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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갑을 그리고 양극화

땅콩회황, 백화점 갑질모녀, 마트 갑질녀, 위메프 갑질사건과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 등 가진 자와 돈으로부터 시작된 욕망의 스펙트럼이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다양한 사건 뒤에는 갑을의 관계와 더불어 돈이 함께하고 있다.

갑을이란 어떤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 기계적인 갑을의 의미는 십간의 첫 번째인 갑, 두 번째인 을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인 의미보다는 가진 자에 의한 상하관계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며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갑(甲), 낮은 지위에 있는 자를 을(乙)이라 한다.

갑을의 위치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돈이다. 돈은 요즘 사회에서 부자와 빈자를 나누는 확실한 장벽으로 만물의 척도로 믿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돈이 부와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대부분 돈으로부터 시작된다. 돈은 우리 인생과 운명을 장악하고 천국이나 낙원 극락도 돈을 많이 내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이런 돈이란 부의 소유가 공평하면 모르지만, 어느 한쪽 쏠림으로 인해 갑을이란 말이 생겨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가 더 많은 이익창출을 위한 갑질, 슈퍼갑질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 유형을 연구하는 중에 전체 인구 중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부의 불균형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는 세계화 시대에 전 세계인구 중 20%만이 좋은 일자리를 갖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반면 대다수 나머지 80%는 사실상 20%에 빌붙어 살아가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체인구의 2%에 속하는 사람들이 전체 부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가장 부유한 인구 10%가 전체 부의 85%를 갖고 있다는 양극화를 극명히 보여주는 말이다.

돈에 대한 절대적인 추종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010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된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 추이에서 인생을 깨끗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보다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 사람이 70%를 넘어서는 돈이 절대적이라는 사고가 한국사회에 퍼지고 있다. 오죽하면 고등학생의 44%가 10억만 주면 감옥에서 1년쯤 보내는 것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을까? 이런 돈의 욕망이 우선시 되는 시점에서 돌아보게 하는 것이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戒盈杯)와 주나라 임금이 만든 그릇인 유좌지기(宥坐之器)이다.

계영배는 실학자 하백과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넘침을 경계하는 잔’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술잔에 술이 70% 이상 차면 넘어선 부분만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 술 전체가 흘러내리는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좌지기는 의식에 사용하는 의례용 기기인 의기로 속이 비면 기울어지고 적당히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질러진다고 한다. 이는 자신이 마음을 어떻게 잡고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 가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없는 자는 더 빈곤해진다. 이를 마태효과라고 하는데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는 성경의 마태복음 13장 12절에서 착안하여 나온 말이다. 즉 논 아흔아홉 마지기 가진 자가 한 마지기를 빼앗으려는 욕망과 같은 것이다. 이런 부의 양극화는 끊임없는 갑의 횡포와 욕망과 교만을 재생산하고 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양극화 사회에서 자유로운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도울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부유한 사람 소수도 구할 수 없다.’는 케네디의 말도 생각난다. 양극화 사회에서 절제와 나눔이 없다면 그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이며 인식은 있지만 실천의 다리가 부러진 사회인 것이다.

우리에게 가진 자의 본보기로 회자되는 이야기가 김만덕과 백과부이다. 또한, 청렴한 생활을 강조한 이로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관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토산물을 싣지 않고 책 수레만 가지고 돌아온다면 어찌 맑은 바람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갑 뒤에 을이 따로 오며 위치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 갑의 위치도 을의 위치도 중요하다. 서로의 입장에서 관계를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 사회의 이익을 더 도모할 수 있다는 의미에 밑줄을 긋고 싶다.
가진 자에게 만원은 별것도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 굶는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만원의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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