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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문예지도를 그만두는 것은

햇수로 어느덧 32년째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으면서 필자가 주로 해온 일은 학생들 문예지도이다. 학교신문이라든가 교지 또는 문집제작 지도 역시 필자가 정규수업외 끊임없이 해온 일이다. 그야말로 눈썹 휘날리게 그런 일들을 해오면서 나름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고 가져왔기에 즐겁고, 신났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문예지도를 그만둘까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가령 교내백일장에서 제법 쓴 학생이 있다. 그걸 다듬어 교외 공모전에 응모했다. 그리고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 수상 학생은 계속 글을 써야 맞는데, 그게 아니다. 그걸로 끝인 학생들을 여럿 보다보니 절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열심히 글을 쓰려는 게 학생인가, 나인가?
 
꾸준히 글쓰는 학생들이라해도 문제가 있다. 예컨대 학생의 초록 원고를 여러 번 첨삭 지도해 전국 공모전에 응모했다. 수상 가능성이 보였는데, 뜻밖에도 1등상을 받았다. 그런데 학생은 스스로 잘 써 받은 것으로만 안다. 그 부모는 더 심하다. 자식이 잘나 엄청 큰 상을 받은 것으로 알기 일쑤다.
 
필자는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을 거액의 상금과 함께 1등상을 받게 문예지도했지만, 어떤 부모로부터도 감사하단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부족한 제 자식,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신 덕분으로 큰 상 받게 되어 너무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 한 번 받지 못했으면서도 수십 년 문예지도를 해왔으니 참 무던하다 해야 할까.
 
문예지도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근 30년 아무 이상없이 해온 게 재작년부터인가 바뀌어서다. 다름 아닌 학생여비 문제이다. 골자는 버스표 첨부해야 학생여비를 준다는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교사 따로 학생 따로 교외백일장에 가라는 것이다. 차종에 따라 4명에서 그 이상도 태울 수 있는 멀쩡한 교사 자가용을 놔두고 학생들은 버스로 따로 가야 하는 그 ‘악법’을 도저히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해 필자는 원거리 백일장은 여러 군데 포기하고 말았다. 정지용백일장(충북 옥천), 영랑백일장(전남 강진), 목포대학교백일장(전남 무안) 등이다. 3군데 모두 수상자를 배출했던 백일장이었기에 불참만으로도 상받을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거기에는 교사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교육당국의 홀대나 무관심이 또아릴 틀고 있다. 교사 자가용에 학생들을 ‘공짜로’ 태우고 가면 된다는 식이니까! 기름값도 채 안 되는 수준의 출장비를 주며 학생들까지 그냥 태우고 교외백일장에 가라는 것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불쾌하고 짜증나는 ‘교사사기 죽이기’라 할 수 있다.
 
문예지도를 그만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필자가 해온 일은 국어과 ‘3D업종’이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 맡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도 필자는 그 일을 어느 학교에서든 근무기간 내내 고스란히 도맡아 해왔다. 30년 남짓 국어선생을 그렇게 했는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대접을 받곤 한다. 이런저런 교육상에서 탈락되고만 것이다. 1차 통과후 2차 현지실사에서 탈락된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다.
 
요컨대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데 본인만 자부심을 느끼며 우쭐대는 뭐, 그런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꼴불견 아니겠는가! 문예지도가 열정외에도 제자사랑이라는 남다른 봉사정신이 투철하지 못하면 해낼 수 없는 일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아뿔사, 그것마저 아전인수적 생각이라면 애들 말로 ‘쪽팔릴’ 일이다.
 
쪽팔릴 일은 또 있다. 문인단체나 대학교 백일장을 가면 대개 아는 문인들이 대회를 주관한다. 그런 대회에서 필자의 제자 누구도 상을 못받는다. 그때의 참담함이란! 실제 겪어보지 않은 문인교사들은 잘 모른다. 아이들 수상에 뒷말이 날까봐 심사위원도 고사하며 인솔하는 백일장인데….
 
물론 무슨 보상이나 받으려고 문예지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그들대로 스스로 잘나 그런 줄 안다. 또 당국은 학생들 교외활동에 말도 안 되는 족쇄를 채운다. 그러고보면 필자는 페스탈로치 같은 교육자는커녕 그냥 '속물 교사'인 모양이다. 문예지도를 그만두는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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