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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돌아보는 12월

며칠 남지 않는 12월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간 시간의 소리가 쓸쓸하면서도 애틋한 그리움의 여운을 남긴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잘 실천했는가? 매사에 감사하며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 충실한 삶을 살았는가? 달력의 숫자들이 질문을 던지며 아쉬워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난해 사용하고 보관한 자료로 트리를 만들었다. 재잘대며 솜도 붙이고 은종, 금종을 매달며 저마다 신이 난다. 얼굴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받을 일이며 한 살 더 먹고 한 학년 올라간다는 선홍빛 기대가 가득하다. 아이들을 보면 동심은 언제나 새롭고 투명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칠할 크레용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한 백색이라도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때가 끼게 마련이다. 동심과 같은 삶과 성장의 투명한 창에 얇게 낀 때는 입김 한 번으로 새롭게 할 수 있지만, 세상이 온갖 일들이 깃들어 두꺼워진 어른의 마음은 어떠할까?

긴 밤 짧은 낮!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에서 걸어온 길을 짚어본다. 우리는 언제나 새해 첫날이 다가오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환호하고 첫 해돋이를 보며 다짐과 결심으로 한 해를 계획한다. 건강하게 해 주소서, 부자 되게 해 주소서, 아이들 대학 잘 가게 해 주소서 등 무언의 소원들을 첫 빛줄기에 심는다. 하지만 새해 첫날의 결심도 평범한 일상의 연속에서 하루하루 사계절을 건너다보니 무디어지고 흩어져 아득해져 버리기 일쑤다.

12월의 이른 겨울 아침 들과 산을 본다. 봄의 청순함과 화려함, 열정과 싱싱함이 숨 쉬던 여름, 서늘함 속에 황금빛 결실을 던져준 가을 그리고 그 언저리엔 푸름과 결실을 모두 떨어내고 하얀 입김과 서릿발이 솟은 무채색의 겨울이 채우고 있다. 강요도 아닌 순환 속에서 자연은 보이지 않는 계획에 의하여 자신의 할 일을 차례대로 하는 것을 보며 정작 자신은 무엇을 했는지 채근하면 지나간 사간들이 밀물처럼 우수성 친다.

세상살이는 만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 한해를 어떻게 살았을까? 만남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닦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까? 긴 시간을 욕심과 바람으로 때가 낀 제 마음의 창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사람의 창을 더럽다고 들추는데 충실했고, 밝고 부드러운 말보다는 칙칙한 말, 날이 돋친 말을 더 많이 건네며 용서하는 일 보다는 변명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또한, 실수 할 때는 바쁘다는 핑계를 앞세워 종종거리며 보고 듣고 말할 것이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이라며 자신의 합리화란 갑주를 입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착한 사람인 양 오만에 빠져 사랑하는 일에도 한 뼘의 손으로 앞뒤를 재는 관념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나날이 주어지는 새로운 시간의 구슬들을 제대로 꿰었을까? 대답은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로 녹슨 구슬만 꿰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지상의 생명은 모두 숨을 쉰다. 숨을 쉰다는 것은 절체절명의 생존과 관련된 일이다. 하지만 똑같이 숨을 쉬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숨소리를 들려주는 일에 얼마나 노력을 하였는가도 챙겨볼 숙제이다. 그 숨소리에서 남을 나무라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살펴보고, 불평하기 전에 고마운 것을 헤아려보고, 사랑에 대해 쉽게 말하기보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숨을 쉬고 있는지 가슴을 쓸어내려 볼 일이다.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하루의 끝과 한 해의 끝이 되면 더욱 크게 드러나는 것이 자신의 허물과 약점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받아들일 것은 보듬고 돌아보고 닦아야 할 시기가 지금이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자기 일을 정리하고 나목으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매일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계절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 왔다. 모진 삭풍의 겨울. 모든 잎을 떨어내고 성장을 잠시 멈춘 채 긴 휴식에 들어가 있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들은 새봄을 위해 두꺼운 껍질과 진액, 솜틀 사이에 새싹을 감추고 작은 숨을 쉬고 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이라 했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을 살펴보고 불평보다는 고마움으로 사랑이라는 말보다는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날마다 새롭게 깨어있는 날을 닦는다면 언제나 색동옷 입고 찾아오는 찬란한 나날과 새해를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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