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학교는 작은 사회이자 풍요로운 무대였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 합창단의 화음 속에서 하루를 열었고, 오후에는 오케스트라의 활시위 너머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음악의 결을 익혔다. 작품 한 점, 글 한 편에도 학교의 따뜻한 인장이 박힌 상장이 주어졌고, 학급 임원 선거는 어른들의 정치보다 한층 진지한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되었다. 평가는 성장의 거울이었으며, 틀린 답 옆에 놓인 빨간 빗금은 부끄러움의 표지가 아니라 다음 발걸음을 위한 이정표였다. 그러나 지금, 이 풍경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라지는 까닭은 교육철학의 진보적 변화도,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도 아니다. 다만 극소수에 불과한 일군의 학부모가 보내는 민원이 학교의 일상을 잠식한 결과다. 일본 교육계는 일찍이 이런 부모를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라 호명했고, 미국 사회는 같은 현상을 ‘헬리콥터 페어런트’와 더 공격적인 ‘잔디깎이 부모(lawnmower parent)’로 분류한다. 헬리콥터가 아이 머리 위를 맴돌며 위험을 감시한다면, 잔디깎이는 아이의 앞길에 놓인 풀 한 포기까지 미리 깎아 없앤다. 이름이 무엇이든 본질은 하나다. 자녀를 향한 사랑이 공동체의
‘심각한 폭력 사태만 아니라면 교사에게 어떤 민원도 하지 않겠다.’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보육기관·교육기관에 처음 보내게 되었을 때 내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다.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로 15여 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학부모와 교사를 만나왔다. 그때 체득한 것은 나쁜 학부모도 나쁜 교사도 사실은 전체 인원에 비하면 극소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 교육하기에도 바쁜 교사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고, 잦은 전화로 극성 학부모로 보이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엄마도 초등학교 1학년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엄마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법! 등굣길부터 화장실 사용하는 것 하나하나까지, 아직 어려 보이는 우리 아이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자아이라도 걸핏하면 잘 우는데, 어려움이 있어도 말도 못 하고 있으면 어쩌나.’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신학기 상담까지 기다렸다가 담임선생님께 궁금한 걸 여쭤보았다. 다행히 선생님은 친절하게, 저학년 아이들은 이래저래 잘 운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가 말로 표현할 수 있게 잘 지도해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학부모와의 관계다. ‘학부모’는 본래 학생의 보호자를 의미하지만,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이 단어는 종종 교권침해나 악성민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되곤 한다. 현장에서는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탄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오늘날의 학부모는 실제로 달라진 것일까? 달라졌다면 무엇이, 왜 달라진 것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요즘 학부모’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렌즈다. 이들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학교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밀레니얼 세대’ 학부모의 등장 오늘날 유·초·중등학교 학부모의 주축은 1980년대생과 1990년대 초반생을 아우르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다.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세대다. 핵가족 환경에서 개인주의에 익숙해졌고,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초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서 정보탐색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환경 속에 자란 요즘 학부모는 의문이 생기면 즉시 검색하고, 심지어 전문가의 말조차 검색을 통해 검
2010년 교육감 직선제가 전국적으로 도입된 지 16년이 지났다. 당시 제도 도입의 취지는 분명했다. 교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주민들이 직접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를 선출함으로써 교육자치와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방자치의 확대와 함께 교육자치 역시 주민의 손으로 완성하자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였다. 다섯 번의 선거가 남긴 불편한 질문 실제로 교육감 직선제가 남긴 성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했던 교육행정이 일정 부분 독립성을 확보했고, 주민들이 지역 교육정책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마련했다. 교육복지·혁신교육·고교학점제·미래교육 등 다양한 정책 실험이 가능했던 배경에도 교육자치의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교육을 국가의 하위 행정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의 영역으로 인식하게 된 점 역시 직선제가 남긴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는 도입 취지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실제 운영 결과가 중요하다. 다섯 차례의 교육감 선거를 거친 지금,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강화했는가. 아니면 정치적 갈등과 비효율만 키운 채 민주주의라는 명
이번 민선 5기 교육감 선거에서도 여전히 후보자의 정책과 전문성 검증보다는 정치 성향과 선심성 공약 중심의 조직적 선거운동이 당락을 결정했고, 후보들 사이의 고소·고발 등 4년마다 되풀이되는 이념 갈등이 지속됐다. 이번이 역대 가장 비교육적인 교육감 선거라는 평가도 있다.1 특히 이번 교육감 후보자들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믿고 10~100만 원의 현금 등을 지원하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 심지어 학부모 부담과 교육청 예산을 매칭해 최대 5,000만 원 펀드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등장했다. 재원조달의 책무 없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전해 주는 재원으로 운영되는 시도교육청의 교육자치를 위해, 추가로 엄청난 선거 비용과 혼탁한 혐오 경쟁으로 유발되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직선제로 교육감을 선출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글은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이라는 「헌법」 가치에 부합하는 교육감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물어보고 개방형 공모제라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육감이 갖춰야 할 덕목 _ 무엇이 우선인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자주
6월 3일,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언론에서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진보 10명, 보수 6명이 당선됐다고 평가한다. 수도권 3곳을 포함해 진보가 우세했다는 평이다. 현장 교사로서 교육감 선거는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교사는 이 선거의 유권자이면서 정치적 금치산자다. 후보자의 정책에 찬성도, 반대도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 없다. 다른 공무직·일반직 노조들이 지지 후보를 공개 선언하며 선거판에 뛰어드는 동안, 교원단체는 후보자와의 간담회 형식으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교육감 후보자들이 교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교사에게 정치기본권이 없는 현실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발언권 없는 유권자를 진지하게 상대할 정치인은 없다. 교사는 ‘투표는 하지만 목소리는 낼 수 없는’ 존재로, 선거가 끝나면 당선된 교육감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일선 관료이다. 교사는 침묵해야 하는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는 정당을 표방할 수 없다. 그런데 언론은 선거 내내 진보·보수로 후보를 구분하여 보도한다. 후보들은 파란색·빨간색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불리하다 싶으면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선거 용지에 정당과 기호가 표기되지 않는 등 깜깜이 선거라 부르지만,
징비록은 과거를 비난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성찰의 기록이다. 교육감 선거를 직접 경험한 지금, 필자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남기는 일 역시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펜을 들었다. 이 글은 누군가의 승패를 평가하거나 특정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오랫동안 교육행정 현장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번 선거를 직접 치른 한 사람으로서 선거 과정에서 확인한 몇 가지 사실을 기록해 두고 싶을 뿐이다. 필자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국제교육기구를 오가며 교육정책을 다루어 왔다. 그 과정에서 변하지 않은 믿음은 하나였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라 배움과 성장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에 나서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철학과 정책이라고 믿었다. 교육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무너진 기초학력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교사들이 교육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선거의 중심이 되리라 기대했다. 지금 돌아보면 정책 경쟁이 선거를 이끌 것이라 믿었지만, 무엇을 알릴 것인가 보다 어떻게 알려질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