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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초등학교 1학년을 가르치는 기쁨은 뭐니 뭐니 해도 교육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심리 발달 수준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락가락하는 나이인 1학년 아이들이라 발달의 가속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그들의 상상력은 무한대입니다. 동화 속의 이야기 주인공이 살아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장래 희망이 공주도 있답니다. 더불어 귀엽기까지 합니다. 한 사람씩 떼어 놓고 보면 귀엽지 않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답니다. 자기만 봐 달라며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하는 커다란 눈동자를 보는 기쁨은 1학년 선생님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모두 자기만 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한데 어우러지면 선생님은 정신이 없답니다. 심지어 자기 말을 빨리 안 들어준다고 울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으니까요. 쉬는 시간이면 그 모습은 극에 달합니다. 모두 앞으로 나와서 나를 둘러싸고 쫑알대기 시작합니다. 1학년 선생님에겐 쉬는 시간도 허락이 안 된답니다. 쉬는 시간에 잠시만 자리를 비울라치면 작은 분쟁들로 얼룩져서 교실로 돌아온 나는 졸지에 판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 자기 집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일쑤이고, 일러바치기 대장들이 되곤 하지요. 그것이 소통을 위한, 대화를 위한 몸부림임을 알기에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들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서 그런 소통의 시간, 일러바치기의 시간을 묵살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어느 순간 말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집에 가면 바쁜 부모님, 얼굴조차 보기 힘든 아버지, 맞벌이로 힘든 엄마는 눈을 맞추고 이야기할 시간도 못 주니까요.

그렇게 5분 집중도 안 되던 아이들이 이제는 40분 간 자리를 지키고 공부를 합니다. 싸우느라 소리 지르느라 되지 않던 수학 게임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자기 물건을 정리정돈하고 자기 주변을 깨끗이 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잘못하면 사과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는 것도 잘 알고 실천합니다. 우리 1학년 아이들에게도 가을이 온 겁니다. 아이들은 이제 내 품에서 떠날 준비를 하느라 그렇게 이쁜 짓을 해댑니다. 계절만 절로 바뀌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이테를 한 살 그어가고 있는 1학년 아이들에게도 가을이 와서 철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깊어집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저 아이들을 만나 힘들고 지쳐서 앓아눕고 이명까지 와서 병원을 들락거린 3,4월이 꿈처럼 아련합니다. 이제는 날마다 청소하고 손수건과 걸레를 빠느라 선생님 손목에 병이 났다고 스스로 비를 들고 도와주려고 나대는 아이들이 예뻐서 볼때기라도 비벼주고 깨물어 주고 싶지만 마음으로만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1학년 선생님의 가을도 가고 있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붉은 가을이 되어갑니다. 여덟 개의 가을 열매들이 오종종 모여 앉아 틱탁거리던 교실 이야기들이 사방에서 튀쳐 나와 자기들의 이야기를 적어달라고 부릅니다. 내일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 얼굴로 선생님을 불러댈지 기다려집니다.
 
아이들과 내 가 만든 아홉 개의 가을 풍경으로 참 행복한 요즘이랍니다. 종알종알 시를 외우는 소리, 재잘재잘 동화를 외우고 100점을 받았다며 깡총거리며 좋아합니다. 예쁜 눈으로, 고운 손으로 배꼽인사를 하는 사랑스런 모습은 천사의 모습이랍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수확의 열매를 안겨주는 요 녀석들 덕분에 저는 지금 한참 젊어지고 있답니다.

가르치기 힘들다고 기피하는 학년이 된 1학년 악동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만큼 가장 보람도 안겨주는 아이들이 1학년이지요? 1학년 선생님들! 반년만 참으시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안겨주는 게 1학년이랍니다. 커 가는 모습이 금방 보이니까요. 글눈이 떠서 호기심의 쌍안경을 들고 다니며 기상천외한 발언들을 쏟아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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