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 흐림동두천 16.7℃
  • 구름많음강릉 13.6℃
  • 구름많음서울 17.8℃
  • 구름많음대전 13.6℃
  • 맑음대구 15.2℃
  • 맑음울산 14.6℃
  • 구름많음광주 15.5℃
  • 맑음부산 17.3℃
  • 구름조금고창 ℃
  • 구름많음제주 18.7℃
  • 흐림강화 16.2℃
  • 구름조금보은 12.7℃
  • 흐림금산 10.2℃
  • 구름많음강진군 12.6℃
  • 맑음경주시 12.7℃
  • 구름조금거제 14.9℃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새로운 시도의 함정-'장옥정,사랑에 살다'

유독 SBS는 사극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가 작심하고 시청한 SBS 사극 중 매스컴이 호들갑을 떨 정도로 크게 히트한 작품은 없었다. 비근한 예로 대하사극을 표방한 36부작 ‘대풍수’(2013.2.7 종영)는 잠깐 두 자릿수 시청률에 오른 적도 있지만, 실패한 드라마였다. 한 자릿수 시청률은 2009년 ‘자명고’나 2010년 ‘제중원’ 같은 대하사극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달 25일 종영된 24부작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도 예외가 아니다. 악녀 장희빈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관심을 끌었지만, 사실 필자는 시청할지 말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퓨전사극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장옥정’은 리메이크작이다. 연구사 측면에서 잠깐 그것들을 정리해두는 것도 유익할 듯하다. 동아일보(2013.4.2)에 따르면 장희빈(박종화 역사소설 제목)은 2편의 영화와 일곱 번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2010년 MBC ‘동이’를 제외하곤 장희빈이 타이틀 롤이었다. 영화는 1961년, 드라마는 1971년 각각 처음 만들어졌다. 장희빈이 된 배우들은 김지미 ‧ 남정임(작고) ‧ 윤여정 ‧ 이미숙 ‧ 전인화 ‧ 정선경 ‧ 김혜수 ‧ 이소연 ‧ 김태희 등이다. 그 중 가장 ‘장희빈답게’ 열연한 배우는 1981년 드라마 ‘여인열전 장희빈’의 이미숙이다. 물론 팬들에 따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겠지만,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사약을 내동댕이치던 이미숙 연기가 떠오른다.

앞의 동아일보는 이미숙과 1988년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의 전인화가 연기한 장희빈을 “권위주의 시대의 이분법에 따른 치명적 섹시 악녀”로 특징하고 있다. “사극 인물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에 장희빈의 캐릭터도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할 것”이라는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주장도 싣고 있다. SBS의 ‘장옥정’은 1995년 정선경의 타이틀 롤이었던 ‘장희빈’에 이어 제작한 두 번째 드라마다. 조선시대 패셔니스타로서 장희빈의 인간미와 진정성에 방점을 뒀다. 이를테면 희대의 악녀 장희빈에 대한 새로운 시도인 셈이다. 결과는? 낮은 시청률에서 보듯 실패이다. 그 함정을 피해가지 못해서다.

일단 숙종(유아인)과 만남의 과정은 긴박감 있게 제법 잘 구성되어 있다. 옥정(김태희)이 입궁하기 전 초반부에 비중있게 그려낸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의 패션쇼, 세자시절 숙종의 옷 치수 재기 등 패셔니스타로서의 장옥정도 새로워 보인다. 퓨전사극을 표방했으니 작가나 연출자의 지나친 상상력도 모른 체 할 수 있다. 또 민유중(이효정)의 “반상의 구별이 있고, 그 다음에 사람이 있는 거야!” 같은 대사에서 보듯 당대 치열한 계급사회 묘사도 그럴 듯하다. 서인과 남인 세력간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서의 장희빈이란 평가도 엄존하니 말이다. 중인계급인 장옥정이 당한 차별과 수모가 왕후되기의 자양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왕비가 된 옥정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해버린다. 오로지 숙종을 사랑하는 지순지고한 여인이거나 착하디 착한 여자의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령 “중전에 오르면 전하를 맘껏 연모할 줄 알았다”고 말하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은 그런 여자가 아니다. 희빈으로의 강등을 요청하거나 자청해서 자진케 해달라는 장희빈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퓨전사극이라지만, 선뜻 용납되지 않는 ‘반역사적’ 묘사이다. 그렇다면 숙종의 뒤를 이어 경종이 된 장희빈 아들은 왜 후사를 볼 수 없었는가에 대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캐릭터 창출에 대한 실패요, 시청자 외면을 불러온 주요 원인이 아닐까?

그 점에 비하면 장희빈 사사 장면을 지켜보는 대신 김만기(이동신)라든가 최숙원(한승연)의 중전(옥정)에 대한 꼬박꼬박 말대꾸 등 오류는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동평군(이상엽)이나 현치수(재희)의 장옥정에 대한 집요한 연모 따위도 사족으로 보인다. 퓨전사극 표방이나 ‘사랑에 살다’라는 부제 하나로 그것들이 면죄되지는 않는다. 데뷔 13년 만에 첫 사극 출연이라는 관심과 짐을 동시에 짊어진 채 연기를 선보인 김태희 역시 현대극보다 버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