰언니.자신의 어린 시절 한쪽을 동생들에게 내어주면서. 그때의 나는 몰랐다.나를 업고 있는 언니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세월이 흘러 큰언니도 엄마가 되었다.자기
2026-09-01 15:40
아침 7시 20분. 아이들이 등교하려면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 텅 빈 복도에 발자국 소리 하나 없는 그 시간에, 김진숙 선생님은 어김없이 급식실 문을 연다.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쓰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오늘 하루, 200명 넘는 아이들의 배를 채울 준비를 시작한다. 18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절반이고,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전부인 시간. 김진숙 선생님은 그 긴 세월을 급식실에서 보냈다. 몇 그릇의 밥을 지었을까. 몇 번의 국을 끓였을까. 몇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만든 밥을 먹고 졸업했을까.셀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밥 한 그릇에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제, 그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김진숙 선생님을 만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정년퇴임 기사'라는 형식적인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급식실을 나서는 순간이건 단순한 퇴임 기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라는 것을알 수 있었다. 인터뷰는 급식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김진숙 선생님은 연신 손을 비비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2026-08-26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