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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딸을 사랑하는 마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가족은 나의 전부이고 사는 이유가 된다. 그중에 딸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딸 바보라는 말이 있는데, 나도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 않는다.

딸애가 어릴 때 퇴근길을 서둘렀던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잎 눈뜨듯 글을 읽기 시작할 때는 함께 동화책을 읽는 즐거움에 콧노래를 부르며 갔다. 아들 녀석은 놀이터에서도 혼자 놀게 했지만, 딸애는 손을 꼬옥 잡고 다녔다. 제 오빠와 달리 예쁘게 키우고 싶었다. 꽃을 가까이 보게 하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마음을 갖게 했다. 백합처럼 구김살 없이 크도록 했고, 긴 머리도 단정하게 묶어 주었다. 아빠는 우리 딸이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자주 말했다. 풍요롭게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부족한 것 없이 키웠다.

그런데 품안에 자식이라고 딸애가 크고 나니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자주 여행을 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딸애가 음악을 듣는다고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다. 나는 겨우내 움츠렸던 도랑이 생기를 찾는 소리며, 봄바람에 몸을 부비고 있는 꽃들의 움직임을 듣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어느덧 자기만의 세계를 즐긴다.

옷 하나 살 때도 우리 부부와 딸애가 신경전을 벌인다. 우리는 봄빛을 닮은 치마를 사주고 싶은데, 딸애는 가을색이 좋단다. 제 엄마는 구두도 튀지 않는 것을 고르지만, 딸애는 굽도 높고 색도 요란스러운 것을 고른다. 며칠 전에는 딸애가 휴대전화기 케이스를 바꾸고 왔다. 꽃 장식이 있어 요란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손에 쥐기도 힘들어 보인다. 딸애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지 케이스에 집착하는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지난번에도 동물 귀까지 달려 투박하다며, 제 어미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딸애도 서운함이 많나보다. 제 방으로 돌아가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노란 달빛이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우리 집은 갑자기 냉기가 돈다. 베란다에서 서성이며 마음을 휘 적고 있다. 어릴 때는 부모 말을 잘 들었는데, 안 듣는 것인가. 왜 자꾸 엇나갈까. 걱정이 내려앉는다. 한편 생각해 보니 엄마 아빠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딸애가 제 힘으로 생각을 키우고 있다는 판단도 선다. 내 과거를 들쳐보니 그 시절에는 내 생각만이 옳다고 사로잡혀 있었다. 어머니가 애절하게 말씀하신 것도 뿌리치고 걱정을 안겨드린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탈선은 아니라도 어머니의 마음에 휑한 바람이 들락거리도록 만들었다. 때로는 일탈의 들판에서 배회하다가 상처가 나도 스스로 아물면서 커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딸애도 자기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질녘에 찾아오는 어둠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못된 사고방식이 자리했나보다. 젊은 층의 말과 행동, 생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딸애의 생각은 단순하고, 경박하다는 판단을 했다. 나와 다르면 상식의 배반이라고 수직적 사고를 했다. 아이들의 문화가 있고, 어른의 문화가 있다. 당연히 문화가 다르다. 그런데 나는 선입견의 골목길로 따라오게 한 것이다.

우리 삶이란 것이 하찮은 일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실수나 잘못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를 하게 된다. 딸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후회가 많이 남는다. 키우는 동안 내가 잘못한 것이 너무 많다. 딸애가 바꾼 핸드폰 케이스도 요즘 문화다. 중장년층도 즐기고, 젊은이들은 패션으로 여긴다. 딸애도 세상의 흐름에 올라타 나이에 맞는 표현을 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일상의 사소한 선택이라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내 딴에 딸을 잘 키우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강박관념은 나만의 방식이었다. 딸과 의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인간보다 이기적인 존재는 없다고 했는데, 나를 두고 한 말처럼 느껴진다. 내 위주의 가치관에 따라 제멋대로 판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 딸에게만 그랬을까. 가까이는 식구들에게 나가서는 동료들에게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다른 모든 의견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참 위험한 사고의 틀이지만 고치지 못한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바꿔야 할 것은 내 마음 외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평범한 말이지만 진리가 담겨 있다.

삶이란 날마다 개선되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편견에서 눈을 떼고, 딸애를 더 많이 바라봐야겠다. 더 바라보고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아이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보다 지금 행복한 순간을 지켜줘야겠다.

아버지의 눈으로 볼 때 여린 딸애가 세상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걱정스러운 면이 많다. 하지만 딸애는 저 들판에서 비바람 맞으며 크는 나무처럼, 제 나이에 맞게 햇빛을 맞고 또 바람도 맞으면서 컸다. 스스로 기쁨을 창조할 줄도 알고, 삶을 내다보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제 걱정보다 믿음으로 지켜야겠다. 제 삶의 길을 묵묵히 가는 길을 응원해야겠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에 대해 마음으로 열렬한 희망을 갖는 것이다. 딸애를 통해 사랑을 배웠다. 오늘 내 편견의 틀에서도 크게 부딪치지 않고, 잘 커 준 딸애가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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