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산업화 시기 중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직업계 고등학교 육성, 그리고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대학 정책을 살펴보았다. 교육기회의 획기적인 확대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발전을 뒷받침할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산업화 시기 교육정책이 교육기회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80년대부터는 교육체제 자체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였다. 1980년대 한국 교육의 거대한 변화는 국가적 차원의 대수술이었던 ‘7·30 교육개혁 조치(1980년)’로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 개혁 조치를 기점으로 교육재정과 교육행정, 유아교육과 평생교육 등 오늘날 교육국가의 기본 틀이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1980년대 교육정책은 과외 전면 금지나 대학입시 개편과 같은 정책으로 기억되며, 군사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교육정책을 유화책이라는 관점만으로 이해하기에는 교육체제 전반에 걸쳐 추진된 제도개혁의 범위와 내용이 매우 폭넓었다. 교육정책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에는 교육재정과 교육행정, 유아교
교원은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라 공무로 출장을 다녀오는 경우 여비를 지급받습니다. 여비에는 운임·일비·숙박비·식비 등이 포함됩니다. 각각의 지급 기준 및 금액을 살펴봅니다. 출장의 개념 및 명령 요건 ● 개념 출장이란 정규 근무지 외의 장소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출장 여부는 출장명령권자인 소속 기관장이 공무 관련성과 학교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명령함. ● 요건 업무 관련성, 출장 내용, 목적 등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출장명령권자가 판단함. 출장의 구분 ● 근무지 내 출장 특별시·광역시를 포함한 같은 시 또는 군 안에서의 출장(섬은 별도 기준 적용)이나 여행거리가 12km 미만인 출장. 여행거리가 12km를 초과하더라도 동일한 시·군 및 섬 안에서의 출장은 근무지 내 출장으로 봄. ● 근무지 외 출장 특별시와 광역시를 포함한 같은 시 또는 군 및 섬(제주 제외) 밖으로의 출장으로서 여행거리가 12km 이상인 출장. - 섬은 같은 시·군이라 하더라도 ‘근무지 내’로 보지 않음. 다만 육로와 교량으로 연결된 같은 시·군의 섬은 근무지 내에 해당. - 목적지가 같은 시·군에 위치하더라도 다른 시·군을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 경로에
전문성 향상과 자기계발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교원이 늘고 있습니다. 대학원 형태에 따른 복무처리, 연수휴직, 학위취득 실적 인정 기준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대학원 수강 복무처리 •주간 대학원 - 교육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외출·조퇴·연가 등을 활용할 수 있으며, 증빙자료를 첨부해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함. - 학교장의 허가 없이 근무시간 중 대학원을 다녀 취득한 석·박사학위 논문은 원칙적으로 연구실적 평가 대상에서 제외됨. - 본인의 연가일수를 초과해 대학원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음. •야간 또는 계절제 대학원 - 교육활동에 지장이 없는 경우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출장(연수)’으로 처리할 수 있음. - 다만 출장비나 시간외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음. - 야간대학원이라 하더라도 장거리 통학으로 퇴근시간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출발해야 하거나 주간대학원 수업시간대에 운영되는 경우에는 학교장의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주간대학원 복무기준을 적용할 수 있음. 국내 연수휴직 •휴직 요건 - 교육부 장관 또는 교육감이 지정한 국내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경우에만 가능함. - 야간수업·계절수업 및 시간제수업은 제외됨. 또한 교
국가 재건과 인적 자원 개발의 변곡점 1960년대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개발도상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국가 재정은 늘 부족했다. 그러나 불과 20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한국은 중등교육을 사실상 보편화하고, 산업화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대규모로 양성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한국 교육의 성취는 흔히 대학 진학률이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로 설명된다. 하지만 그 토대는 1960~1970년대 국가가 추진한 일련의 교육정책 속에서 형성되었다. 중학교 입시 폐지와 고교평준화, 직업교육 강화, 산업체 부설학교와 방송통신학교의 도입, 그리고 지방 국립대학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모두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 정책들은 한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지만, 동시에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남겼다. 1960~1978년 한국 교육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살펴본다. ‘무즙 파동’이 바꾼 교실 _ 중학교 입시 폐지와 평준화 정책 1959년 초등 의무교육의 완성은 대규모 초등학교 졸업생을 배출하며 중학교 진학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1960년대 우수한 중학교와 명문 고
교원의 공무 외 국외여행은 원칙적으로 수업일을 제외하고 휴가기간 범위 내에서 휴업일(여름·겨울 및 학기 말 휴업일, 재량휴업일 등)을 활용해 실시해야 합니다. 또한 전문성 신장을 위한 경우 휴업일을 활용한 공무 외 자율연수 목적의 국외여행도 가능합니다. 각각의 차이와 복무 처리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공무 외 국외여행 1. 휴가 범위 내 여행 1) 사유: 본인 또는 친인척 경조사, 질병 치료, 친지 방문, 견문 목적, 취미활동, 가족 기념일 여행, 기타 필요한 경우 2) 기간: 본인 또는 친인척 경조사 및 본인의 긴급한 질병치료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수업일을 제외한 휴가기간 범위 내에서,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실시 3) 절차: 사전에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함. ※ 교장의 경우 직근 상급기관장의 허가를 받아 실시하며 NEIS 공람 등으로 신청 가능. 상급 기관은 근무상황부 또는 근무상황카드로 관리 4) 복무: 근무상황은 ‘연가 또는 특별휴가’, 사유 및 용무는 ‘공무 외의 국외여행’으로 기재 2. 「교육공무원법」 제41조 활용 국외여행 1) 인정 범위: 각종 교직단체 주관 국외 현장 연수, 해외 교육기관 초청 연수, 현지 어학연
전국 상당수 학교가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학생들의 운동장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기사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줬다. 운동장 사용 중에 학생이 다치게 되었을 때, 교직원에 대한 민원이나 소송이 우려되어 운동장 사용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사실 교육계에서는 꽤 오랜 이슈지만, 최근에는 대통령과 국회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운동장을 학생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운동장을 학생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학교안전사고 관련 규정 현행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안전법’)은 제10조 제5항에서 교직원이 안전사고관리 지침에 따라 학생에 대하여 안전조치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학교안전사고에 대하여 민사상·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조치의무에 관하여는 교육부 고시인 ‘학교안전사고 관리 지침’이 있다. 해당 지침은 안전사고 유형별 대응 절차에 관해 설명하며, ‘상황 파악, 간단한 처치, 상황 정리, 보고 조치’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안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교직원의 대응 방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을 뿐, 안전사고의 예방에 관해서는 내용
2026년은 교육계에 있어 매우 특별한 해이다. 광복 직후인 1946년에 수많은 학교와 대학들이 설립되었던 관계로, 올해로 개교 80주년을 맞이하는 교육기관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0년 동안 한국 교육은 수많은 정책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교육 80년을 돌아보며 한국 사회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판단되는 중요 교육정책들을 시대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교육 기적’의 단초가 된 1948년부터 1960년까지의 정책적 노력을 재조명한다. 초등의무교육의 완성: 국가 재건의 설계도 한국 교육 정책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결정적 출발점은 초등의무교육의 완성이다. 1948년 출범한 신생 정부는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초등의무교육의 실시를 명시하였으며, 1949년 「교육법」을 통해 ‘모든 국민은 6년의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아동의 친권자 또는 후견인은 초등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였다. 비록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정책이 한때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정부는 1954년 다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초등의무교육 6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다시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