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시험이 임박할 즈음이 되면 신체증상 호소로 등교를 할 수 없거나 계속되는 지각과 조퇴 등 출결 문제가 누적돼 상담센터를 찾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늘어난다. 이 같은 신체증상은 서서히 진행됐지만 처음에는 내과를 비롯한 다른 의학적 진단과 치료를 받으러 여러 병원을 다니며 고군분투하다가 뚜렷한 의학적 소견이 없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게 되면 상담실을 찾는다. 일상에 지장 주는 신체증상과 증상에 대한 불안, 두려움 동반 임상적으로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는 고통스럽거나 일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하나 이상의 신체증상(예, 두통, 복통, 메슥거림, 구토, 소화불량, 목 이물감, 설사, 어지러움, 심장 뜀, 가슴통증, 오한, 피로감 등)이 존재하며, 이와 관련된 과도한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이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증상의 심각성에 대해 계속해서 몰두’하고 어떤 경우는 자신의 ‘건강이나 증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안’해 하며, 또 어떤 경우는 ‘건강 염려에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물론 이 모든 양상이 동시에 나타내는 경우도 존재한다. 나열된 특징을 유심히 살펴보면, 신체증상 자체보다는 이들이 호소하는 고통
자해는 자살을 하려는 목적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자살행동과 구분없이 사용돼 왔다. 그러나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는 ‘죽을 의도가 없는 자해’를 추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진단적 상태로 분류하면서 자해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됐다. 이후, 자해를 ‘비자살적 자해행동’이라고 부르며 연구되고 있으나,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자해는 지속적, 의도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상습화되는 경향이 있다. 또 자해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자해와 자살시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해 자칫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어 그 위험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여전히 자해를 하는 사람들은 자해를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여겨 숨기려 하기 때문에 자해율은 실제보다 낮게 보고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임상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그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자해에 대한 사진이나 자해를 암시하는 메시지들이 게시물로 올라와 공유하는 현상이 빈번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그러한 게시물들을 통해 자해를 모방하기도 하고, 자신의 자해를 정당화하기도 하며, 자해라는 공통적 요소를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조울증으로 알려진 양극성 장애는 1형 양극성장애와 2형 양극성장애를 위시해 몇 가지 추가적인 양상으로 진단될 수 있는 정신장애다. 특징적으로 2형 양극성장애는 일생 동안 한 번 이상의 주요우울삽화와 한 번 이상의 경조증삽화를 경험해야 하지만, 1형 양극성장애는 반드시 주요우울삽화를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구분한다.(註: 삽화=정신의학에서 삽화episode는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 1형 양극성장애로 진단된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러 차례의 주요우울삽화를 경험한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이처럼 양극성장애의 진단은 상당기간 관찰하고 추적한 후에 내려질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도 주의를 요한다. 치료에도 상당 시간이 필요하고 일반인들이 적절한 코칭으로 호전을 돕기 어렵다. 실제 양극성장애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며, 치료과정에는 질환에 대한 증상교육과 부모교육은 필수가 돼야 한다.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조울증 전문가도 주의하며 판단하는 질환 양극성장애는 조증삽화(혹은 경조증삽화: 조증 삽화의 증상들이 보다 가벼운 상태로 적어도 4일간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지
새학기가 시작되면 교실 한 쪽에서는 주변의 상황이나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이나 매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서 자는 아이, 혹은 쥐 죽은 듯 책만 보고 있는 아이 한둘은 관찰된다. 소위 ‘전따(혼자서 전체를 따돌리는 것)’로 보이는 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로만 분류해 개입하면 안된다. 불안으로 인해 교실 적응이 어려운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미래에 위협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미래에 닥칠 위협을 과대평가하고 조심하며, 대비하려 한다. 대체로 과각성 상태에 근육긴장을 보이며, 위협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회피하는 행동 특징을 나타낸다. 불안장애에 해당되는 질환들은 그 대상이나 상황, 그리고 관련된 인지적 관념, 즉 관련된 생각이나 믿음의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부정적 평가 더 과하게 해석 불안 증폭과 반복의 악순환 특히 교실에서 고립돼 있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등 학교 적응이 곤란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불안장애는 자신이 주목받거나 평가받는 상황과 관계를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불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특징에 대한 이해는 매우 얕은 것 같다. 때문에 아이들이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기만 하면 ADHD라고 오인하고 낙인 찍으며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거나 일반 아이들과 달리 분류해 열외시키는 경우를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로 인해 부모와 아이는 상처를 받고 교사는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본고는 ADHD의 특징을 알고 진단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교실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실효성 있는 개입을 함으로써 별별이가 생활하는 교실이 더욱 나아지고 별별이를 대하는 교사는 더 높은 효능감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ADHD진단과 그 원인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아이의 부주의하고 충동적인 특징으로 인해 교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과 그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이의 생략된 생각, 이해하고 바르게 표현하는 법 알려줘야 부주의 및 과잉행동 문제를 나타내는 아이들이 수업 중에 하는 질문들은 교사들과 반 학생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내용인 경우가 흔하다. 하
