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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보물1호 가슴에 심은 민들레꽃

 

덜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1988년 초임지에 설렘으로 교직의 문을 두드리던 햇병아리 교사가 어느새 30년을 넘기며 어미 닭이 되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품어내고 있다. 항상 새로이 맡게 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기대와 소망이 차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 내 가슴속에 민들레 꽃씨가 되어 나를 더 좋은 교사로 세워주는 사랑하는 나의 첫 보물인 민들레꽃이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발령지 시골 학교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어 금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의 고자질을 자주 받던 금주, 어디 하나 사랑스러운 구석이 없이 옷은 땟물이 지르르 흘렀고 얼굴도 손도 거칠어서 이 아이가 지금 아홉 살 아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금주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속 중심인물이 금주였다. 이미 1학년 때 담임 선생님도 나에게 금주 때문에 1년이 그리 편치 않을 것을 예고해 주셨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라고 그냥 대충 다루면 안 된다고 오히려 선생님이 당하게 된다고. 설렘이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려왔던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설령 내가 금주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이 아이는 하나님이 나를 교사로 세우시고 나에게 준 첫 선물이자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잘 보듬어주고 이 아이에게도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금주를 알아야 했고 금주의 편이 되어야 했다. 다행히도 그때는 지금은 사라진 가정방문이 있어서 가장 먼저 금주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드디어 가정방문을 하는 날, 그 집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맞이했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셨다. 남편이 50 넘어 찻집 마담과 만나 생긴 아이로 어느 날 갓난쟁이 금주를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나이 차이 많은 언니 오빠도 금주 때문에 아빠를 미워하고 엄마의 속상하고 아픈 마음만 다독일 뿐 금주는 집안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할머니 아니 금주 어머니, 그래도 금주를 받아들이고 지금껏 잘하든 못하든 키우고 계시잖아요. 금주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금주는 그래도 엄마가 무척 좋다고 말하던데요. 속상한 마음을 알겠지만 그래도 금주가 엄마가 있어서 행복한 아이가 되면 좋겠어요.”
난 이 말을 남긴 채 금주의 집을 나왔다. 어떻게 하면 내가 금주의 아픈 마음을 만져주고 그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금주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아이들이 고자질할 때마다 금주의 손을 잡아주고 금주를 안아주며 금주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금주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자취방에 놀러 오면 라면(그땐 시골에서는 라면이 귀할 때)을 끓여주면 행복해하는 금주였다. 날씨 좋은 날에는 나들이도 갔다. 진달래도 피고 철쭉도 피고 목련도 피는 시골 마을 그 예쁜 꽃 다 제치고 왜 그리 작고 노오란 민들레꽃을 좋아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금주는 왜 민들레꽃이 좋아? ”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돌보지 않아도 어디에든 잘 자라면서 꽃을 피우고 그 꽃씨를 바람에 날려 또 다른 민들레꽃을 피우니까 좋아요. 이 꽃을 보면 저를 보는 것 같고 저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금주는 작고 노오란 민들레꽃을 바라보며 자신을 보았나 보다. 그 뒤로 나도 민들레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4월 어느 날 도시락을 싸와야 되는 날인데 금주는 싸오지 못했다. 그래서 조용히 불러 물었다.
“금주야, 왜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어?”
“도시락을 씻어 놓지 않았다고 밥 싸갈 자격 없대요, 엄마가.”
너무나 내 마음이 시려왔다. 친딸이었다면 아홉 살짜리 도시락을 씻으라고도 안 했을 것이고 설령 안 씻었다고 밥을 굶게 하지 않았을 텐데… 난 금주를 내 옆자리에 불러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그랬더니 아이들도 한 숟가락씩 덜어다 금주의 그릇에 채워 주었다. 그 뒤로 난 도시락에 밥을 눌러 싸오는 버릇이 생겼다. 그 뒤로 금주는 일부러 내 도시락을 같이 먹고 싶어서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듯했다.
 

5월 어느 날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할 때였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금주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와 보니 내 가방이 열려 있었다. 지갑을 확인해 보니 3천 원이 사라졌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금주를 바라보았다. 분명 금주가 훔쳐 간 것이라고 했다. 금주를 조용히 불러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혹시 선생님 돈 가져갔냐고 하니 절대로 안 가져갔다고 펄쩍펄쩍 뛰었다. 순간 방망이로 내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랑으로 이 아이를 보듬어 주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나 싶었다.

