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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설렘 그리고 떨림… 수석교사로 새출발하며

먼 남녘에 머물던 봄이 버선발로 달려왔다. 매서운 추위에도 얼지 않고 3월이 되자 맨 먼저 우리 곁에 왔다. 어린 나무도 마지막 남은 찬바람에 잔기침을 하더니 따뜻한 햇살 덕에 멎었다. 고운 목청으로 지저귀는 새의 노래 소리도 맑게 들린다.

봄이 겨울 외투를 벗고 활기를 찾은 것처럼 학교는 긴 겨울 방학을 끝내고 개학 준비에 바쁘다. 전근 오는 선생님 맞는 일로 교무실이 소란스럽다. 학급 이동으로 자리 배치를 새로 하고, 이참에 묵은 먼지도 털어내고 있다.

3월에 새 업무에 따라 자리를 옮기는 것은 늘 하던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올해는 감회가 다르다. 나는 수석교사로 출발을 한다. 수석교사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따라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법 조항에서 보듯이 수석교사는 가르치는 업무 외에 동료 교사의 교수・연구 지원 활동을 한다.

나름대로 교육에 특화된 경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지원했지만, 선발되고 나니 내 역량에 의문이 생겼다. 선생님의 수업 및 연구 활동을 도울 수 있을까. 발걸음을 내딛기 전부터 망설여진다. 수석교사 연수를 받는 동안에도 강사들은 전문성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동료 교사를 지원하는 수석교사는 그에 걸맞은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량과 함께 인간적으로 동료 교사들이 닮고 싶어 하는 리더십도 중요하다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연수를 받으면서도 교육학 관련 서적을 뒤적거렸다. 교수-학습 모형을 익히고, 수업 분석 기술 관련 서적으로 밤을 밝혔다. 여전히 마음은 맑아지지 않는다. 얄팍한 교육학 지식으로 동료 교사의 어려움을 읽고 따뜻하게 도닥거려 줄 수 있을까. 그들이 인간적으로 닮고 싶어 하는 향기를 낼 수 있을까.

속을 끓이다가 어렴풋이 답을 얻었다.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열정을 통해 재능을 꽃피우는 경우도 많다. 이게 답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교사로서 사랑의 눈빛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학생들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꿈을 깨우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행복하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수석교사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다. 그러나 수업을 잘하는 교사는 주변에도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열심히 하는 일뿐이다.

동료 교사들이 닮고 싶어 하는 리더십도 생각해 보았다. 훌륭하고 좋은 사상, 그리고 뛰어난 역량이 리더의 그릇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넓고 원대한 사상과 남보다 우월한 역량만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고매한 생각을 생활에 알맞은 사고방식으로 다듬어 가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남에게 감화를 줄 수 있다. 간혹 들에 주변과 어울려 핀 이름 없는 꽃에 빠질 때가 있다. 단조로운 풍모와 이슬로 닦아낸 해맑은 표정이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품격을 보여준다. 선생님들에게도 권위로 빛나기보다는 사명을 다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순수와 열정이 샘솟게 하고 싶다. 지금 당장 그들의 눈앞에서 화려하게 비춰지기보다는 먼 훗날에 기억의 눈부심으로 남고 싶다.

내가 수석교사가 되었다고 하니 어머니께서는 제대로 이해를 못해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좋아하신다. 팔순이 되는 노모(老母)에게 자세한 설명이 어려워 더 이상 말을 못했다. 지금 내 마음은 분명하다. 동료 선생님과 학생에게 봉사하기 위해 수석교사라는 낮은 자리로 왔다. 그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스스로 부족함을 품고 늘 배려하는 자세로 동행하고자 한다.

고백하자면 교직 경력이 쌓이면서 내 안에 안일과 나태의 잡초를 제거하는데 소홀하기도 했다. 변화의 물결이 휘몰아쳐도 가난한 교육 철학으로 그럭저럭 꾸려나가려고 버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번데기가 스스로 껍질을 벗어버리고 곤충으로 태어나듯 이제 새로운 탄생과 출발을 한다. 새로운 시작은 변화와 창조적인 기능을 동반하게 된다. 수석교사제는 우리 교육의 오랜 숙원이었다. 교실을 바꾸고 학교를 바꾸는 제도로 정착해야 한다. 수석교사는 관리직 아래라는 둥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친 특혜라는 둥 곰팡스러운 기 싸움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수석교사제로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의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3월에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내 마음은 떨림뿐이다. 긴장돼서 떨리기도 하지만, 새 길을 가는 설렘 때문이다. 서로 돕고 배려하는 학교 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기대가 나를 떨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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