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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교직에 첫 발을 내딛은 지 벌써 십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서투른 점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나은 학교 생활과 교육을 위해 몇 가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물론 사회적 연륜이나 교직 경력으로 봤을 때 필자와는 어떤 식으로든 비교할 수 없는 만큼의 경륜을 가진 분들이 너무도 많기에 먼저 송구한 마음을 전해 드리며 관용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우선은 어느 사회보다도 경직되어 있고 보수적인 그룹이 교직 사회이며 그래서 올바른 토의 및 토론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린 아직 전인적인 인간으로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지식과 예절, 살아가는 방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들의 생각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처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우리 교사들은 모두가 한 분야에서 만큼은 전문가다운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전문가적인 소양과 자질을 서로가 공유해야 할 것이지만, 교실 문만 닫고 들어가면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폐쇄적인 그런 공간이 주는 속성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민주시민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자질 중의 하나라며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치고 요구하는 “자유로운 의사 토론”을 통한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작 교사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정착되어 있질 못하다. 학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전체 교직원회의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하나하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이렇게 해야만 진정한 토의 및 토론 문화가 정착되는 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하는 것이 아니라 윗선(?)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데 급급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 운영 및 교육 방침 전달 시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하다. 

학교에서의 모든 협의 시간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충심으로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계기가 되었을 때 교직원들간의 화합과 친목은 저절로 도모(친목회라는 별도의 기구가 있어야만 친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수업 시간에 쫓기고,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퇴근 시간 때문에 무엇을 토론하려 해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정작 시급을 다투는 주제를 대하고도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이다. 그러면서도 학교는 곧잘 아이들에게 토의학습이니 학급 및 전교 어린이회의와 같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토론 문화를 이끌어가려 한다. 과연 그럴만한 처지가 되는지 반문해 보고 싶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생활 속에서 전혀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학교 토론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것,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언어도단일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무엇 때문에, 또 누군가가 얼마나 두렵기에, 말을 해야 할 시점에 그렇게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많이 답답해진다. 많은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공급자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런 관계로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수요자의 입장에 선, 일차적으로는 아이들과, 더 나아가선 학부모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서도 우리의 소신을 밝히는 데에 그리고 우리의 교육적 신념을 펼쳐 가는 데에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 애써 우리가 특정인 몇몇에게 잘 보여야 한다거나 교직원들간의 유기적 관계를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분명 우리가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교직원들간의 유기적 관계나 친목도 교육적 완성이라는 취지에 부합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를 두려워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모든 이에게 이를 널리 알려야 하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들은 좀처럼 우리들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점차 우리 교직 사회가 더 보수적이고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그런 융통성 적은 집단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이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실정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과학기술과 IT산업의 발달의 혜택에 힘입어, 21세기의 교실로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직까지도 20세기에 미련을 두고 있는 교사들이다. 얼룩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사자나 치타 정도가 되겠다. 치타가 되어 있어야 할 우리가, 아직도 얼룩말에도 미치지 못하는 토끼 정도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들은 제대로 아이들을 따라가질 못한다. 물론 아이들도 그런 우리들과 쉽게 융화되질 않는다. 재미없는 드라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TV 채널을 바꿔 버리는 사람의 심리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이치일 테니까.

일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너무 베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가지려 하지,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 놓으려는 사람이 좀처럼 없어요” 라고. 왜 그렇게 이기적인(?) 모습들이 되어 가는지,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비춰져야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이 엷기 때문이 아닐까?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 전문성이 발휘될 때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내기 마련이지만, 그런 전문성들이 각자의 속에 갇혀 버릴 때에는 오히려 장점을 은폐시키고 약점들만 드러내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심만 약해질 뿐이다. 우선은 각자의 전문성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낫다고 판단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 전문성들은 가장 극단적인 경우엔 자신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선 자의적으로 그 전문성조차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결과까지 생기고 만다.

오늘도 교육 현장에선 묵묵히 땀을 흘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의 노고와 고민들이 있었기에 황폐해져가는 공교육의 명맥이 그나마 이어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에 발 맞추어 우리가 좀더 민주시민의식적으로 무장을 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마음을 열어간다면 보다 개방적이고 효율적인 학교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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