본지는 ‘마음챙김 상담소’, ‘함께 걷는 인생상담소’에 이어 세 번째 상담시리즈로 ‘별별이교실상담소’를 시작합니다. 이번 기획은 대부분의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이상(abnormal)’으로 여기기보다 좀 별스럽고 유별나며 특별한 모습으로 여기고, 어떻게 하면 별스러운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심해 보고자 마련했습니다. 1년간 매월 1회 연재를 통해 주제별로 교실에서 만나는 별(別)스러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함께 생각해 보고 아이들 제각기 마음속에 있는 별(★)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스마트폰과 게임, 그리고 인터넷(이하 미디어)에 과몰입하거나 중독돼 적응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이 주변에 많다. 아이들은 미디어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끊기 위한 자기 각성과 자기 동기가 부족해 미디어를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실제 임상현장에서도 미디어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충분히 유도하지 못했거나 벗어나려는 시도는 했지만 그 방법이 개인에게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기에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사례들을 자주 목도한다. 아이들이 미디어를 과하게 사용하거나 중독에 이르면
누구나 늙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젊고만 싶다. 그래서 저마다 어떻게 하면 노화를 늦추고 더 젊어보일지 여러 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결국 누구나 노화한다. 노화를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멋지게 나이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를 상상하고 소망하는 것은 행복한 노인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적극적 태도로의 변화를 뜻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노화에 대응하던 것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노화에 반응하는 새로운 접근인 것이다. 피부를 포함한 신체노화든, 인지적인 노화든, 노화가 느껴질 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죽을 때가 됐구나, 아이고 이럴 바에 죽어야지’라고 반응하는 노인과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그럴 수도 있지, 자네가 좀 이해하게’라며 멋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노인은 분명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저 어르신, 참 멋있으셔’할 때가 있고, ‘늙어도 곱게 늙어야지’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노인들의 모습에 우리를 비춰보고 자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품위있는 노년이 되는 비결은 결국 ‘나는 이런 노인이 될거야’라는 의식과 태도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막을 수 없는 신체
흔히 은퇴 준비라고 하면 적당한 자산과 건강 등 노후의 안정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은퇴 준비의 중심에 있어야 할 과제는 그 어떤 것보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 나이가 든다고 해서 누구나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 아냐 인지, 공감능력 갖는 노력 필요 사전적 의미로,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것보다 진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은퇴 준비이며, 또 그것이야 말로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있어 필수적이면서 본질적인 이슈라 할 수 있다. 나이를 막론하고 어른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는 단연코 지혜일 것이다. 지혜는 삶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다. 성인발달 연구에 큰 공헌을 한 발테스(Baltes)는 지혜를 구성하는 요소로 풍부한 경험, 높은 인격, 자기반성과 모순의 인식, 동요하지 않는 정
많은 심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발달 과제가 점차 유예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20대만 되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었지만, 요즘 20대는 대부분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며 각자의 커리어를 쌓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에 따라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도, 취업을 하는 시기도, 더 나아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레 부모와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조차도 독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10여년 간 대학에서 1~2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발견한 것은 20대 청년들이 대학에 와서야 진정한 사춘기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 고등 시절의 사춘기는 단순히 부모에게 반항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에 그쳤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와서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 자신의 정체성과 삶, 철학 등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나마도 20대 청년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 같지
끝없이 반복되는 양육과 자녀와의 갈등으로 떠나고 싶다는 부모들이 많다. 차라리 아이가 눈에 안 보이면 살 것 같다는 것이다. 무력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떠나는 것이 아이도 살고 자신도 사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녀는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면 알아서 하도록 손을 놓겠지만, 애석하게도 자녀는 혼자서 크지도 않는다. 그래서 양육이 힘든 것이다. ‘~해야만 해’식 생각 많으면 양육에서 지칠 수밖에 없어 인생을 살면 살수록 적당한 보통의 삶이 참 힘들다는 것을 알아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생의 쓴맛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며 손에 움켜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힘을 빼기 시작한다. 양육에도 이런 내려놓음의 태도가 필요하다. 내려놓자고 하면 부모들은 포기를 생각한다. 여기에서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도 움켜 짐도 아닌 적당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양육에서 적당함은 그 어떤 것보다 힘들다. 분명히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올려 자녀에게 쏟아붓고는 결국 지치고 만다. 그렇게 지쳐서 다 포기하거나 포기하
