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다. 한글날은 1926년 ‘가갸날’로 시작됐다. 당시 조선어연구회가 주축이 돼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했다. 1928년부터는 ‘한글날’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이후 1945년부터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됐다. ‘기역’ ‘기윽’ 둘러싼 논쟁의 의미 최근 ‘기역을 기윽으로 바꾸는 세계운동본부’에서는 ‘기윽·디읃·시읏’을 기존의 ‘기역·디귿·시옷’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6세기 학습서 ‘훈몽자회’ 편찬 당시 자음자의 이름을 한자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윽·읃·읏’ 소리를 낼 한자가 없어 ‘니은·리을·미음·비읍’ 등과 다르게 부득이 ‘기역·디귿·시옷’으로 표기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한자 표기로 제약받던 시대의 관습을 한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오늘날까지 고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다. 이 논쟁의 핵심은 “우리는 왜 그렇게 부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생겨난 배경을 찾아보며 적절성을 되묻는 태도다. 교육의 본질은 정답 전달을 넘어 이미 주어진 답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질문을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참아 왔다. 학생과 학교, 교육을 위해서라면 조금 손해 보는 것쯤은 당연한 미덕이라 여겼다. 교사의 처우나 권리를 이야기하면 혹시 아이들보다 자기 이익을 먼저 앞세우는 교사로 비칠까 두려워 스스로 말을 삼키기도 했다. 묵묵히 교실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교사의 숭고한 도리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다.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는 교육의 주체로서 바로 서기 위한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 행사다. 침묵하면 권리 지킬 수 없어 우리는 침묵한다고 해서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뼈아프게 경험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기여율은 7%에서 9%로 올랐고 연금 지급률은 1.9%에서 1.7%까지 단계적으로 낮아졌다. 지급 개시 연령 또한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늦춰졌다. 지금 교단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은 선배 세대보다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조건 속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다. 방관했던 침묵의 무게는 고스란히 후배 교사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교사들이 모여 외치는 목소리는 단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비 교사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유난히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준비물이 자꾸 없는 아이, 알림장이 늘 확인되지 않는 아이, 전화를 걸어도 며칠씩 연락이 닿지 않는 집. 학부모 상담 주간이 돼도 오지 않고, 학기 초 교육과정 설명회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주, 몇 달 이어지면 교사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학교 밖에서는 이 아이에게 누가 손을 내밀고 있을까,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학교 조직내 자원 활용하기 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무심한 학부모라는 말을 한 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하다고 보는 자리에 실은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가 잠든 뒤에야 집에 들어오는 부모, 자기 몸도 겨우 돌보는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 아이 셋을 혼자 키우는 한 부모, 한국어가 서툴러 알림장을 읽기 어려운 이주 배경의 가정이 있습니다. 관심이 없어서 닿지 않는 것과 관심을 표현할 여력이 없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사나 학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할 일의 방향을 조금 바꿔 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학부모를 바꾸려 애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어른이 돼주고 싶다.” 교직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 한 번쯤은 이런 마음을 품어봤을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이런 선의가 교직을 택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의 학교는 교사의 순수한 동기, 학생을 향한 관심과 책임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바꿔놓기 쉬운 것 같다. 소명감은 교사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여기는 교직 문화와 만나 왜곡되기도 한다. 학생을 위해 더 참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 좋은 교사의 모습처럼 여겨질 때 소명감은 자부심이 아니라 자기를 몰아붙이는 칼날이 된다. 헌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와 강박으로 바뀌고, 자신도 모르게 소진된다. 소명감이 자기희생으로 왜곡돼 특히 교권침해를 경험한 교사에게는 이 과정이 더욱 힘들 수 있다. 그동안 쏟은 노력과 믿음이 한순간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온 것이 폭언과 악성 민원이었다면 ‘나 때문인가?’하고 자신에게로 잘못을 돌리기 쉽다. 학생을 향한 사랑과 책임이 어느새 자기
인공지능(AI)은 어느새 우리 삶 전반에 스며들며 친숙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글과 그림, 영상을 만들거나 여러 정보를 정리하는 데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은 앞으로 청소년에게 필요한 중요한 역량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능숙한 사용과 판단·활용 달라 그러나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과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를 제대로 판단하고 활용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AI가 생성한 답변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온라인에는 사실에 근거한 정보와 허위 정보가 뒤섞여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정보를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해 책임 있게 활용하는 힘이 필요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아동·청소년패널조사’는 2025년부터 AI 네이티브인 알파(α) 세대와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을 반영해 ‘디지털 시민성’을 새롭게 조사하고 있다. 디지털 시민성은 온라인 정보의 안전한 이용과 판단, 개인정보 보호, 타인의 자료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태도 등을 살펴본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능력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필요한 책임과 윤리의식도 포함된다. 이 가
교육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인사 체계를 적용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일호봉제’다. 교사는 입직과 동시에 호봉에 따라 일반직 6~7급 상당의 대우를 받으며 교단에 선다. 교육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수행하는 교원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승진 체계 또한 단순해, 수석교사를 제외하면 교사, 교감, 교장이라는 3단계의 구조다. 행정 편의주의적 낡은 관행 존재 그러나 학교 현장의 조직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적인 모순과 마주한다. 전체 교원 중 평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94.9%인 반면, 교감은 2.6%, 교장은 2.5%에 불과하다. 경기교육청 소속 일반직 공무원의 3~5급 선발 비율이 약 6.5%인 것과 비교해도, 교육공무원 내 관리자 직위의 비율은 극소수다. 그만큼 도달하기 어렵고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다. 하지만 좁은 문을 통과해 책임을 맡은 관리자와 단위 학교의 위상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단위 학교는 철저히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독립된 행정 기관이다. 아울러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인 교무(校務)를 관리하는 교감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특히 경기도립학교 설치조례 등에
“괜찮아요.” 교사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자 한 학생이 짧게 대답한다. 그러나 학생은 수업시간에 제시되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지 않고 사람이 드문 운동장 구석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시끌벅적한 교실에서도 잘 웃지 않는다. 교사의 걱정 어린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주배경학생은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낯선 문화와 익숙하지 않은 생활 규칙에 적응하면서 또래 관계의 긴장도 함께 경험한다. 한국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아 교과학습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의 감정이나 어려움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고, 관계에서 오해가 생겨도 설명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 보호자의 한국어 능력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가정과 학교의 소통에도 장벽이 생긴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외모·언어·가족의 문화적 배경 등이 또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 태어났거나 한국에서 오래 생활해 친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