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작은 이야기> 빈 교실 청소하기


우르르 썰물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간 텅빈 교실에서 나는 삐뚤빼뚤 흐트러진 책걸상 사이를 오가며 휴지를 줍는다.

뭐가 그리 급했던지 영어 단어를 외웠던 연습장이며 책갈피에 곱게 끼워져 있어야할 여자 친구의 스냅사진까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다. 흐트러진 책상의 줄을 맞추고 사진을 녀석의 서랍에 곱게 넣어준다.

복도를 지나가시던 선생님이 "아이들 시키시지 왜 손수 하세요" 한다.
'에구, 그러면 편한 것을 전들 모르나요.'

몇 번 아이들을 시켜봤지만 힘만 들뿐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비질도 제대로 못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다면 믿을는지. 하늘을 향해 빗자루를 꿰차기만 하니 먼지가 제대로 쓸릴 리가 없다. 잔소리도 하루 이틀이지, 그래서 아예 아이들을 내보내고 차라리 손수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빈 교실에 남아 바닥을 쓸고 휴지를 줍고 하는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아이들의 성격도 덤으로 파악할 수 있으니 차라리 일거양득이다. 매사 건성건성하고 낙천적인 P는 서랍이며 사물함도 성격만큼 자유분방하다. 반면 꼼꼼하고 야무진 K의 책상 서랍은 꼼꼼하단 소릴 듣는 내가 놀랄 정도로 정갈하다. 남자 녀석이 화장비누에 핸드로션까지 참 잘도 챙겨놓았다.

잠시 후면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밀물처럼 몰려올 것이다. 한 손에는 컵라면, 또 한 손에는 제 입맛에 맞는 군것질 거리를 하나씩 들고서.

아침부터 밤까지 무려 16시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는 고3 아이들이 측은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설이나 환경 좋은 도시 아이들과 경쟁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독하게 마음먹어 본다. 아이들이 안쓰러워 가슴이 아프지만 담임인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더욱 약해지기에, 가슴에만 품고 내색할 수가 없다.

3월인데도 바깥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기만 하다. 행여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서둘러 난로에 불을 지핀다. 그래, 너희들이 따뜻할 수만 있다면 내가 굽은 나무에 부목이 되어주마.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며 오늘도 나는 텅빈 교실의 난로에 불을 지핀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