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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반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리 오늘 여기 음식 다 먹어버릴 거예요. 지수야 가자.”
“ 선생님은 가만히 계세요. 우리가 가서 맛있는 것 다 골라 올게요. 하하하. ”
지수랑 두 친구들은 3년 전 내가 6학년을 맡았을 때 담임했던 아이들이다.
“ 그래, 중3 생활은 어때?”
“ 그야 당근 힘들죠. 다 아시면서 뭘 물어보실까? 하하”

쇠똥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다는 열여섯 살, 세상 그 누가 이보다 행복할까 싶을 정도의 밝은 웃음이다. 지수의 웃음 뒤로 난 3년 전 우리 교실을 떠올려보았다.

 

교사실에서 개학 첫날 받아둔 자기소개서 뭉치를 꺼내다가 말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수의 소개서에 ‘내 꿈은 자살입니다.’ 라고 적힌 붉고 굵은 글씨를 보았기 때문이다.
“ 어머 어머, 우리반 지수라는 애는 꿈이 자살이래. 심상찮은데....... ”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반 동기가 열을 내며 10분 넘게 무용담을 들려줬다.
“ 그 애 너희 반이구나. 우와! 대박. 그 애 담임하면 다들 병가 내고 들어가더라. ”


지수의 흑역사를 듣고 나니 교실 문을 여는 것이 더 겁이 났다.
억지로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들어서다가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지수 옆으로 넘어진 책상과 의자가 보이고, 옷에는 핏자국까지 보였다. 코피가 났나 생각했는데 손목에서 피가 스며나고 있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그저 물끄러미 지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아수라장이 된 교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지수는 왜 이러고 있어? 책상은 누가 이랬어? ”

‘새 학기에는 화내지 말고 아이들과 차분하게 대화하면서 잘 이끌어 가야지’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어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 지수야, 무슨 일이야? 일단 보건실 가서 치료부터 받자.”
내가 지수의 팔을 잡는 순간이었다.
“ 놔!!! 놔라고!! 난 죽을 거라고 에잇 씨ㅡ”
확! 내 몸을 밀치면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난 뒤로 넘어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공포심이 느껴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지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수의 행방을 묻자 애들이 입을 열었다.
 “ 선생님, 지수는 원래 저래요. 완전 돌아서는 지 혼자 자해하고 소리 지르고 그래요. 아마도 집에 갔을걸요? 아까 집에 가는 것 봤어요. 창문으로 다 보여요”
지수네 집은 복도 창문으로 바로 내려다보이는 덕포역 옆 돼지국밥집이었다.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난 지수를 찾아서 상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전화를 했다.
“ 여보세요? 지수 어머니신가요? 지수 상담을 좀 하고 싶은데요? ”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공손하고 친절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 선생님!! 똑바로 좀 하세요. 뭡니까? 우리 애더러 또 상담 받으라고요? 선생들이 하는 소리는 맨 날 상담!! 상담받아 보세요!! 아이고 그 소리 이제 듣기도 싫어요. 선생들이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주면 애가 왜 상처를 받겠어요? 피해자가 왜 상담을 받습니까? 가해자들이나 불러서 상담하세요. 쯧쯧 .”


무작정 다른 아이들이 다 나쁜 아이라는 식으로 일축해 버리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전화기를 들고 있자니 오기가 생겼다. 이런 막무가내 학부모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손님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가게 창문 안으로 음식을 나르는 지수와 지수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난 지수의 손을 낚아채듯이 잡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깜깜한 별이 내리는 한밤중까지 무려 4시간을 지수랑 실랑이를 벌였다. 무슨 말로도 지수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 아빠가 욕하는 것, 할머니가 화내는 것, 돈 때문에 다투는 부모님, 자신을 때리는 오빠, 친구들의 뒤 담화, 왕따, 오르지 않는 성적 등등 자신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조건뿐이라는 주장만 계속 펼치는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 네 마음대로 해! 그럼. 이제 선생님도 너 안 볼 거야! 정말 세상에 너처럼 쓸모없는 애는 처음 본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지수의 얼굴에 비수처럼 악다구니를 한바탕 퍼붓고는 집으로 와버렸다.


