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 경로당 어르신 안전교육을 다녀왔다.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호응 덕분에 교육 분위기는 시종일관 활기찼다. 교육을 마친 뒤에는 정성껏 준비해 주신 옥수수와 수박을 함께 나누며 질문과 답변의 시간도 가졌다. 요즘 지역 대학은 국가 정책에 발맞춰 전문가 단체와 협약을 맺고 지역 어르신들의 안전교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나 역시 전문가 구성원으로 참여해 여러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현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가르치러 갔지만 오히려 번번히 배우고 돌아오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오늘도 새로운 배움 하나를 얻었다. 교육을 마친 뒤 노인회 담당 부장님께서 강사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씀하셨다. “정말 매너 있는 강사님은 강의를 마친 뒤 TV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고 가시는 분이에요. 강사님이 가신 뒤 TV가 안 나온다고 어르신들께 연락이 오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넓은 지역을 담당하다 보니 금방 달려갈 수도 없거든요.” 그 말씀을 귀담아들었다.강의를 잘하는 것만이 좋은 강사의 전부는 아니었다.교육을 위해 노트북을 연결하고 TV의 외부입력을 바꾸었다면, 교육이 끝난 뒤에는 어르신들이 평소처럼 TV를 볼 수 있도록 원래…
2026-09-07 12:35교실에서 갈등이 생기면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보다 먼저 친구 이름부터 꺼내는 경우가 많다. “쟤가 먼저 그랬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어른에게는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실제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말일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과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겪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정말 자기 잘못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자기에게 일어난 상처는 크게 기억하면서 자신이 준 상처는 잘 보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어느 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말로 상처받거나, 억울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스물다섯 명 가운데 스무 명 가까이가 손을 든다.이어서 다시 묻는다.“그럼 반대로 다른 친구를 따돌리거나, 말로 상처 준 적이 있는 사람?”이번에는 서너 명만 손을 든다. 손을 든 수만 보면 교실에는 상처받은 아이는 많은데 상처 준 아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그렇다고 아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지만 자신이 준 상처는 장난이나 상황 속에 묻어두기 쉽다. 교실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다른 아이의 이름부터 꺼내는 모습도 그와 닮아 있다. “쟤가
2026-09-07 11:46우리 집에는 엄마가 한 분 더 있었다.큰언니였다.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큰언니는 맏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찍 철이 들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껏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었을 텐데, 큰언니의 등에는 늘 어린 동생 하나가 업혀 있었다. 큰언니 등에는 마를 날이 없었다.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늘 누군가가 언니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언니는 그 시절 이야기를 이제는 동생들과 웃으며 나누는 추억의 소재로 꺼내곤 한다. 어느 여름날, 멱을 감으러 강가에 갔을 때였다. 포대기에 기대어 강가에 앉혀 두었던 어린 내가 어느새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고, 놀란 큰언니가 황급히 나를 건져냈다고 했다. 그 일은 내가 클 때까지 엄마에게는 비밀이었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친구들을 따라 동네를 뛰어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가볍게 뛰어갈 때 큰언니의 등에는 늘 동생의 무게가 있었다.아이가 울면 달래야 했고, 잠이 들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어린 나이에 동생을 업고 돌보아야 했던 큰언니.자신의 어린 시절 한쪽을 동생들에게 내어주면서. 그때의 나는 몰랐다.나를 업고 있는 언니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세월이 흘러 큰언니도 엄마가 되었다.자기
2026-09-01 15:40
아침 7시 20분. 아이들이 등교하려면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 텅 빈 복도에 발자국 소리 하나 없는 그 시간에, 김진숙 선생님은 어김없이 급식실 문을 연다.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쓰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오늘 하루, 200명 넘는 아이들의 배를 채울 준비를 시작한다. 18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절반이고,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전부인 시간. 김진숙 선생님은 그 긴 세월을 급식실에서 보냈다. 몇 그릇의 밥을 지었을까. 몇 번의 국을 끓였을까. 몇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만든 밥을 먹고 졸업했을까.셀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밥 한 그릇에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제, 그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김진숙 선생님을 만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정년퇴임 기사'라는 형식적인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급식실을 나서는 순간이건 단순한 퇴임 기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라는 것을알 수 있었다. 인터뷰는 급식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김진숙 선생님은 연신 손을 비비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2026-08-26 15:11현장 경험을 통해 얻는 배움은 문서나 문자로 접하는 지식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교육청 장학사로 학교 관리자로서 바라보던 학교 밖과 학교 밖에서 바라보는 교육은 다르다. 현장이 답을준다. 퇴직 후 봉사의 마음을 보태어 전문가 구성원이 되어찾아가는 유아교육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아가 조기흡연예방 교육을 한다. 누리교육에서 건강한 생활습관기르기와 연관하고국가정책적으로 유야흡연예방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즈음이다.담배 연기로부터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돕는 조기 예방교육이 어른으로 연결 되기 때문이다. 퇴직하고도 전문성을 살려 ‘교육’을 한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아이들을 만나 교육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얻는다. 나의 도파민 생성 시스템은 여전히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교육자는 가르치면서도 현장에서 끊임없이 배운다는 것을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한 어린이집을 찾았다. 교육자료를 보여주기에는 TV 화면이 너무 작았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 작은 화면이 마음에 남았다. ‘어디 큰 TV를 구해다 줄 수 없을까.’ 내놓은 쓸 만한 TV가 없는지 살피게 되었다.그날 수업에 사