 

“금주야, 선생님은 정직한 어린이가 좋더라. 사실대로 말해주면 안 될까?”
“아니에요. 선생님도 저를 도둑 취급하시네요”
정말 내가 실수 했나 싶어 금주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하교를 시켰다. 그런데 다음날 우리 반 아이가 어제 금주가 문구점에 들러 돈 3천 원으로 뭘 사고 사 먹기도 했다고 말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주가 내 지갑을 손댄 것 같아 다시 그날 남겨놓고 이야기했다.
“금주야, 선생님은 네가 원하면 돈을 줄 수 있단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것도 남의 것을 욕심내거나 몰래 훔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돈을 가져간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끝까지 거짓말하고 솔직히 말하지 않는 것이야.”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사실은 어제 가져갔어요. 저도 사 먹고 싶은데 엄마는 뭔 돈 달라고 하냐며 혼만 내셔요.”
“그랬구나. 사실대로 말해주어 고맙다. 어제 그 돈은 선생님이 너에게 주었다고 생각할 테니 앞으로는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착하고 예쁜 금주가 되면 좋겠구나. 약속해 줄 거지?”
 

그리고 다음 날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이 잃어버린 돈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 뒤로 난 월급날이 되면 금주에게 용돈을 주게 되었다. 소풍 가는 날이면 김밥과 과자, 용돈을 주었다. 그렇게 금주는 아이들도 괴롭히지 않고 점점 마음이 예쁜 아이로 자랐다. 그 해 2학기에 내가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다. 금주는 머리가 똑똑한 아이이고 창의성이 많은 아이였다. 수업 중 똑똑하게 발표를 해서 선생님들의 입이 벌어지게 했고 내 수업을 빛나게 했다. 참관하신 선생님들마다 금주의 달라진 모습에 박수를 보내주셨다.

 

점점 금주는 자신감이 넘치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주말이면 우리 집에와 라면도 먹고 교회도 같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금주는 예수님을 좋아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주시는 참 좋으신 예수님이 금주를 너무 사랑하신다고 늘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제 말썽꾸러기 금주는 사라졌고 천덕꾸러기 금주는 점차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어느 날 금주는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내심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을 엄마라고 불러도 되나요?”
“뭐~ 선생님은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그래도 금주가 그러고 싶다면 친구들이 없을 때 엄마라고 불러도 돼.”

 

가끔씩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교실에 다시 들어왔다. 엄마라고 부르는 금주를 안아주고 금주에게 넌 사랑받기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넌 이미 사랑받는 존재라고 나도 금주에게 속삭여 주었다. 그렇게 행복한 1년을 보내고 3학년으로 진급한 금주는 수업이 끝나면 우리 교실에 들러 하루 이야기를 조잘조잘 나에게 들려주곤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공부하여 꼭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 교실에 오면 엄마라고 불러주던 금주였는데 3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름방학 물놀이 갔던 금주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왜 금주를 이리도 빨리 천국으로 부르셨나요?”

 

난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다. 그 뒤로 난 새 학년이 되면 항상 금주를 떠올리고 내가 새로 맡게 된 아이들을 바라보며 금주의 민들레 꽃씨를 뿌리곤 했다. 아마도 내 마음 속 보물 1호 금주의 민들레꽃 덕분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마음이 달라지게 되어 32년 되는 나의 교직 경력 속에 민들레꽃들이 자라난 민들레 꽃밭이 되었다. 내가 힘들 때 말없이 다가와 속삭여 주고 아직도 내 가슴속에 생생한 모습으로 행복한 웃음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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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 은상 수상 소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30년 넘게 만나온 아이들, 내 가슴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어느새 금주가 다가와 속삭였다. 금주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하교 시간에 한 녀석이 ‘선생님 무엇 하시기에 미소 지으세요’ 하고 묻기에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하니 하늘나라에 갔으면 슬픈데 왜 웃냐고 했다. 난 그 친구가 30년 넘도록 내 맘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또 다른 금주를 찾는다. 나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를. 그 아이가 나에겐 금주일 테니까. 금주의 ‘선생님 고맙고, 사랑해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는 성경 말씀을 통해 교사인 내가 얼마나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텃치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교육의 열매를 거둔다고 믿는다.

 

눈물을 흘린다는 표현 속에는 힘을 다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큰 희망을 가지고 온 정성과 사랑을 쏟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요즘 생활지도가 무척이나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교단을 지키며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아이들을 품고 사랑과 열정으로 희망을 품은 교육의 씨를 뿌리는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분명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올 거라 확신한다. 또한 금주와 같은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향해 사랑과 웃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아마도 지금 금주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금주야~ 그리고 내가 만난 빛나는 모든 보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