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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저는 수환이의 두 번째 엄마입니다.

 

“선생님~ 저 오늘 아침에 머리 감았어요. 샤워도 어제 작은 형이랑 했구요.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서 아침밥도 못 먹고 왔더니 배가 고파요. 먹고 온 날도 배가 고프긴 한데, 오늘은 더 배가 고픈 것 같아요. 아침에 학교 왔더니 다목적 책상 위에 왕신이가 놀다 간 액괴 자국도 있었고, 어질러져 있어서 제가 다 치웠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아침마다 창문 열어 환기하라고 하셔서 제가 학교 오자마자 창문 열었다가 추워서 방금 닫았어요. 그리고, 금요일 장염 걸려 설사했었는데 주말에 다 나아져서 이제는 밥 먹어도 된대요. 그래서 엄마가 아침에 밥 차려 주셨어요. 반찬으로 계란찜을 해주셨는데, 작은 형이 거의 다 먹어서 저는 조금밖에 먹지 못했구요…”

 

오늘 아침 출근 후 가방 들고 교실 들어가는 나를 따라오면서 책상에 앉아 오늘 수업할 책을 정리하고, 컴퓨터 부팅할 때까지 내 옆에서 수환이가 5분간 한 말이다. 매일 아침 내 일상이 되어버린 수환이와의 대화? 아니, 일방적인 수환이의 말 들어주기이다.

 

키와 몸집이 2학년 정도 되어 보이고, 코끝에 걸친 안경 위쪽으로 힐끔힐끔 바라보며 연신 내 표정을 살피면서도 끊임없이 내 앞에서 자신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 우리 반 4학년 수환이의 평소 모습이다.
 

수환이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낯선 나라, 낯선 농촌으로 시집 온 일본인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형인 병환이도 2년 전 내가 담임을 했었기 때문에 수환이 집안 사정을 대부분 안다고 생각했었다. 병환이의 동생이었던 수환이는 6남매의 다섯째로 어릴 때 대장 수술을 해서 지금도 과식을 하거나 음식이 조금 맞지 않으면 설사를 하고, 배도 자주 아프고, 방귀도 많이 뀌어 우리 학교 아이들이 ‘방귀대장’이라고 부르며 놀리곤 한다.

병환이의 동생 수환이가 아닌, 우리 반 학생 ‘수환이’를 만나고 나서 그동안 내가 알았던 것은 수환이 모습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환이가 어릴 때 아파서 수술했다며 배꼽 위 수술 자국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아파서 그런지 수환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작았고, 근력이 부족해 윗몸일으키기를 단 한 번도 하지 못한다.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달리기, 야구 등 운동의 대부분은 전교에서 꼴찌라고 해도 좋을 만큼 느렸다. 전교생이 36명이라 두 팀으로 나눠 피구를 할 때도 제일 늦게 선택을 받고, 단체로 하는 긴 줄넘기에선 첫 번째로 줄에 걸린다.
 

병환이 담임할 때도 아이에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느꼈는데, 수환이 몸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고, 잘 씻지를 않아서 여름엔 목에 ‘때’로 보이는 검은 줄?들이 보이기도 했다. 수압이 약해 세탁기로 빨래를 하면 다른 곳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세탁도 자주 하지 못하고, 엄마가 바쁘셔서 수환이와 2학년 동생인 주환이는 스스로 옷을 찾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아침 사정도 그러했지만, 부모님 모두 농사일, 공장 때문에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집에 오시기 때문에 씻고 자라는 말을 해 줄 어른이 자주 없었다. 추운 날 반바지를 입기도 하고, 한여름 털 옷을 입고, 맨발이 더 자주였던 아이 모습이 이제 조금씩 이해가 갔다.
 

