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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왜, 저 아이는 학교급식을 신청하지 않았을까?

3월 초. 학교 급식 희망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중식은 한 명의 여학생을 제외한 모든 아이가 급식을 신청했으며 석식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학생들만 신청했다. 중식을 신청하지 않은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말 못하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담임으로서 조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중식을 해결하고 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금요일. 4교시가 끝난 뒤,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 반 교실을 지나가던 중 우연히 교실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그리고 혼자서 식사하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 여학생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창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다름 아닌 학기 초 유일하게 중식을 신청하지 않았던 바로 그 아이였다.

순간, 그 아이가 중식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이들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터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행여 점심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방해될까 조용히 교실 뒷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그 아이의 도시락에서 나오는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냄새의 정체가 궁금하여 그 아이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음악에 심취했는지 그 아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을 내고 싶었지만,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는 그 아이만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잠시 뒤, 인기척에 놀란 그 아이는 황급히 도시락을 책상 속에 감추었다. 그리고 인기척이 담임이라는 사실을 안 아이는 그제야 안도를 하며 책상 속에 넣은 도시락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웬일이세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아이의 말이 마치 지금까지 자신에게 무관심한 담임에 대한 원망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무의식중에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 그냥…”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도시락 내용물을 살폈다. 도시락에는 닭 가슴살 1조각과 딸기 몇 개가 담겨 있었다. 그 아이의 체중에 비해 내용물이 너무 빈약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중식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보니 집안 형편이 그다지 어렵지 않던데 왜 중식을 신청하지 않았니?”
대답 대신 그 아이는 한 장의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이게 제 다이어트 식단이에요.”
종이 위에는 그 아이의 한 달 식단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져 있었다. 식단의 내용물만 보아도 중식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것만 먹고 어떻게 살아? 잘 먹어야 하는 나이인데.”
그러자 그 아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요즘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날씬한 몸매가 대세여요. 그리고 여건만 된다면 성형도 할 거고요.”

그 아이의 목소리에서 그 어떤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체중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하였다. 또한,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된 여러 다이어트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매일 도시락을 싸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과체중에 따른 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다며 자신의 실천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무리한 다이어트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해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내 말에 그 아이는 용기를 얻었는지 몇 개 되지도 않는 딸기 중 하나를 도시락에서 꺼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얼떨결에 받아먹기는 했으나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교실을 빠져나오면서 그 아이에 대한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우선 체중감량 실패로 다시 우울증에 빠져 고통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표를 세워놓고 무언가에 도전하려는 그 아이의 생각만큼은 다른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그 아이의 마음은 내게 잔잔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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