인생에 있어 일과 인간관계는 모두 중요하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초기 성인기 청년들의 주된 어려움을 들어보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순수하게 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 많다. 이 시기 청년들은 인생에 있어 일인지, 사람인지 마치 시소를 타듯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 같다. 일과 인간관계의 균형, 과연 직장생활의 필수일까. 실상 이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보면 무언가 조금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직장에서 일과 인간관계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다. 삐걱이는 인간 관계 있다면 나, 상대, 제3자 모두 살펴야 20대 후반의 여성이 직장 상사에 대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찾아왔다. 그런 상사 밑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자니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기도 하고, 꿈도 있어 퇴사를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는 그 상사만 아니면 다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
사람들은 누구나 집단에 소속되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랑을 확인하며,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경험하기 원한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계에서의 만족 혹은 상처라는 극적인 다이나믹의 정점에 있는 것은 단연코 연인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사이에 주고 받는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을 두고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누가 누구의 우위에 있는지,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지와 같이 자기 자신의 자존감이나 가치와 연결시킨다. 더 나아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불신 등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까지 해석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근거없는 관계의 긴장감을 겪는다. 이처럼 미숙했던 과거 경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상처는 반복되고, 성숙한 관계 경험을 통한 진짜 만족은 결코 맛볼 수 없다. 데이트, 연애, 그리고 결혼이라는 삶의 이슈들을 순조롭게 완수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관계 맺음의 시작이 중요하다.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관계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하고 싶다.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를 했을까?’,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준 것
꿈은 무엇인가? 진로와 적성은 또 무엇일까? 필자는 ‘꿈, 진로, 적성=성적’이라 생각하는 안타까운 청소년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은 공부를 못하면 진로와 적성을 가질 수 없다고 좌절하거나, 남들에게 좋지 않게 보일 것이라는 염려로 눈치를 본다. 마지못해 선택한 직업을 꿈이라 착각하기도 하며,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 전공과 직업을 선택하고 그것이 적성이라 생각한다. 참고 또 참으며 힘들게 공부해서 소위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도 들어갔지만 행복하지 않은 청년들도 자주 만난다. 이들은 뒤돌아보니 지금 순간을 위해 그렇게 참아왔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무엇을 위해 이제껏 견뎌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지금의 삶이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지만, 겉으로는 누가 보아도 성공한 삶이기 때문에 놓을 수도, 누릴 수도 없는 것이라고 토로한다. 막연한 불안 때문에 하는 공부 나중에 공허하고 불행해져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무엇을 위해 해야하지’와 같은 너무도 다양한 이야기가 왜 우리 청소년들의 삶에 그들의 생각으로, 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청소년들의 꿈, 진로, 적성은 고민의
학령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상담실을 찾는 부모들은 여지없이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 애는 언제쯤 공부할까요?’, ‘이제는 공부를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마다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로 상담실을 찾지만, 부모는 아이의 심리적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 싶으면 하나같이 공부에 대한 바람, 혹은 걱정을 늘어놓는다. 자녀가 공부를 잘 해준다면 부모는 자녀에게 고마워할 일이다. 그러나 공부를 못한다고 자녀가 마치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역으로 부모 자신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대는 변했다. 또 더욱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부모의 생각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본인들의 경험에 비추어 부모상과 자녀상을 만들고 남들이 달려가는 곳을 향해 무조건 내달리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다르며, 자신과 다른 시대를 살고 있으며 또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자녀를 키우려고 무던히 애쓰는 부모들이 결국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과연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모는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아이들이 학령기(8~12세)에 접어들면 비교적 안전하면서 가까운 관계인 가족이라는 작은 집단에서 점차 또래관계라는 치열한 집단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래집단은 나름의 특성에 따라 외모, 운동능력, 학업능력 등 다양한 매력을 기준으로 서열이 매겨지기도 하고 구체적인 관계 특성이 형성된다. 특히 아이들은 또래관계 속에서 사회기술뿐만 아니라 인지기술을 배우며 성장, 발달한다. 또래관계 속에서 사회성이 발달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또래관계 경험을 통해서 인지가 발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아이들은 집단 속에서 여러 아이들과 각자의 특성과 나름의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을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자신에 대해 의식하며, 사회적 기술과 자존감뿐만 아니라 사고 및 인지, 통찰 등 많은 영역의 능력들을 습득한다. 집단 속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간의 다름을 인식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을 탐색하는 것이다. 가령, 누가 자신을 좋아하고 누가 자신을 싫어하는지, 자신의 어떤 점을 싫어하는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자신에게는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