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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아이는 조금 특별한 아이였다

 

눈을 기다리게 된다. 만지면 소스라치게 차갑지만 그 풍경만은 늘 벅차게 따뜻한. 12월은 늘 시리다. 일 년 동안 뭘 했냐는 다그침과 곧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다. 마음이 추워지는 걸 잊어버리라고 이리도 바람은 매서운 걸까? 5학년 겨울방학식이 시작되는 12월에 지혜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이 좋아요.’ 

 

그 흔한 말에서 먹먹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쉽게 하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은 특별했다. 한 해의 일이 아주 먼 일처럼 스친다. 

 

3월에 처음 만난 지혜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다. 눈에는 늘 눈물이 고여 있는 듯 보였고,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행동이 느린 아이.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며 다른 책을 사물함 위에 올려놓기 일쑤였고, 제출해야 하는 과제나 안내장은 늘 없었다. 책을 많이 읽어 또래보다 상식이 풍부했지만 모둠 활동은 뜻대로 해야 하며 뾰족한 태도 때문에 친구들과 갈등이 종종 있기도 했다. 혼이 날 때면 허공에서 방황하던 그 아이의 눈빛과 어눌한 대답이 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 때쯤부터였을까? 지혜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은. 그런 연락이 점점 잦아지고, 반 아이들이 괴롭혀서 지혜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때마다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면 지혜가 엄마에게 하는 이야기가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혜와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엄마에게 좀 심하게 이야기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정도 사건을 학교폭력이나 왕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해보였다. 

 

그러던 중, 모둠 활동에서 지혜가 아는 척을 하자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지혜를 무시하고 비꼬아서 기분 나쁜 말들을 쏟아 부었다. 그날 밤 지혜는 지혜 어머니에게 울면서 사건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지혜의 어머니에게 늦은밤 문자가 왔다. 

 

‘지혜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고, 이번에는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니 남자 아이들의 잘못이 많았지만 지혜도 모둠활동을 독선적으로 이끌려고 한 부분이 있었다.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남자 아이들을 호되게 혼을 냈다. 그리고 그 날 지혜가 자주 머리가 아프고 눈물이 나는 증상 때문에 서울 병원 진료를 가게 되어 반 아이들 전체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던 중 학교전담경찰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지혜 학생 문제로 어머니가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학교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학교 전담경찰관이 이 사건으로 학교를 방문하게 된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교직 경력도 적지 않았고,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모님과 연락하며 노력해왔는데 내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셨다는 것이 기분 좋지 않았다. 

 

학교 전담경찰관과 생활부장선생님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 아이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라고, 지혜가 교사인 나에게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상담을 해서 그 날 해결하고 하교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에게만 밤에 이야기해서 엄마로 부터 사건을 듣게 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그때 나를 멍하게 만드는 말을 생활부장선생님께 들었다. 

 

“왜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엄마에게 하는 걸까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변명인 여러 말들이 입속에서만 빙빙 돌았다. 하지만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 이것은 아이들과 지혜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지혜와 나와의 문제이구나. 지혜가 나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렇게 만든 상황 이구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속상한 마음을 선생님에게 털어놓지 못한 지혜의 마음을 생각했다. 아이들 간의 관계 회복 이전에 나와의 관계회복이 먼저였다.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가 좋아하는 친구와 붙여주거나 짝이 된 친구에게 지혜와 잘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그런 노력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먼저 지혜에게 친구가 되어주기로 하였다. 

 

그 때쯤 지혜는 갑상선 호르몬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자주 아프고 가끔은 어눌해 보이고, 눈물이 자주 나는 그 모습에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전 해에 지혜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지혜가 아주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는데 많이 달라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지만 과거의 모습을 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지혜는 정말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은 가을의 나뭇잎이 물들 듯이 지혜의 변화를 나도, 지혜의 부모님도, 지혜도 어렵게 적응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지혜는 약물치료를 받았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픈 증상은 조금 나아졌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수업 시간에는 당당하게 잘 말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 주위를 어슬렁 거리기도하고 친구와 놀기도 하였으며 점심시간에는 주로 교실에서 혼자 책을 보기도 하였고, 교실에 다른 친구가 있으면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혜와 내가 서로 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면 웃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된 점이다. 

 

비 오는 날. 복도 창문 밖으로 지혜가 손을 내민다. 복도를 지나가던 나도 손을 함께 내밀어보았다.

 

“선생님도 비를 참 좋아해.” 

 

지혜는 나에게 따뜻하고 어색한 미소를 보여주었고 나도 같이 미소 지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지혜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지혜는 어색하지만 주섬주섬 이야기를 꺼내놓곤 했다. 학년 말이 되어서도 지혜는 친구들과 완전히 섞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에서 가끔은 행복함을 읽었고, 웃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다. 
 

처음 지혜는 특이한 아이였지만, 일 년을 마칠 때 쯤 나에게 특별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갑각류가 자라는 시기는 허물을 벗어 속살만 드러나는 가장 약한 시기라고 한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그 시절, 나는 교사로서 조금 자라났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되 그 안의 아이이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과의 관계 맺기라는 것을. 그 사실은 앞으로 나의 교직생활에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하늘 좀 봐. 하던 일을 멈추고 혼잣말을 한다. 누구라도 꼭 봐야 할 가을 구름이다. 구름을 본 순간 그 공간은 삭막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린다. 봄에 만남을 생각한다면 가을에는 헤어짐에 골몰하게 된다.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한 관계 맺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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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교단수기 공모 대상 수상자 당선 소감-따뜻한 선생님, 좋은 어른이 돼주고 싶다

 

겨울방학식이다. 아이들이 일찍 떠나고 난 교실은 괜히 마음이 시리다. 아이들에게 지난 일 년은 어땠을까? 나는 매순간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했을까?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큰 선물을 받았다. 잘 하고 있다고 이 상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말 감사하다. 
 

교사라는 직업이 버거울 때가 많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란 이유로 상처 주지는 않았는지, 정작 성장이 필요한 건 교사인 내가 아닌지…. 내가 아직 성장 중인 교사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늘 안주하지 말라고 모범을 보여주는 선배, 후배 교사들에게 존경을 전한다. 어른이 되게 해준 소민, 지후와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지혜를 비롯해 나를 성장하게 해준 모든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만날 제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보다는 그냥 따뜻한 선생님,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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