3월 첫 주 수환이와 국어 수업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받침이 있는 글자와 이중모음이 있는 글자는 읽지 못하는 등 글을 읽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받침이 없는 글자도 더듬거리고, 방금 읽었던 글자인데 못 읽기도 하고, 교과서 속 삽화를 보고, 교과서 본문을 자기 마음대로 꾸며서 읽기도 한다. 책에서 줄 바꿔서 읽을 때 2~3줄을 건너뛰어 읽기도 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았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수학 시간이었다. 아직 구구단이 완벽히 외워지지 않아 6단~9단을 자꾸 틀리고, 3×8이 24인 것은 아는데, 8×3은 잘 모르고, 그나마 숫자로 쓰여 있는 문제는 이해하지만 서술형이나 문제가 2~3줄로 길어지면 내용 파악을 잘하지 못했다. 2학년 정도 수준의 읽기, 수학 연산능력인 셈이었다.

 

수환이에 대한 고민을 옥천학습클리닉 선생님과 상담을 수차례 하며 대전의 한 전문병원에서 무료로 검사해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 여름방학 부모님과 함께 검사를 받았는데, 지능이 평균 이하고 소아 우울 소견까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 학교 아이들 인원수가 적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그런지 이런 이유들로 수환이를 왕따시키거나 괴롭히는 아이는 없다. 하지만 수환이와 선뜻 친해지고 싶어 하거나 먼저 다가가는 아이도 없다.

다른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서 수환이는 혼자 외로웠고, 달리기도, 책 읽기도 공부도 모두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3학년 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은 수환이에게서 잘하는 걸 찾아주셨다. 블록이나 종이로 된 구조물 만들기를 좋아하고, 다른 나라의 건축양식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의 특징을 이해해주셨다.

 

3월에 만난 수환이는 자기는 건축모형을 만드는 ‘건축모델러’가 꿈이라서 미술 과목을 제일 좋아하고, 국어와 수학은 너무 어려워서 싫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옷을 자주 빨아 입지 않는 수환이를 위해 맞는 옷들을 구해다 학교에서 갈아 입혀주곤 했었다.

집에 입고 가서 며칠이 지나면 옷 상태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저도 깨끗하게 입고 싶은데, 빨랫감만 잔뜩 있고, 입을 옷이 없어서 아침에 찾다가 그냥 입고 온 거예요.” 수환이의 바지엔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고, 찌든 땀 냄새와 누렇게 바랜 티셔츠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싶고, 책도 잘 읽어서 선생님께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제 잘못인 양 수환이의 울먹이는 작은 목소리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런 수환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인 내게 잘 보이고 싶고, 의지하면서도 좋아하고, 엄마보다 내가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순진한 수환이였다.

1학기 상담 시 낯선 타국에 혼자 시집와서 여섯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벅찬 농사일, 공장일, 문화의 차이 때문에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돌보기 어렵다는 수환이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학교에서만큼은 담임인 내가 1년간 수환에게 두 번째 엄마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3월은 황사와 미세먼지를 핑계로 ‘청결 교육’을 주로 하는 자상하고 따뜻한 엄마로 수환이에게 다가갔다. 건강을 위해 몸을 청결히 해야 하는 이유와 손 씻기만 잘해도 감기 등 몸에 생기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계속해주었다.

이후 계절에 맞는 옷차림과 속옷을 겉옷 속에 넣어서 입는 법을 알려주었다.

빨래를 배우기 이른 감이 있었지만, 간단히 손세탁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어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속옷과 양말 등을 직접 빨아 입을 수 있도록 하였고, 교실엔 여분의 양말을 늘 준비해 두었다.

 

공부에 대한 기초교육을 위해 이번엔 엄한 엄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교과서 글자· 문장 따라 쓰기, 동화책 함께 읽기, 구구단 외우기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했다.

또한 2015개정 교육과정 국어 교과에 매 학기 ‘책 한 권 읽기’가 있어서 아이들과 책을 정해서 함께 읽는 활동을 수업시간에 했다. 정해진 책을 집에서 숙제로 5~6장 미리 읽어오고, 매 국어 시간에 10분 정도 직접 책을 읽어주었다.

읽기보다 듣기에 익숙한 수환이도 이 시간을 무척 기다리고, 좋아했다.

 

어느 날인가 수환이가 내가 읽어주는 책을 눈감고 들으면서 상상이라도 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읽기를 불편해하는 수환이에게 편한 시간이 된 듯했다.

