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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난 1월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학생들과 함께해온 헌혈 릴레이와 나의 헌혈 이야기를 방송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몇 년간 제자들과 헌혈 활동, 캠페인 활동을 한 이야기가 신문을 통해 지역에 알려지면서 1년 전에도 연락이 왔었지만 사양했었다. 나보다 헌혈도 더 많이 하고 훨씬 더 감동적인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내가 나서는 것이 부담되어서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오히려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제동행 헌혈의 가치를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촬영에 응했다. 전체 방송시간은 대략 20분 정도였는데 실제 촬영은 거의 하루 종일 이어졌다. 그전에는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 보면서 힘들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해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촬영인데도 교장 선생님, 동료 선생님들, 제자들이 자신들의 일들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촬영에 도움을 주셨다. 특히 수능이 끝나고 한껏 여유를 즐기던 제자까지 학교로 나와 적극적으로 인터뷰해주는 모습들, 타지에 있어서 참여는 못 하지만 축하드린다면서 연락하는 모습들이 고마웠다. 여러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촬영을 잘 마쳤고 약 한 달 뒤 방송이 나왔다. 방송을 본 선생님들, 학생, 학부모님들, 고향마을 어르신들, 친구들로부터 많은 축하와 응원을 받으며 길진 않지만, 학생들과 함께해온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간 질환으로 조직검사와 수술을 받게 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포함하는 가정경제의 대부분을 책임지시는 아버지가 병원 생활을 장기간 하시면서 가계도 어려워졌고 곧 고3이 된다는 중압감까지 겹쳐 학교생활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긴급수혈이 필요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헌혈증을 모아서 줬고 이러한 격려와 응원 덕분에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아버지도 더 힘을 얻어서 건강을 빠르게 회복했고 가족들도 각자 자리를 지켜준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헌혈을 시작했고 건강이 허락되는 한평생 하겠다는 생각에 18년째 250여 회의 헌혈을 이어가고 있다.


사제동행 헌혈을 시작한 것은 2015년 7월경이었다. 고3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4일째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밝고 상냥한 평소 모습으로 봐서는 무단결석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한날 연세 있으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왜 자느냐고 깨울 때 반항적인 태도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후 학교에 나오질 않았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의 안전이 걱정되어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결국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학생을 찾아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는 학생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몇 끼 거른 것처럼 얼굴엔 생기가 없었고 표정도 어두웠다. 따뜻한 국밥부터 먹이자 학생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하다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누워있고 곧 2차 수술을 해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으려 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 건강까지 나빠져서 야간 편의점 일도 그만둬야 했기에 장남인 자신이 나서야 했단다.

 

학교를 뛰쳐나간 그 날도 밤새 야간 일을 하고 학교에 왔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얼마나 컸을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몸이 쇠약해진 상태라 수술하기 위해선 수혈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 학생들과 헌혈을 하여 헌혈증을 모아서 내가 갖고 있던 헌혈증 50장을 더해 70여 장을 전해줬다. 또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의로 지각비, 체육대회 상금 등으로 모은 학급비 일부를 같이 전했다. 이를 받고는 학생은 펑펑 울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친구들아 고마워 잊지 않을게”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불편한 몸이지만 신체를 많이 쓰진 않는 간단한 일 정도는 하실 수 있게 되셨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학생의 태도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헌혈하고 싶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모아주신 헌혈증을 보고 힘을 많이 얻었었어요. 다음에 헌혈하실 때 불러주세요.” 이후 내가 헌혈의 집을 찾을 때 함께 헌혈하고 헌혈증 기부도 했다. 그렇게 사제동행 릴레이 헌혈은 시작되었다.

 

헌혈을 하면서 이 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학생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 장교로 근무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생은 군대에 관심을 가졌다. 책임감이 강하고 운동도 좋아하는 학생에게 학비 부담을 적게 주고 일찍 돈을 벌 수 있는 군 부사관의 길을 추천해주고 관련 학과를 안내해줬다.

 

학생이 평소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부사관 조리학과에 입학했고 2년 뒤 학생은 제복을 입고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 이번에 부사관 임관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리고 저 요즘에도 헌혈해요. 선생님처럼 앞으로도 평생 헌혈 할 거에요.” 늠름한 군인이 된 모습이 너무나 대견해 보였고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준 것이 고마웠다. 함께 이전에 갔었던 국밥집에서 아버지가 제복 입은 아들을 친척들과 아버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셨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울었고 학생도 울었다.


학생들과 함께 헌혈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부터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헌혈의 집을 찾았다. 동아리원이 주축이 되었고 함께 헌혈에 참여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했다. 헌혈 후에는 헌혈증을 모아서 필요한 곳에 기증하기로 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홍보영상으로 만들었다. 헌혈로 나눔을 받는 사람도 변하지만 헌혈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이 변화된다.

