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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대학교의 장삿속 백일장대회

필자는 특성화 고교에서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는 교사이다. 내게 지도받고 있는 3학년 제자가 며칠 전 중앙대학교 전국고교생 백일장 접수를 마치고, 다녀오기까지 했다. 놀랍게도 제자는 접수하는데 ‘거금’ 2만 5천 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실시하는 참가비 없음의 우석대학교 백일장까지 포기한 결행이었다.

‘놀랍다’고 말한 것은 물론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다. 20년 넘게 글쓰기 지도를 해오면서 그런 거금을 내고 백일장에 참가한 제자는 단 1명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영리단체나 이윤추구의 회사가 아닌 대학교에서 참가비 명목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어 놀란 것이다.

필자가 알기론 중앙대는 고교생백일장에서 가장 많은 참가비를 받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숙명여대 등도 참가비를 버젓이 받고 있지만, 1~2만 원 선이다. 그 외 한국작가회의라든가 한국시인협회 같은 문인단체 고교생백일장도 1만 원의 참가비를 받아왔다.(이들 문인단체는 올해부터 ‘참가비없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참가비까지 챙기면서도 시상 규모는 별로다. 목정문화재단주최 전북고교생백일장대회는 참가비 따위가 없는 지역대회인데도 장원 2명에게 각 100만 원의 장학금을 준다. 2만 5천원 씩이나 참가비를 챙긴 중앙대의 경우 2명의 장원 상금은 각 50만 원, 그것도 문화상품권이다. 현금으로 참가비를 받으면서 정작 문화상품권으로 상금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참가비는 미술실기대회(사생대회)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더욱 ‘단가’가 올라간다. 서울 소재 대학의 경우 4~5만 원, 지방대학에서도 보통 2~3만 원의 참가비를 내야 일단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삿속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런 유료 대회는 특성화 고교 문예지도 교사인 내가 볼 때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대학교 주관 백일장이나 미술실기대회의 또 다른 목적은 학교홍보일텐데 그 비용의 일부를 애먼 고교생에게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학교를 알리려면 그만큼 홍보비를 써야 맞다. 실제로 지금은 폐지된 경기대와 실시중인 광주대 · 우석대 ․ 원광대 ․ 순천대 ․ 목포대 등 대부분의 대학교가 그렇게 하고 있다. 참가비 따위가 전혀 없는 대학교 백일장에 가보면 필기구와 점심 제공은 기본이다. 어느 대학은 학생들에게 제법 값나가는 기념품을 주기도 한다.

참가비 받는 대학들의 재정 상태가 너무 열악해 그렇듯 고교생들의 푼돈이라도 챙기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학교의 장삿속 백일장대회는 아직 가치관이 미숙한 우리 학생들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예컨대 해당 분야에 재능있는 학생이 참가비 부담 때문 참가조차 원천봉쇄 당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무슨무슨 자격증을 따는 시험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순수한 글쓰기일 뿐인데, 돈이 없어 아예 참가조차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잔인하고 슬픈 일이겠는가?

대선공약에 이어 바야흐로 고교 무상교육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이다. 당국에서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교에서 그렇듯 영리를 목적으로 백일장과 미술실기대회를 개최해도 되는지 법률적 검토와 함께 신속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 대학들 스스로 고교생백일장 참가비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길 촉구한다. 특히 중앙대는 그런 장삿속 행태로 과거 서라벌예술대학 등 그 동안 쌓아온 문예창작의 전통과 명예를 더 이상 실추시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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