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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여고생 시집 '고백'

아마도 선생을 오래 하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닐까 싶다. 여고생 시집 ‘고백’의 발문을 쓰게 되어서다. 1983년 글쟁이로 이름을 올린 이래 총 39권(편저 포함)의 책을 펴내는 등 집필과 함께 살아온 30년이지만, 이런 글은 귀 빠지고 처음이다.
 
30년째 교단에서도 기본적 수업 외 내가 해온 것은 시종 같은 일이었다. 글쓰기 지도가 그것이다. 그 동안 많은 제자들이 나의 지도를 통해 ‘글눈’을 깨우치고 가다듬어 갔다. 
 
그런 트레이닝은 필연 이런저런 수상으로 이어졌다. 수상한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나도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문인교사로서 느끼는 또 다른 보람이고,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지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글쓰기의 경우 선천적이란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여고생 시집 ‘고백’의 저자 변아림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내가 군산여자상업고 3학년 변아림을 ‘발굴’한 것은 2011년 4월 교내백일장에서다. 전교생 대상의 교내백일장에서 변아림은 시가 뭔지 알고 쓰는 솜씨였다. 이후 변아림은 여기저기 백일장과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받아 나의 발굴 및 기대감에 부응했다.
 
가령 목정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작가회의가 공동 주관한 ‘2011전북고교생백일장’에서 쓴 ‘4월의 노래’는 시 부문 심사위원(20명)들의 만장일치로 장원을 수상했다. ‘2012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전’에 응모한 ‘금 따는 콩밭’은 대상을 수상했다.
 
변아림의 지난 2년간 수상을 셈해보니 시 ‧ 산문 합쳐 모두 18회나 된다. 변아림은, 이를테면 빼어난 예비 문사(文士)인 셈이다. 물론 그래서 여고생 시집 ‘고백’을 기획한 것은 아니다. 무슨 등단을 염두에 둔 야심찬 프로젝트도 아니다. 
 
내가 여고생 시집을 기획한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다. 특성화고(옛 실업계고) 학생으로서 싫어도 맛보게 되는 기본적 열패감을 분쇄하거나 만회시켜주기 위해서였다. 특목고나 일반고 학생 누구도 흔히 할 수 없는 ‘여고생 시집’을 펴냄으로써 자부심과 성취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변아림은 평범한 특성화고 학생이 아니다. 지금 이렇듯 어엿한 여고생이 되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감당하기 벅찬 어린 시절을 보낸 ‘버려진’ 아이였다. 엄마 없는 아일 남에게 맡기며 한 달 있다 온다던 아빠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변아림의 글쓰기는 세상을 저주하거나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밝게 살 수 있는 원천이요 원동력인 것이다.
 
내가 변아림 시집을 기획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취업이 대세인 여상에서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로 진로를 정한 변아림의 결단과 용기 때문이다. 사실 변아림 못지않은 글솜씨를 지닌 여상 제자들은 가정형편상 졸업과 동시 거의 취업전선으로 내몰리다시피 했다.
 
변아림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될지(하긴 이루게 된다 해도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 되는 게 문인의 길인데…) 미지의 일이지만, 지도교사로서 용기를 북돋워줘야 할 사명감 같은 게 확 ‘꽂힌’ 것이라고나 할까!
 
모든 글쟁이가 그렇듯 변아림은 쓰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져버릴 학생이다. 그렇다. 문학은 취미나 사치로 하는 게 아니다. 문학은 뭔가 쓰지 않고는 도저히 버티기 힘든 자신의 존재감을 위한,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최소한이나마 살아있음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버팀목이자 무기이다. 
 
자, 바야흐로 여고생 시집 ‘고백’이 여러 분을 만나러 간다. 지도교사로서 우리 ‘전북의 딸’ 변아림이 86편의 시들을 모은 여고생 시집 ‘고백’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이 있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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