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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라대곤 소설가 2주기를 맞으며

아침엔 겨울 낮에는 봄 날씨가 계속되더니 비가 내린다. 참 세월이 빠르다. 다시 3월 5일(음력)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음력 3월 5일은 라대곤 소설가 겸 수필가가 우리 곁을 떠난지 2주기 되는 날이다. 1940년생이니 너무 이른 떠남이 분명하지만, 벌써 2주기를 맞는다. 세월이 참 빠른 것이다. 
 
나는 지난 해 그의 1주기를 맞아 세상에 나온 추모문집《라대곤 문학론》의 엮은이였다.《신곡라대곤문학연구》라는 그의 진갑기념문집을 기획하여 엮어낸지 1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책이다. 그것이 추모문집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연말연시에 있었던 ‘군산예술인의 밤’과 ‘제20회신곡문학상 시상식’ 참석자들이 추모문집《라대곤 문학론》을 받아볼 수 있도록 나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말할 나위 없이 그 책을 읽으며 고인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을 오롯이 새겼을지는 문인 내지 예술인 각자의 몫이다.
 
내게는 그 책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다. 어쩌면 라대곤 소설가와 나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꽤 비밀스런, 그런 사연일지도 모르겠다. 20년 전 나는 본의아니게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신호등 없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려던 내 차에 직진중인 오토바이가 달려왔고, 12시간 후 그만 그 운전자가 세상을 달리해버린 것이었다.
 
그 황당하고 절망적이었던 기분, 그리고 끝모를 죄책감을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구속 다음 날 전격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내 말에 의하면 피해자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왔고, 요구한 액수대로 들어줘서 그리된 모양이었다. 3천만 원, 보험사에서 지급한 9천만 원과 별도로 내가 유족에게 준 돈이었다. 
 
한 사람의 생명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지만 면허정지, 벌금형 판결, 교육청 징계 등을 당하는 현실로 돌아오니 3천만 원은 엄청 큰 돈이었다. 더구나 아파트 장만에 따른 융자금 미상환액이 아직 2천만 원이나 남아 있었다. 이를테면 5천만 원의 빚을 안게된 셈이었다. 
 
바로 그 무렵 소설가 겸 수필가이자 사업가인 라대곤 회장을 만났다. 사업가의 소설 쓰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와 각별한 교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뜻 3천만 원을 내준 것이었다. 어떤 조건도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싶었지만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라대곤 회장은 명쾌했다.
 
“돈 때문 신경 쓰이면 좋은 글 쓸 수가 없어!”
 
한편 거금 3천만 원은 6년에 걸쳐 전액을 갚을 수 있었다. 물론 갚으라는 압박이나 무슨 눈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야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3천만 원이라는 물질적 도움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어떤 고마움이고 은혜였다.
 
나는 이후 ‘라대곤 전문 평론가’가 되어 있었다. 그가 펴낸 소설과 수필집, 그리고 동화까지를 전부 비평하게된 것이다. 그것들을 다른 이들의 글과 한데 묶어 펴낸 것이 바로《라대곤 문학론》이다. 1주기때 직접 가서 그의 영전에 책을 봉정했다. 이제 2주기를 맞으며 양장본으로 새로 꾸며질《라대곤 문학전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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