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해상 참사 세월호 사건이 대한민국을 블랙홀로 빨아들이고 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462명을 태우고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한 것이다. 급기야 경기 안산과 전남 진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에 이른 엄청난 참사다.
1993년 사망자 292명을 낸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후 21년 만의 참변(慘變)이며 190여 명이 희생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생각나는 국민적 아픔이다. 1970년에도 수학여행 열차 사고가 있었고 2000년과 2007년에는 버스 추돌과 추락에 의한 참사가 있었다. 작년 7월에는 꽃다운 고교생 5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고 불과 두 달 전에는 대학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중 건물이 붕괴돼 대학생 9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이번 참사가 그동안 발생한 각종 사고에 대한 ‘사후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친 관행’ 때문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 이제 선진국 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대한민국의 너무나도 부끄러운 치부인 ‘무사안일주의’가 부른 또 하나의 대형 참사가 아닌지 우리 모두 숙고와 성찰을 해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GDP 전망은 2만6000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중진국, 개도국을 넘어 이제 거의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해 있고 분야에 따라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것이 적지 않다. 조선(造船) 분야만 해도 건조 물량과 기술에서 세계 1위 수준에 올라섰다. 이미 20-50클럽에 가입했고 월드컵,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 G20 등도 개최한 국가다. 동방의 작은 등불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 1위'라는 번드르르한 포장을 걷어내고 나면 그 안의 본질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이번 세월호 사고가 여실히 보여줬다. 이와 같은 무사안일주의와 안전불감증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자가 누구인지 정부, 여·야당에 묻고 싶을 뿐이다. 정부는 실종자 집계 하나 제대로 못해 허둥댔다. 정부를 제대로 지원 못한 여당, 일 년 내내 국정의 발목만 잡은 야당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 한국은 선박·자동차 등 물건을 제조하는 하드웨어적 기술은 일류가 됐지만 그 물건들을 다루는 소프트웨어적 운용 체제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국민들은 이번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생명 존중 의식, 담보되지 않은 안전에 대해 공분과 회의를 느끼고 있다. 국민들의 생명, 재산,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이대로는 선진국이 되기 힘들다. 설령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다고 해도 국민 의식과 사회 제도 등이 현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번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발생할 개연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후약방문 식으로 책임소재를 따지고 안전 불감증 운운하며 법석을 부리고 나면 그 뿐이고 항상 사고는 되풀이됐다. 이러한 관행이 근절돼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사고가 이미 발생한 후에 공문으로만 안전을 강조하고 매스컴을 통해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이 담보되는 나라로 바로 세워야 한다. 이 나라의 학교가 진정 안전한 배움터로 거듭나고 에듀토피아(edutopia), 파라다이스(paradise)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뜻과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 땅의 미래 새싹들인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학업에 정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지 생명, 재산, 그리고 안전을 담보받으며 보람 있는 생을 영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선진국 진입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명함을 내려놓고 사고 수습과 사후 대책, 방비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그 누구도 ‘남 탓’으로 돌을 던질 수 없으며 모두가 ‘내 탓’으로 돌을 맞아야 할 때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GNP, GDP 등의 경제적 성장 지수가 높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이 담보되는 나라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나라, 세상의 모든 학생들이 마음 놓고 수학 여행, 수련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로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사고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선진국 대한민국’의 명함을 다시 꺼내들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지금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 모두가 내 탓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자성하고 도둑 맞은 소를 생각하면서 외양간을 튼튼하게 고쳐야 할 때다. 이와 같은 후진국형 대형 참사가 근절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안전 선진국, 그리고 모든 것을 구비한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