책을 읽을 때 줄 바꾸기 쉽게 자를 대거나 연필로 따라가며 읽는 것도 가르쳐준 대로 잘 따라 했다. ‘키다리 아저씨, 노루삼촌,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문제아, 오빠는 사춘기’ 등 벌써 6권이나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내용과 느낌을 서로 나누었다.

 

스스로 읽고 전체적인 내용파악이 어려운 수환이도 듣기까지 하고 나서는 재미있는 장면을 찾아 말하기도 하고, 책의 느낌도 제법 말한다.

또한 읽기를 위해 자음과 모음을 훈민정음처럼 공부하자며 발음원리를 따라 입모양과 소리의 특징을 연결해서 꾸준히 읽기 연습을 한 결과 이젠 ‘괘, 웨, 블, 찾, 맑...’등 이중모음이나 낯선? 받침이 있는 글자 빼고는 제법 읽는다.

한 글자 한 글자 읽느라 속도가 조금 느리고, 아직 쓸 때는 소리 나는 대로 쓰는 편이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아직 읽기가 미숙해 읽으면서 문제를 이해하는 서술형 문제는 틀리지만, 최근 구구단 거꾸로 외우기를 하며 숫자계산이 필요한 분수·소수의 덧셈과 뺄셈을 술술 해내고 있다.

친구 왕신이는 수환이 덕분에 매일 하는 수학연산 학습지가 이젠 싫지 않다며 제일 싫어했던 수학이 제일 좋아하는 과목으로 바뀌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수환이도 도형과 그래프 그리기는 재미있다며 보충시간에 그렇게 싫어하던 수학 공부를 하자고 한다.
 

그래도 미술 시간만큼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라며 열심히 그리기와 만드는 등 애정이 남다르다. 교실에 프린트 후 쌓인 이면지가 제법 있는데, 수환이는 이런 이면지를 이용해서 총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고, 이층집도 만들고, 왕관도 만들어 쓰고, 활도 만들어서 놀곤 한다. 이면지 수보다 수환이가 사용하는 종이가 많아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로 만들기 날을 정해 놓았는데, 주말 동안 뭘 만들지 고민했다고 말하는 수환이 얼굴이 월요일 아침 더욱 밝아진다.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부모님 보시기 어설프고 부족해도, 밝은 표정의 수환이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경우가 제법 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아이들은 빛이 나나 보다.
 

농사일과 집안일, 공장일로 바쁜 학부모들을 배려해 학급·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행사 등을 사진으로 찍어 학급통신문인 <행복통신>을 월 2회 발송한다.

아이들의 활동뿐 아니라, 평소 나의 교육관까지 조심스럽게 전하며 수환이와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알리고 있다.

중학교 가서 머리 안 감고 몸에서 냄새나면 왕따 당한다고 어디서 들었는지 요즘은 잘 씻어서 수환이 머리에서 향긋한 샴푸 냄새가 솔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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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교단수기 공모 동상 수상자 수상 소감

오늘도 아이들 덕분에 익어간다

 

매해 아이들을 만나며 기도했다. 나를 만난 아이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나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기억해주길, 나 때문에 성적이 쑥 오르길…

스스로 좋은 선생님이라고, 수업을 잘하고, 능력이 있다고. 자만했고 욕심이 많았었다.

 

그런 내게 몇 년 전 사춘기 앓이를 하는 아들의 말은 충격이었다. 엄마 사랑이 부담스럽고 싫다며, 관심을 끊어달라는, 내 사랑과 관심 때문에 많이 힘들었단다.

사랑은 자신이 해 주고 싶은 걸 해 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거란다.

그동안 나는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을 주려고 늘 최선을 다했다. 돌아보니 그건 나를 위한 사랑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좋을 때가 있다.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저절로 공부가 되어가니 말이다.

훨씬 더 마음에 여유가 생겨 이젠 아이들과 공부 한 시간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더 웃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애써 나를 아이들 기억 속에 남기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기억 속 잊혀지는 서러움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 덕분에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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