2026-08-24 13:08영감님이 갑자기 배가 아프단다 화장하고 가방 메고 나갈 준비를 마친 마나님은 우두커니 서서 기다린다. 거울에 비친 머리를 한번 만져 보고 더 멋스러질까 하여 머리를 쓸어 올린다. 일을 마친 영감님이 우두커니 기다린다. 망건 쓰다 장 파하게 생겼다*. 오늘만 날인가? 늦은들 어떠한가 기다릴 수 있는 영감님이 있고 기다려주는 마나님이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어느 덧 70대 함께한 세월 42년 남은 생도 건강하게 기쁘게 함께 걸을 수 있도록 하늘님과 조상님께 기도드린다. *'망건 쓰다 잘 파한다'는 차림새를 꾸미느라 시간을 보내다 장이 끝나버렸다는 데에서 나온 말로, 사소한 일에 매달리다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를 이르는 속담이다.…
2026-08-05 14:12문제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만 모인다고 좋은 교실이 되지는 않는다. 교실을 오래 차갑게 만드는 것은 눈에 띄는 갈등보다 역할의 고정이다. 늘 놀림받는 아이, 웃어주는 아이, 모른 척하는 아이가 정해지면 조용한 교실에서도 관계는 무너진다. 처음에는 큰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둠을 만들 때마다 마지막까지 남는 아이가 생기고, 점심시간에 함께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는 날이 늘어난다. 장난을 멈춰달라는 말이 나와도 주변 아이들은 괜히 끼어들었다가 자신도 불편해질까 봐 웃거나 자리를 피한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잘 챙겨야지”라고 말한다고 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고, 이미 무리가 정해진 교실에서는 더욱 용기가 필요하다. 교사가 누구의 빈자리를 묻고 어떤 행동에서 웃음을 거두며, 돌아온 아이를 어떻게 맞는지는 교실의 보상 구조가 된다. 어른이 눈여겨보는 행동이 아이들 사이에서 가치 있는 역할이 되고, 반복해서 본 태도는 관계의 기준으로 옮겨간다. 처음에는 교사가 시켜서 인사하던 아이가 어느 날 스스로 묻는다. “오늘 ○○이는 왜 안 왔어요?” 놀이에 끼지 못하고 서 있는 친구에게 누군가 먼저 다가가기도 한
2026-08-04 11:31지금은 전국의 청소년들이 한참이나 여름 방학을 즐길 때이다. 방학(放學)의 참된 의미는 한자어 문자대로 ‘학업을 놓아주는 시간’이 아니라, ‘교실 울타리를 넘어 세상이라는 더 큰 학교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는 절호의 찬스라 할 수 있다. 교과서 속의 검은 글자와 모니터 속 네모난 화면에 갇혀 있던 청소년들에게 방학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생생한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가슴속 깊은 통찰을 얻는 거대한 배움의 찬스가 될 수 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행(旅行)의 참 매력은 단순히 새로운 풍경만을 구경하는 데 있지 않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생소한 공간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지평을 넓히는 ‘지적·정서적 울림’에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 방학, 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무심한 관광이 아닌 ‘삶을 변화시켜 줄 배움 여행’으로 떠나길 권장하는 마음으로 누구나 뿌듯한 경험을 자랑하는 전국의 5대 여행 성지와 그 실증적 이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제주 해녀박물관과 세화리 해녀마을이다. 맑고 푸른 제주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찾는 해녀박물관과 세화리 해녀마을은 물질의 역사만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2026-08-04 11:26야구 대회에 나가 결석했던 아이가 다음 날 학교에 왔다.나는 그 아이를 일주일에 세 시간만 만나는 과학 전담교사였다. 복도에서 지나가듯 물었다. “어제 경기 어땠어? 이겼어?” “졌어요.” “아쉽겠다. 포지션은 뭐야?” “외야요.” “타순은?” “4번이에요.” “4번 타자면 중심 타선이네. 어깨도 좋겠다.” 아이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야구를 시작한 지 1년 되었다는 말을 듣고, 2년 전 우리 학교에도 주니어 국가대표로 뛴 아이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꾸준히 하면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그날 이후 과학 성적이 갑자기 오르거나 수업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미소는 오래 남았다. 공부나 규칙보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본 어른을 만났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에 관해 말할 기회를 기다린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보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야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야구가 있고,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곤충이 있으며,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그림이 있다. 그 관심사는 아이가 관계 안으로 들어
2026-07-27 09:34아이가 쓰지 않던 거친 말을 하고 하지 않던 장난을 시작하면 부모는 최근 가까워진 친구부터 떠올린다. “그 아이와 어울리더니 달라졌어.”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래.” 부모로서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친구와 거리를 두게 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고,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관계를 끊어주는 것이 아이를 지키는 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살펴야 하는 관계도 있다. 위험한 행동을 반복해서 부추기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아이를 이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는 관계라면 어른이 개입해야 한다. 아이가 두려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거나 힘의 차이가 뚜렷하다면 단순한 친구 문제로 두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모든 변화를 친구 한 사람의 탓으로 설명하면 아이가 그 관계에 머무르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계속 그 친구를 찾는 데는 그 안에서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자신을 재미있는 사람으로 봐주는 친구 곁에서 인정받는 기분을 느낀다. 어떤 아이는 그 무리에 속해 있어야 혼자가 되지 않을 것 같아 하기 싫은 일도 따라 한다. 친구가 아이를 일방적으로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 역시 그 관계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2026-07-20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