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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역사왜곡에 재미없음까지 더해진 '비밀의 문'

상반기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KBS ‘정도전’(6월 29일 종영)이후 TV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정도전’ 같은 대하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퓨전사극 따위를 보며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월~목, 토⦁일요일까지 거의 일주일 내내 밤 10시대 TV드라마들을 ‘눈썹 휘날리게’ 보던 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TV 보기에 소홀한 시간들이었다. 그런 소홀함을 벗어나게 해준 드라마가 SBS 대기획 ‘비밀의 문-의궤살인사건’(이하 ‘비밀의 문’)이다. 9월 22일 시작, 12월 9일 24회로 종영했다.

당연히 단 1회도 거르지 않고 ‘비밀의 문’을 지켜보았다. 2회가 전국 시청률 9.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는 등 초반 기세는 그럴 듯했다.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이제훈)에 대한 ‘전향적’ 조명이란 점이 관심을 끌었다. 알려진 영조(한석규)에 대한 약점 잡힌 군주의 모습도 눈길을 잡을만했다.

이왕 있어온 사도세자 묘사는 당쟁의 희생양으로 그려졌다. 2007년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MBC 대하드라마 ‘이산’이 그랬다.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지난 봄 개봉한 영화 ‘역린’에서도 사도세자는 노론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다. 세자였던 그가 임금이 되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죽은 건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사도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사도’가 내년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모습의 사도세자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지만, ‘비밀의 문’은 좀 너무 했지 싶다. 사도세자가 너무 급진적 개혁주의자라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어서다. 결국 ‘비밀의 문’은 영조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벤 사건이란 인상의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그것은 팩션이라 가능한 일이다. 가령 실록 등에 두어 줄 나와 있는 역사적 진실을 토대로 비틀어대고 버무리는 팩션의 면죄부라 할까. 기실 ‘비밀의 문’은 사도세자가 부왕에게 사사건건 자기주장을 야무지게 펼치는 등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사극이다. 세상과 불화한, 왕조시대 세자답지 못한 인물형인 것이다.

팩션은 합법적으로 역사왜곡을 저지른다. 그것이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드라마틱한 사랑이 아니라면 심각한 후유증을 안기게 된다. 왜냐하면 재미라도 있어야 시청자들이 드라마일 뿐이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나 ‘기황후’ 같은 팩션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래서라고 보면 된다.

어쨌거나 아비의 원수를 갚아야 할 정조때 편찬된 영조실록은 “세자가 10세 이후 학문에 태만했고, (정신)병이 생겨 궁녀와 내시를 죽이고 후회했으며, 기녀와 함께 절도 없이 유희했다”고 전하고 있다. 바로 팩션의 맹점이다.

최근엔 사도세자가 양극성 장애(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텀의 연구논문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비밀의 문’은 팩션이 아니다. 두어 줄짜리일망정 역사적 진실의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고 시종일관 백성을 오로지하는 ‘군주연하는’ 세자로만 그려졌으니 말이다.

초반 기세와 달리 시청률 5%대에 머물렀던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사도세자의 백성을 오로지 하는 민본, 개혁정치 등이 어떤 공감대나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 것. 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군주가 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들을 밀어붙이는 전개가 패착을 낳은 것이지 싶다.

어찌 할까. 역사왜곡에 재미없음까지 더해졌으니! 무릇 팩션이란 MBC ‘기황후’, KBS ‘공주의 남자’에서 보듯 재미라도 건져야 역사왜곡까지도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임을 깜박했나보다. 그 동안 이렇다 할 히트작을 거의 내지 못한 SBS 사극의 한계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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