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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맞벌이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네

2월 말 대학 4학년인 큰딸은 대학가 근처 방학 동안 구해놓은 원룸을 정리한다며 일찌감치 상경했다. 그리고 올해 대학에 합격한 막내 녀석은 다행히 기숙사에 합격하여 기숙사 입소 가능한 날짜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갔다. 두 아이가 떠난 후, 집안 분위기는 절간처럼 적막함마저 감돌았다.

두 아이 모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지만, 문제는 매월 들어가는 생활비였다. 대학생이 한 명일 때 잘 몰랐던 경제적인 부담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막내 녀석은 하루걸러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해 왔다. 모든 것들이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이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녀석과 전화를 끝낼 때마다 아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아! 돈 좀 아껴 써.”

아내는 기존에 작성했던 가계부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반으로 줄였고 한 달에 두 번 실시했던 외식 자체를 아예 없앴다. 그리고 내게도 많은 것을 주문했다. 우선 퇴근 후 술 먹는 횟수를 반으로 줄이라고 요구했으며 용돈 또한 10% 삭감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남편이 동참해 주기를 원했다.

월요일 저녁.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자, 안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내심 아내의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놀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노크하였다. 몇 번의 노크에도 반응이 없기에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모르는 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행여 아기가 깰까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아내의 눈빛이 워낙 완강하여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조용히 안방을 빠져나왔다. 잠시 뒤, 아기를 재우고 나온 아내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내의 모습이 예전과 달리 많이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가지고 온 가계부를 펼쳐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계부를 활용하여 살림을 잘 운영한 탓일까? 아니면 그 힘듦을 표현하지 않는 탓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로부터 가계 어려움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점에 대해 늘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내는 가계부를 넘기며 내 봉급 한 달 치 지출 내역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지출되고 있었다. 나의 박봉으로 아내가 이 많은 지출을 어떻게 감당해 왔는지에 의구심이 생겼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와 두 아이에게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살림을 꾸려왔던 것이었다. 새삼 아내가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아내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맞벌이였다. 아내는 지난 한 달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고른 일이 아이 돌보는 일이었다. 아내는 평소 알고 지내는 후배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낮이 아닌 밤에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수면을 방해 받을지 모른다며 미리 나의 양해를 구했다.

갑작스런 아내의 돌발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이 일을 아내가 잘 해 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생겼다. 아이들 학비를 벌기 위해 맞벌이를 결정했다는 아내의 말에 처음에는 다소 의구심을 가졌지만 설명을 듣고 난 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맞벌이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이 새삼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아기의 울음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일이 자주 발생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가정을 위해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참고 견디어 나갈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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