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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는 '백가제국(百家濟海)'에서 온말

- 운산의 마애삼존불을 찾아서 -


리포터가 국사책에서만 보았던 마애삼존불을 찾은 것은 해가 설핏해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다.

이 불상은 운산면 용현리 고란사에 위치해 있는 불상으로 사면이 가파른 경사지로 된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고란사 주변을 끼고 돌아 흐르는 용현계곡 시냇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 피서지로서도 손색이 없기 때문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마애불 중에서도 구도라든가 예술성에 있어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태안에 있는 마애삼존불을 비롯하여 여타의 것과 견주어도 그 정교함과 입체감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용현 계곡 초입에서 고란사로 오르는 왼쪽 오르막길로 막 들어서니, 누가 쌓아 올렸는지 크고 작은 수많은 돌탑들이 숲을 이루며 낯선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돌탑 사이를 비집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니 조촐하지만 기품과 위엄이 서려 있는 고란사 앞마당이 나왔다. 힘겹게 오른 탓인지 목이 말랐다. 마침 바위를 깎아 만든 석정(石井)이 있어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낙엽을 호호 불며 한 움큼의 석간수를 단숨에 마시고 나니 뱃속까지 절절하다. 때마침 서늘한 숲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스친다.

불상을 우러르러 가는 좁은 길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하늘거리며 지는 햇빛에 수줍은 듯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힘겹게 바위틈을 비집고 드디어 마애삼존불상에 이르렀다. 그리 크지 않은 불상이었지만, 처음부터 상대를 사로잡는 불력에 이끌려 그만 얼어붙어 버렸다. 이것이 진짜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일천 삼백년 전 ‘백제인의 미소’란 말인가. 백제의 미소로도 유명세를 누리는 마애불은 거기에 그렇게 찬연히 기립해 있었다. 어떻게 빈 몸으로도 오르기 어려운 이 절벽을 밀가루 반죽처럼 갈고 닦아 이같이 정교한 마애불을 만들 수 있었을까?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작업했을 그 당시의 수고로움은 어떠했으며, 세월은 얼마나 오지게 걸렸을까.

사면을 우러르니, 중앙에는 석가여래입상이 2.8m높이로 솟아 있고, 오른 편에 보살입상, 왼편에 반가사유상을 배치하였는데 그 구조와 안전성이 매우 뛰어나고 입체감이 좋아 거의 환조(丸彫)나 같았다. 여래입상은 흰 머리칼이었으며, 부처님의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혹이 볼록하니 솟아 있고 목에는 삼도의 표시가 없고, 두 손은 통인(通印)이었다. 부처의 초인성을 부각시키는 광배는 보주형으로 내부에는 연화문, 외부에는 화염문이 각각 양각되었다. 보살입상의 머리에는 세 개의 산모양의 화관이 얹어져 있었으며, 상반신은 벗은 몸이었다. 두 손은 앞에 가지런히 모아 보주를 잡으시고, 날아갈 듯한 천의는 두 팔에 길게 늘어져 발등을 덮고 있어 금방이라도 바람에 나부낄 듯이 섬세하였다. 보살 입상의 후광 또한 불탑에 얹는 구륜형의 보주로서 내부에 연화문이 현란하였다. 반가사유상은 삼산관을 쓰셨고, 관대와 보발이 옆으로 늘어졌으며 상반신은 여래입상과 마찬가지로 나신(裸身)임을 알 수 있었다. 사유상의 두 팔은 그만 예리한 칼날로 도려낸 듯 잘려져 나갔는데, 매우 안타까웠다. 후광 또한 세분 부처님이 한결 같았는데, 그 표정이 구슬픈 듯 서글픈 듯,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 하였다. 특히, 부처님의 표정은 햇빛이 비치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표정의 변화가 무쌍하여 신비감을  자아낸다고 한다.

“이 마야불의 미소는 조석으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아침에 보이는 미소는 밝은 가운데 평화로운 미소이며, 저녁에 보이는 미소는 은은한 가운데 자비로운 미소입니다. 계절 중에는 가을의 미소가 가장 아름답고,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뭐니뭐니해도 가을해가 석양으로 떨어지는 무렵의 미소가 일품이지요.”

50년을 한결같이 마애불을 돌보고 있다는 노승의 말이다.

마애불이 있는 이 길은 서기 600년경, 부여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중국의 상해에서 출발, 태안반도를 따라 중국의 상선들이 드나들었고 중국의 찬란한 불교문화 또한 이 길을 따라 우리나라로 이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문물은 운산의 용현 계곡을 거쳐 당시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로 이동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곳은 태안 서산 당진을 잇는 물류의 집산지였고, 불교문화가 꽃피우면서 마애불이 탄생된 것이리라. 백제시대부터 서해안은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로서 그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백제인의 예술성을 오늘에 이어받은 감동에 가슴이 뿌듯하기만 하다. 백해제국(百海濟國)! 온 세계의 바다를 정복한 나라라 해서 ‘백제(百濟)’로 불렸던 나라. 한 때 해동성국으로까지 칭송되었던 백제인의 혼이 우리에게 이어진 것은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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