이날부터 지수엄마와 지수는 사사건건 나를 옭아매며 숨을 조여 왔다. 심지어는 일부러 시험지 점수가 보이게 나누어 줘서 아이들이 놀리게 만들었다며 민원을 하기도 했다. 마치 그물에 잡힌 물고기처럼 옥죄어 오는 법률의 밧줄들 때문에 마음은 매일 만신창이가 되었다. 다시는 지수나 지수 엄마랑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말도 하지 않고, 눈빛도 피하면서 수업했다. 지수도 엎드려만 있었다. 두 달이 그렇게 지나 5월도 중순이 되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다른 학교 근무하는 친구랑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도시철도 2호선 승강장에 운행 정지 안내 문자가 떠있었다.
‘무슨 일이지 아이참 지금 고장 날 게 뭐람.’
중얼거리며 그다음 문구를 읽었다.
‘ 덕포역에 10대 소녀 투신. 시신 수습 중. 운행중지 ’ 
앗!!! 나는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설마 했는데 지수가 정말 투신을 감행한 건가? 뉴스에 청지 재킷을 입은 모습이 얼핏 지나갔다. 딱 지수였다.


쿵쾅쿵쾅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분노와 원망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줄만 알았던 내 심장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뛰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수야 미안해. 지수야 미안해. 선생님이 잘못했어.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 택시를 타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수만 가지 후회에 미칠 것만 같았다. ‘ 제발 살아있기만 해라. 정말 선생님이 네 이야기 다 들어줄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라고 하면 빌게. 제발! 제발! 살아만......’ 눈물로 범벅이 되어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역 앞에 내렸다. 경찰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지하철역 입구 기둥에 넋을 놓고 기대서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러움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며 무심하게 내뱉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지수였다. 
“ 지수야! 지수야! 사랑해!!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힘든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

소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는 말이 참말인가보다. 내가 그렇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댈 때는 꼼짝도 않던 지수가 눈물로 엉망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와락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 지수야, 우리 내일부터 매일 선생님이랑 행복해지는 방법 공부해볼까? 몇 시간이라도 좋아. 지수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법으로 하자. 상담실 가라, 병원 가라 말로만 하는 위로는 이제 하지 않을게. 진심으로 너의 마음에 행복의 씨앗을 심어볼게. ”
지수도 나의 진심을 보았는지 그 후로는 곧잘 따라주었고 나도 임용고시 준비하듯 밤잠을 줄이며 마음을 읽어주는 법, 희망을 심어주는 법을 연구했다. 어느새 나의 교직 목표는 ‘제자 중에 자살하는 제자는 절대 만들지 말자’가 되어 있었다.

 

지수 어머니와도 매달 1회 ‘사랑 나누는 날’을 정하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처음에는 완고하고 까칠한 분인 줄만 알았는데 상처를 보듬고 보니 정말 여리고 착한 분이셨다. 지수 어머니도 결혼 과정에서 남편이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시아버지가 송사에 휘말려 구속이 되는 등 좋지 못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비난이나 조롱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같이 요리도 하고 음악회도 갔다. 지수는 점점 변했다. 늘 엎드려있던 모습의 지수는 이제 하모니카를 불거나 노래를 듣기도 했다. 부모님의 협조로 낡은 세간살이를 조금 줄이면서 지수가 그토록 원했던 자기 방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수 어머니도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드리고 함께 토론하며 마음을 나누었더니 많은 변화를 보여주셨다. 잘 웃고 친절한 모습에 지수도 낯설어한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졸업식 날 새끼손가락 걸고 지수랑 약속했다. 아무리 힘겨운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 가지 감사할 일은 꼭 찾아내자고.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접시 가득 맛난 음식을 들고, 세상 가장 밝은 미소를 보여주는 것 보니 지수가 3년전 졸업식 날 한 약속을 잊지는 않았나 보다. 길고 막막했던 무기력을 뚫고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힘은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제자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교사가 자기 안의 무한한 능력을 끌어내어 자살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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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교단수기 공모 동상 수상자 수상 소감

30년 교직생활의 반성문

지난 토요일 2년전 1학년 때 담임을 했던 제자와 부산시립미술관에 한젬마의 관계 요리라는 전시를 보러갔습니다.이 아이는 7살 때 어머니와 언니를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낸 큰 충격을 안고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어둡던 얼굴이 지난 토요일에는 환한 웃음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관계 요리라는 전시는 못, 장석, 지퍼 등 전체에 대한 비중으로 보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물건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연결부품들에 대한 재미있고 창의적인 고찰이었습니다.
“ 선생님이랑 저랑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남들 보기에는 어쩌다 한번 만나는 것 같지만 저에게는 없으면 안 될 정말 중요한 관계거든요.”
초3학년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30년 교직생활의 반성문 같았던 교단수기에서 제가 한 약속 ‘자살하는 제자가 없는 삶’을 위한 노력은 이렇게 해 나가면 되겠구나하고. 교단 수기 수상을 게기로 앞으로 교단을 떠나더라도 나의 제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영원한 선생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자로서의 책무성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