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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발장에 간직된 제자와의 사랑


2006년 3월 1일 충북 괴산의 목도리에 위치한 작은 시골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전교생 학생 수는 60명이 안 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교사 소개를 하는 첫날! 애국가 제창을 부르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는 그 공간을 가득 채워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또한 가슴 떨리며 소개를 받고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순수한 모습이 저에게 가슴 뜨거운 애정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23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3학년 담임을 배정받은 첫 시간! 교실에 들어서니 정적 속에 아이들의 눈동자는 저에게 온전히 와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잠시 저 자신을 소개하고 학생들 모두도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쑥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겨우 이름 석 자만 말하는 아이, 웃음 가득 담아 애교부리며 소개하는 아이, 늠름하고 씩씩한 아이, 살포시 자신을 드러내며 다소 길게 소개한 키 큰 여학생… 자신은 실장이라고 덧붙이더군요.
 

유난히도 실장은 듬직함이 보였습니다. 첫날 종례를 마치고 뒤따라온 실장은 저에게 찾아와서 학급 아이들의 특징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여럿 있었고, 저는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서 거의 매일 1시간 30분 걸리는 시골길을 출퇴근하였지만 힘들기보다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들풀처럼 꾸밈없이 순백색의 모습으로 매일 기쁨으로 채워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나날들 속에는 매우 다양한 일들로 채워졌습니다.
제가 그해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공주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는 과정이었습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친 후에 아이들은 어김없이 제 차 유리창에 모여 안전운전을 기원하고 선생님 열심히 공부하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으로 차 전체를 도배하는 이색적인 일들이 매번 있었습니다. 심지어 백미러까지 붙여 놓아 운전에 방해될 정도여서 다른 선생님들은 그러지 말라고 하였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행동을 하였지요. 1년간을 아이들의 함박꽃 같은 사랑을 받으며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공주대까지 행복하게 공부를 하러 다니곤 했습니다.
  

또 다른 뜻밖의 이색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임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신발장에 음료수, 과자, 초콜릿, 목캔디 등을 넣어 놓았고, 심지어 편지가 간간 넣어져 있었습니다. 이름조차 쓰지 않고…
출근하자마자 발견한 갖가지 것들은 하루를 웃음 넘치는 기쁨으로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맑은 사랑이 담긴 아이들의 행동에 저도 온 힘을 다하여 수업을 준비해서 가르쳤으며 사랑도 듬뿍 주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4월 오후 교무실 창밖 너머 낮은 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는 반응을 보여 방과 후에 아이들과 함께 가기로 하고 처음으로 새싹이 돋아나는 4월 어느 날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아이들끼리의 대화도 듣고,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올랐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아이들은 종례를 마치고‘선생님 뒷산 가요. 산에 있는 풀과 꽃과 나무가 궁금해요.’ 이렇게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한 번의 경험을 하게 한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임을 깨닫고 그 후 몇 번을 더 올랐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늘이 되는 나무의 위력도 느끼며 올랐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을 보면서 아이들도 행복한 색깔이 나뭇잎처럼 즐거워했습니다. 처음으로 보라색 가지 버섯도 한 보따리 따고, 식물 이름도 함께 이야기하고, 겨울에는 교실에서 흰 눈이 덮인 산을 보면서 아이들이 쪄온 고구마를 먹으며 훈훈한 시간을 가지며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아름다운 행동들은 맑은 바람, 변함없는 흙과 함께한 자연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저 또한 그들을 닮아 덩달아 마냥 걱정 없는 아이들처럼 지냈습니다.
 

