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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역사를 매일 새로 쓰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소문이 무서운 법이다. 90대 노부부의 ‘죽어가는’ 삶을 그린 영화에 20대 예매율이 가장 높은 걸 보니 절로 드는 생각이다. 20대뿐만이 아니다. 10대들의 관심과, 그로 인한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대입수능에 이어 고입 연합고사가 끝나 문화체험이 빈번히 이루어지는 일정이라해도 10대들이 90대 노부부가 주인공인 다큐영화를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 지금 극장가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 회오리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사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는 11월 27일 개봉 무렵만해도 대개의 영화들이 그렇듯 소 닭 보듯하던 작품이었다. 리뷰조차 또 다른 다큐영화 ‘목숨’과 묶어, 그것도 일부 신문에서만 소개되었다.

신문이 ‘님아’ 소식을 경쟁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개봉 7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부터다. 이는 한국 독립영화사상 최단기간 기록이다. 2009년 293만 3897명을 동원, 다큐영화 최고 관객기록을 갖고 있는 ‘워낭소리’보다 13일이나 앞선 개봉 7일 만의 10만 명 돌파이기도 하다.

‘님아’는 개봉 18일째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86개로 시작한 스크린은 무려 726개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그리고 12월 25일 300만 관객도 가뿐히 넘어섰다. 그 다음 날엔 354만 9848명으로 다양성영화 최고 흥행기록인 ‘비긴 어게인’의 342만 7520명도 갈아치웠다. 그러니까 ‘명량’이 그랬듯 독립영화 내지 다큐영화의 역사를 매일 새로 쓰는 ‘님아’가 된 것이다.

그쯤 되면 한국인의 입소문 타기는 가히 세계적이라 할만하다. 영화와 원수진 사람 빼고 웬만하면 ‘아, 그 님아’하는 영화에 대한 경배심이 한동안 이어질 걸로 보이니 말이다. 거기에 20대, 나아가 10대까지 가세한 것이 ‘인터스텔라’의 천만 영화 현상 못지 않은 ‘기이한’ 일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일반대중의 그런 열기가 아니었으면 ‘님아’는 썩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바꿔 말하면 화끈하게 보고 싶지 않았는데, 열기에 밀려 억지로 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님아’는 검버섯이 검게핀 노부부의 그저 그렇고 그런 76년 커플 이야기이다.

다큐영화라 낯익은 배우도, 마음을 밀당시키는 극적 드라마도 없다. 2002년인가 ‘죽어도 좋아’가 70대 노인의 성(性)을 주제로 삼아 화제를 일으켰지만, 대중적 반향은 크지 않았다. 성을 철저히 배제한 일상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 카메라 앵글이어서 그토록 관람 욕구를 자극하는 것일까.

눈이 부신 건 사계의 풍광이다. 1년 이상 공들여 진행한 촬영이 다큐의 진수를 잘 살려냈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산하에 녹아든 조병만, 강계열 할머니의 일상은 단조로우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마치 장수의 비결은 장난질에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낙엽 퍼붓기, 눈쌈, 물 뿌려대기 등이 펼쳐진다.

딱 한 번 거울 달기에서 할아버지 고성이 들린다. 고분고분 말 잘 듣기도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이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도 꽤 진하게 와닿는다. 오래오래 화목하며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고분고분한 할아버지 못지 않게 할머니 역시 아픈 무릎을 “호해주니 시원하다”고 하는 등 화답한다. 영락없는 ‘닭살 커플, 잉꼬 부부’의 모습이다.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울 필요는 없다. 거의 100살 되도록 살다가 간 할아버지 묘 앞에서, 그것도 수미상관 구성으로 할머니가 꺼이꺼이 우는 건 좀 아니지 싶다. 오히려 자식들이 어머니 생일잔치에 와서 벌이는 “큰오빠는 아버지 병원 한 번 모시고 갔냐?”는 쌈질, 그걸 먹먹히 지켜보는 노부부 모습이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78살이면 새댁”, “공짜로 얻었으니 공순이” 등 유머가 친절한 자막 배치로 인한 보너스임도 굳이 감출 필요는 없겠다. 다큐의 딱딱하거나 연기되지 않은 어떤 틀을 벗어나게 해줘 친밀도를 높인다고나 할까. 공순이(개)의 강아지 6마리 출산이 할아버지 죽음과 어우러진 자연의 섭리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럴망정 보리쌀이나 잡곡 없는 하얀 쌀밥, 시냇물에 나물씻기, 촌로(村老)같지 않은 할머니의 매끈한 발바닥 등은 다큐영화로선 좀 걸린다. 할아버지 나이가 들쭉날쭉한 것도 유감이다. 첫 촬영때(2012년 가을) 95세였음을 감안해도 그렇다. 할머니 14세에 19살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대사가 있는데 9년쯤 차이로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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