 

학교폭력으로 처벌을 받은 이후 학교와 가정에 반감을 가지고 가출한 한 학생이 있었다. 95일째 집에 안 들어가고 있다가 우연히 학생들을 데리고 헌혈하러 시내에 온 우리와 마주쳤다. 당시 나는 이 학생이 가출한 지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마침 헌혈 전이고 해서 “우리가 헌혈하러 왔는데 함께 할래?”라고 물었는데 학생이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듣고 보니‘열심히 학교생활도 하고 헌혈도 하며 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자신의 신세가 왜 저렇게 되었는가’ 하는 처량함에 흘린 눈물이었다. 헌혈 홍보 영상을 만드는데 이 학생 사진이 활용됐고 수시로 학교 모니터에 방영되는 공익광고영상에 나오는 자신을 보면서 학생의 마음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혼 가정에서 줄곧 외로운 삶을 살다가 자신도 이렇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구나 함을 느꼈단다. 그 이후로는 이 학생은 헌혈동아리에 가입했고 함께 자전거도 타고 헌혈도 하면서 그렇게 자주 피던 담배도 끊었다. 무엇보다 가출한 지 100일이 조금 넘어간 날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헌혈에서 느낀 보람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삶이 변한 것이다. 철도관련학과로 진학한 학생은 졸업 후에도 가끔 연락을 해온다. “선생님처럼 헌혈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많이 하여 멋진 삶을 살고 싶어요.”
 

헌혈에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과 헌혈의 집에 가서 검사도중 실격당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헌혈은 몸이 건강해야지 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만의 특권이기에 학생들과 헌혈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드민턴, 족구, 등산, 헬스, 탁구, 자전거 라이딩 등 다양한 운동을 함께하다 보니 헌혈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건강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운동 자체를 좋아하여 참여하는 학생도 있었다. 반에서 운동 꽤나 한다는 학생들이 헌혈동아리에 족구, 배드민턴 경기를 하자고 해왔다. 그중에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함께 운동하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마침내 헌혈도 함께하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들도 점차 변화되어갔다.

 

생활지도 효과까지 보면서 지도하기 힘든 더 많은 학생들이 내게 맡겨졌다. 그렇게 동아리에서 시작한 것이 학년, 학교 전체의 활동이 되었고 100인 헌혈 릴레이, 헌혈 UCC 제작, 온라인 헌혈캠페인 활동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선도위원회 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들이 변화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도 우리의 릴레이 헌혈과 헌혈증 기부운동에 참여하신다. 또 헌혈의 집, 시청, 지역주민 센터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과의 헌혈 활동을 응원해주신다. 지금까지 학생들과 함께 헌혈한 헌혈증 230매를 기부했고 올해도 100매 기부할 예정이다. 모두의 관심 속에 변화되어가는 여러 학생들을 보면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우리 학생들이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학교, 가정, 지역사회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내가 나온 방송영상의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나눔이란 ‘함께 하자는 마음이 모여 큰 희망이 되는 기적’이다. 학생들과 마음을 모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또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변화되어가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앞으로도 사제동행 헌혈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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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대상 수상자 수상 소감
졸업 후 찾아온 제자들과 순대국밥 한 그릇 먹고파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하다 비평준화지역에 생활지도가 가장 힘들다고 소문난 고등학교로 왔을 때 학교를 옮긴 것이 잘못된 선택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었다. 인성교육을 위해서 아니 정글과도 같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제동행 등산, 헌혈, 자전거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1년 정도 지났을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이 들 때쯤 굳게 닫혀있던 학생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헌혈을 하고 이를 위해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족구, 탁구, 배드민턴 등 여러 운동을 하면서 학생들과 나 사이에는 끈끈한 의리 같은 것이 생겼다. 덕분에 가출 중인 학생이 돌아오고 학업중단위기, 학교폭력피해 상처를 함께 이겨냈다.


한 제자가 기억난다. 헌혈로 자신도 값진 존재임을 깨닫고 난 후부터 학교생활이 변하더니 부사관이 되어서 찾아와서는 여전히 가정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버지가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을 인사시켰다는 이야기를 했다. 쇠약해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며 제자도 울먹였고 듣던 나도 내내 울었다.


연말 시상식들을 보면서 나라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막상 소감을 적으려니 하고 싶은 말들이 정리되지 않아 삼일 밤낮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내 이름처럼 용기 내어 마무리해본다.

 

먼저 늘 나의 열정을 응원해주고 지난해 셋째까지 낳아준 아내, 두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수술받기 직전까지도 매일 새벽 나와 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어머니, 처음 고등학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셨던 영원한 멘토인 김장수 선생님, 그리고 기꺼이 사제동행 활동에 동참해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특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한 글이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라고 용기를 주신 한국교육신문과 한국교총에 감사하다. 덕분에 학교를 옮기고서도 계속 진행 중인 사제동행 활동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쭉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제야의 종이 울리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여러 졸업생들로부터 새해 인사와 함께 찾아뵙겠다는 문자들이 왔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고 또 군대에 가 있는 녀석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헌혈 끝나고 자주 먹었던 순대국밥이라도 한 그릇씩 먹여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