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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교육풍경> 27년만의 재회

27년 만에 제자들에게 연락이 왔다. 기다리지 않았던 첫눈이 내리듯, 어쩌다 예고도 없이 날아온 한 장의 편지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보고 싶다는 내용이다.

나는 1986년 수원 이목동에 자리한 동원고에서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이목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지붕은 모두 낮고 창틀도 빗먹은 집이 많았고, 어떤 집은 몇 마리 소도 키우는 농촌이나 같은 곳이었다. 산자락에 있던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건물은 완공되지 않았고, 운동장도 고르지 않아 돌이 더 많았다.

새로 생긴 학교로 배정된 아이들이 낯선 환경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내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었다. 선배도 전통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곱고 밝게 성장했다. 선생님들은 수업이 없는 시간에 학교에 나무를 심고, 길을 닦았다. 그렇게 새 학교는 조금씩 안정됐고, 아이들은 어느새 졸업을 해 더 큰 세상으로 진출했다.

살다보면 시간은 바람처럼 무심하게 흘러간다. 한 순간도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 아이들과의 만남도 석양녘 어둠이 밀려드는 것처럼 그렇게 시나브로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추억이 남는다. 교직의 첫 걸음에 만난 학생들과의 추억은 기억 저편에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남았다.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면서 걸었던 탓인지 쉽게 잊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어려운 때를 만나면 가슴 한 구석에서 힘을 줬다.

중년이 된 아이들과 반백이 돼버린 동료 선생님을 모두 만났다. 반가웠다. 아이들은 기쁨에 큰절을 하고, 선생님의 눈물을 찍어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만치 흘러가 버린 세월과 나이를 탄식하기도 하지만 세월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다. 어린 고교생들은 중년의 어른이 됐지만 모두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했다. 그러고 보면 세월은 신이 인간에게 베푼 귀하고도 유일한 선물인 지도 모른다.

훌쩍 커 버린 제자들에게 스승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기뻤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어깨를 펴고 있지만, 그들도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힘든 세상 꿋꿋이 헤쳐 온 그들이라 더욱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이날의 감동을 지금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새삼 어렵게 느껴진다. 아무리 고귀한 언어로도 그 기쁨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추억의 우물이 있다. 그 우물 속에 두레박질을 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곱씹지만 추억은 실체가 없는 스스로만의 위안이다. 그런데 27년 만에 함께 했던 제자들을 만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우리는 정지된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뜨겁게 포옹했다. 인생을 살면서 가끔 이렇게 마주하는 추억은 축복이 아닐까. 우리는 새해 첫머리에 축복의 잔을 높이 쳐들었다.


※ 본지는 생동감 넘치는 교육현장을 담고자 합니다.
    나누고픈 경험담과 사진을 함께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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