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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천재 한인 소녀 사기극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얼굴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진학했다는 천재 한인 소녀 김모양의 이야기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TJ)과학기술고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양은 지난해 말 하버드대에 조기 합격한 데 이어 올해는 스탠퍼드대 등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김양은 처음 1∼2년을 스탠퍼드대에서 수학하고 이후 2∼3년을 하버드대에 다닌 뒤 졸업 대학을 학생이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두 대학은 유학생 신분인 김양을 위해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포함, 거액의 학비를 전액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하버드는 김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교수 장학금을 특별히 제공하겠다는 보도였다. 그리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와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양이 지난 4월 말 두 대학을 놓고 마지막 고민을 할 때 저커버그에게 이메일로 조언을 구했다는 내용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며칠 지나 이 기사가 거짓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사 내용 중에 김양의 수상 실적, 대학 교수의 인터뷰, 대학 동시 합격 등이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김양이 직접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까지 해서 전국적으로 퍼졌는데, 그 미담 사례가 모두 허위였다.

김양의 사건은 여러 면에서 충격이 크다. 어린 소녀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언론사에 사실처럼 말했다는 것이 놀랍다. 사건 후 보도에 의하면, 김양의 부모는 아이의 치료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이로 추리해 보건대 김양은 마음이 많이 아픈 듯하다. 김양의 집안은 소위 명문가이다. 그러다보니 집안과 부모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김양은 정신적으로 명문 대학 입학해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국내 언론사의 보도 과정과 대응이다. 언론 보도는 사실이 생명인데 보도 과정에서 검증이 전혀 없었다. 기사 제보자가 제시한 합격증서와 기타 자료를 근거로 책상에 앉아서 기사를 썼다. 기장 기본적인 사실 관계만 확인했어도 이런 엄청난 오보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해당 기사를 확인 과정 없이 그대로 베껴 쓴 언론사들도 문제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는 보도 자료를 적당히 편집해서 보도하는 관행에 익숙하다. 이런 언론사들이 아무런 도덕적 양심도 없이 타사의 기사를 베끼는 보도를 하고 있다. 이번 사건도 한 매체에서 기사를 내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라고 판단한 언론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베끼기 기사를 냈다. 역시 이 과정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고 냈던 것이다.
언론사의 과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짓이 판명난 후 일부 언론사는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미흡하다. 정론을 펼쳐야 하는 언론사의 사명을 잊은 채 느슨하고 안이한 조치다. 치명적인 실수에 대한 대응 방식이 업무 처리 하듯 했다. 신문 구석에 반성 기사만 냈을 뿐 오보에 대한 책임, 그에 따른 회사 방침, 차후 예방책은 없다. 속칭 아니면 말고 식이다. 일부 언론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김양의 거짓 사건은 우리 사회의 학벌중심주의 문화가 낳은 폐단이라고 진단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벌보다는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학벌 숭상주의가 책임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물론 언론사의 진단이 틀린 것은 없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학벌을 중시하고 있다. 명문 대학 학벌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배력을 발휘한다. 명문 대학 출신은 직장을 들어갈 때 이익을 보고, 이것으로 승진과 기타 혜택을 누리면서 평생 덕을 본다. 이러한 현상은 광복 후 시작해 산업 사회에서 절정을 이루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벌 중심 사고는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창의적 인재들의 길을 막아 그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는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 막는 독소이다.

김양의 대학 입학 거짓 사건은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사람이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생이라고 속이고 교수에게 결혼식 주례까지 받았다가 들통 난 사례도 있다. 대학 교수까지 지낸 사람도 학위가 가짜로 판명 났다. 그때 사회 지도층 인사 및 인기 연예인들도 학력을 속이고 활동한 것이 속속 드러났다. 이때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져 법의 심판은 물론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는 개인적 문제로 끝났다. 대학도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그냥 지나갔다. 대학들은 인기 연예인이 자기 대학 출신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학적 관계만 확인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덮어두고 모교 출신임을 활용해 대학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했던 반성은 없었다.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도 언론사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내 언론사들이 김양 사건을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것도 결국은 미국 명문 대학에 합격한 사례 자체가 기사 거리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언론사들이 이미 학벌 우선주의 문화에 젖어 있다. 국내 언론사들은 실제로 대학 순위 조사를 보도하고 있다. 이 조사 보도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핑계를 댈지 모르지만 순위로 경쟁력이 강화되지 않고 있다. 득보다 실이 많은 대학 순위 조사에 대해서 비판적 여론이 많으니 중지해야 한다. 언론사의 사명은 진실보도다. 발로 뛰지 않는 보도는 세월호 사건 때도 엄청난 오보로 충격을 주었다.

김양의 대학입학 위조 사건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그것을 소리 없이 부추기고 있는 언론사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확인 과정 없이 무작정 베껴 쓰는 언론사의 시스템도 이 사건을 키웠다. 이번 사태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남 탓하기 전에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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