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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군산여상을 떠나며

3월 1일자 정기교원인사에 따라 5년 동안 근무했던 군산여상(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을 떠나게 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정들었던’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그 말이 통속적이거나 상투적이어서가 아니다. 필자가 ‘정들었던 군산여상’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인생’에 휘둘린 5년 세월이 너무 씁쓸하게 다가와서다. 
 
5년 전 자청하여 군산여상에 전입할 때만 해도 제법 설레이고 부풀기까지 했다. 어차피 6개월, 늦어도 1년이면 뜰 학교로 생각했다. 집 인근의 학교 전입을 시도하지 않고 순환전보내신서(만기시 내는 교원인사서류) 희망지를 군산으로 썼다. 군산여상을 희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또 하나 이유는 35년도 더 지난 고교시절 당시 군산여상 학생들에 대한 환상이었다. 아니다. 젊은 국어교사일 때 여학생들에게 인기 캡이었던 추억이 또아릴 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력이나 외모 등 그 수준이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전통의 명문 군산여상 근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군산여상에 대한 환상은, 그러나 왕착각이었다. 과거의 인기 캡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필자는 여학생들에게 50대 중반의 그냥 ‘꼰대’일 뿐이었다. 학생들 역시 전통의 명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왜 이 학교로 왔는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우둔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나마 1학기와 2학기에 지원했던 두 번의 교장공모에서 보기 좋게 탈락되었다. 특히 2학기때 지원한 교장공모의 경우, 깊은 상처와 많은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4년 전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다. 그럴망정 표절과 금품요구 등 교육계에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을 막상 당하고보니 군산여상에 온 것이 절로 후회되기도 했다. 
 
결코 훌훌 털어낼 수 없는 고통을 덜어준 것 역시 학생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글 깨나 쓸 줄 아는 ‘애제자’들이었다. 사실 군산여상 재임 5년 동안 필자는 글쓰기 지도를 통해 많은 제자들이 상을 받게 했다. 대통령상을 비롯 수백 만 원의 상금이 걸린 백일장, 공모전 등에서 1등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필자는 여느 담임 못지않게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바쁜 원로교사(만 55세 이상의 교사)였다. 바쁜 만큼 신났고 보람도 컸다. 학생들의 글솜씨가 일취월장하는 걸 지켜보는 기쁨은, 국어나 문인교사라해도 아마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의무적으로 떠나려면 1년 더 있어야 하지만, 일반내신서 제출은 집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작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그냥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겠지 했는데, 뜻밖의 발령이 난 것이다. 31년 동안 유일하게 두 번째 근무인 학교로의 발령이다. 
 
그런데 아뿔싸! 임지는 5년 전 교장공모 때 필자에게 많은 상처를 안겨준 학교이다. 1990년대 중반 첫 근무때 ‘필화’를 겪게한 학교이기도 하다. 너무 아이러니칼한 인생사라 할까. 더러 축하전화를 받으면서 그들보다 덜 기뻐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년 더 있다 전출하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래서다. 5년 동안 해온 글쓰기며 학교신문, 그리고 문집 제작지도는 후임자가 잘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이전 학교처럼 아예 모든 게 없어지는가 따위 생각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참에 좀 ‘편하게’ 근무하려 한다. 원로교사라 힘이 들어서가 아니다. 피곤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열정을 바쳐 지도했건만, 졸업식 날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간 학생들을 많이 봐와서다.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 하나 가르치지 못했으면서 무슨 글쓰기 지도를 한답시고 깝죽대는지 자괴감이 너무 크게 자리잡게 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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