어느새 12월!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 진로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고민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가정환경, 자신의 성적, 관심 있는 분야 등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저는 아이들 개개인을 파악하고 좀 더 깊숙이 이해하는 시간으로 신중하게 진로지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한편으로 이렇게 착한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도 점점 짙어졌습니다. 그중에서 도시로 가는 5명의 아이에게는 도시아이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기초 교과를 담당한 영어 교사로서 특별히 방과 후에 무료로 수업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 학급 실장은 도시로 가지 않고 병설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고 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선생님 옆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며 굳은 의지로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옆에서 매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더없이 기쁜 나머지 웃음으로 화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모두 원하는 학교 진학을 앞두고 졸업식이 다가왔습니다. 대부분 학생은 병설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니 서운한 마음은 덜했지만, 도시로 진학하는 몇 명 아이들은 매우 슬퍼했고, 그 친구들과 헤어짐에 서운한 친구들은 모두 울음바다로 채웠지요. 아이들은 식을 마치고 교실에서 함께 1년을 공부한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작은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의 현수막까지 준비해놓았습니다. ‘길당’이라는 호를 가진 저는 늘 아이들이 길당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저는 가슴 벅찬 마음으로 아이들과 초코파이 케이크를 함께 먹으면서 울음 반 웃음 반으로 지금껏 가장 잊지 못할 파티로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그 현수막에 아이들 개개인이 쓴 소중한 글을 보면서 많이 성장했을 그리운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저는 수시로 개개인에게 포스트잇에 좋은 글귀 혹은 아이들의 특징을 담아 주었습니다. 그것들은 아이들에게는 희망의 충전으로 더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곤 하였습니다. 교사의 작은 관심은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 후 저는 담임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그런 방법을 수시로 적용해왔습니다.
 

아이들 졸업 후 새로운 아이들을 맡아서 그 후 4년을 더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발장에 여전히 편지 혹은 갖가지 음료수, 과자는 이따금 놓여 있었습니다. 누구의 행동일까? 궁금하였지만 그런 날은 특별히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3년이 지나고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하게 되고 순간순간 소식을 전해주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듣게 되었지요. 저에게 압도적으로 듬직했던 실장을 저는 ‘듬직이’라 불렀습니다. 실장은 특별히 생각의 깊이가 매우 컸습니다. 신발장에 수시로 편지를 쓰고 음료수를 넣어 놓았던 학생은 바로 실장 허 00이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 강북에 있는 ‘S’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랑을 담은 책임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늘 학구적이었던 이 제자는 꿈 너머 꿈을 향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의 이런 저력은 자연의 환경에서 인내하며 지내온 학창 시절이 더 단단하게 해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지난여름 서울대에서 연수를 받는 도중 학급 실장이었던 듬직이로부터 우연히 연락이 와서 연수를 마친 후 서울대 주변 산을 함께 오르기로 하고 두 시간 정도 산행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마음도 생각도 훌쩍 커버린 제자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로 내려오는 내내 잘 자라 사회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따뜻한 간호사로 많은 환우들에게 희망을 담아 기쁘게 해주고 있는 제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37년 동안 교단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치시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교사의 따뜻한 관심의 손길이 아이들을 좋은 품성과 배려와 나눔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교실에서 각자 다른 모습의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을 인정해주고 귀 기울여주는 것. 대나무의 성질처럼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4~5년 뒤에 급격하게 변화된 모습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교사로. 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오늘도 알찬 수업을 준비해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도 경청하는 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길당’ 선생님의 모습이 아이들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수석교사로서 7년을 지내오면서 교단에 서는 교사들에게는 학생 중심의 알찬 수업 교수법을 함께 나누고 이끌며, 아이들에게는 좀 더 창의적인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사로 꿈꾸며 준비하는 모습으로 오늘도 열정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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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씨 뿌리며 걸어온 37년간의 교단 생활

씨 뿌리며 가꾸고 걸어온 37년간의 교단에서의 생활은 설렘으로 맞춰나간 모자이크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형태의 성향을 가진 아이들로 지도하며 울고 웃었던 시간도. 중퇴 위기에 처한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산 넘고 넘어 가정방문을 하며 울었던 시간도. 늦은 밤까지 혼신을 다해 지도했던 많은 시간도 모두 저의 삶을 조각조각 채웠습니다. 긴 시간 같았던 교단에서의 생활이 번개처럼 흘러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궂은 날씨 때마다 걱정해주는 쉰 넘은 제자의 전화 소리에도, 해마다 스승의 날 잊지 않고 찾아와 책상 서랍과 연구실을 정리해주는 제자들. 자녀교육에 대한 상담도. 이제는 만나면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제자들이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 교단에서의 뿌렸던 씨앗이 잘 성장함에 홀로 흐뭇한 미소도 지어봅니다. 남은 교단생활에서도 미래 사회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연구하고 준비하는 교사로, 아이들에게 경청하는 교사로, 동료와는 협업하며 소통하여 밝은 교단을 이루는 통로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교총에서 추진해주신 교단수기를 통해 제 삶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