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 맑음동두천 18.8℃
  • 구름많음강릉 15.6℃
  • 맑음서울 19.5℃
  • 맑음대전 20.2℃
  • 맑음대구 22.1℃
  • 맑음울산 21.5℃
  • 맑음광주 20.5℃
  • 맑음부산 22.9℃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2.4℃
  • 맑음강화 16.8℃
  • 맑음보은 19.7℃
  • 맑음금산 18.6℃
  • 맑음강진군 21.7℃
  • 맑음경주시 21.5℃
  • 맑음거제 21.8℃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흠잡을데 거의 없는 천만영화 '암살'

호사가들은 ‘암살’⋅‘베테랑’⋅‘협녀: 칼의 기억’⋅‘뷰티 인사이드’ 상영을 두고 빅4 여름대전이라 말하고 있다. 2014년 여름 ‘군도’⋅‘해적: 바다로 간 산적’⋅‘명량’⋅‘해무’ 등과 비교해 그럴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4대 배급사 쇼박스⋅CJ E&M⋅롯데엔터테인먼트⋅NEW가 위에 든 영화들로 박 터지는 접전을 벌였다.

지난 해에 이은 4대 배급사 경쟁은 맞지만, 그러나 대작이란 측면에서는 ‘암살’과 다른 영화들은 비교거리가 안된다. ‘암살’이 순제작비만 180억 원인데 비해 다른 영화들은 ‘협녀: 칼의 기억’ 90억 원, ‘베테랑’ 60억 원, ‘뷰티 인사이드’ 45억 원에 불과한 중급 규모이기 때문이다.

순제작비 180억 원이라면 손익분기점이 대략 600만 명이다. 7월 22일 개봉한 ‘암살’(감독 최동훈)은 상영 20일째인 8월 10일 9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광복절인 8월 15일 천만영화로 등극했다. 2012년 ‘도둑들’에 이은 최동훈 감독의 연속 천만영화 기록이다.

새삼 최동훈 감독의 존재감이 확인된 셈이다. 최동훈 감독의 존재감이라고? 그렇다. 최감독은 2006년 ‘타짜’ 568만, 2009년 ‘전우치’ 606만, 2012년 ‘도둑들’ 1298만 명 등 흥행실패의 쓴 맛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전무후무한 흥행불패 신화의 감독이랄 수 있다.

‘암살’의 흥행행진은 최감독 개인의 기쁨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지난 봄 초토화되다시피했던 한국영화의 부활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어서다. 8월 5일 개봉한 ‘베테랑’의 기세가 만만치 않지만, 올 여름 승자는 말할 나위 없이 ‘암살’이다. 이는 7월 30일 개봉, 8월 12일 500만 명을 돌파한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까지 살펴본 결론이다.

‘암살’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1930년대, 그러니까 일제침략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흥행실패를 깬 점이 그것이다. ‘라듸오 데이즈’⋅‘모던보이’⋅‘기담’⋅‘YMCA야구단’⋅‘청연’⋅‘아나키스트’⋅‘원스 어폰 어 타임’⋅‘마이웨이’⋅‘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등 흥행성공작은 없다. 다만 2008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만이 668만 명 넘게 관객을 동원했을 뿐이다.

진짜 ‘암살’은 흠잡을데 거의 없는 천만영화이다. 광복 70년에 맞춘 상영 전략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타이밍도 좋다. 광복 70년에 보는 민족현실이랄까. ‘암살’은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 친일파 강인국(이경영)과 일본군 사령관을 죽이는 이야기다.

거기에 독립군 유격대장이면서 밀정인 염석진(이정재)과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가세한다. 자연 얽히고 설키지만, 그러나 그것은 활극으로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사실 ‘암살’은 조용한 암살의 영화가 아니다. 잦은 난사 장면이 그것이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되게 재미있다. 통쾌하고 후련하다.

그냥 재미진 영화라면 ‘암살’을 폄하하는 말이다. 조준사격으로 총을 쏘던 안옥윤은 마침내 거리로 나와 마구 갈겨댄다. 어쨌든 사람 죽이는 총질인데, 그 장면에서 콧등이 시큰하달까 찌릿함을 느낀 건 나로선 처음이지 싶다.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을 걱정하고, 염석진 총에 맞아 죽는 장면 등에서도 그렇다.

결국 나라 잃은 민족의 비극이 서로 죽이고 죽이려는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하와이 피스톨 하인쯤으로 나오는 영감(오달수)도 일정량 그 몫을 해내고 있다. “지도에서 없어진지가 언제인데, 조선, 조선하나”라든가 “3천불, 우리 잊으면 안돼” 같은 대사가 그것이다. 그가 보여준 유머 코드에 진지함이 더해진, 캐릭터의 승리라 할까.

그렇듯 캐릭터 각자의 뚜렷한 모습이 쏙 들어온다. 전지현의 저격수, 춤추기 장면 연기가 인상적이면서도 조진웅이 너무 멋져 보인다. “우국도 배불러야 할 수 있다”고 한 캐릭터의 반전이라 그럴까, 속사포는 하와이 피스톨에게 당한 후 상하이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살작전을 감행한다. 안옥윤에게 “그렇게 입으니 이쁘, 쁘네”하며 죽는 장면이 제법 찌릿하다.

무엇보다도 ‘암살’의 강점은 ‘케이퍼 무비’(훔치기 범죄의 계획과 실행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를 표방하는 활극이면서도 스릴러로 전개되는 점이다. 한국영화로는 너무 긴 139분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건 그 덕분이다. 가령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결혼식장에서 “어머니는 왜 죽이셨어요?” 묻는 식이다. 이때 아연 긴장감이 고조되는 건 말할 나위 없다.

거기에 독립군이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는 안옥윤 같은 독립군의 신념이 더해져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1911, 1949, 1933, 1945년 등 시간 이동이 잦지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처럼 무슨 내용인지 헷갈리지 않아 보기에 편한 것도 ‘암살’의 강점이다.
황당한 활극이면서도 이강국 집에 들어간 안옥윤이 가정부에게 “이거(핸드백) 좀 제 방에다 갖다 놓으세요” 하며 낯섬을 해결하는 디테일 역시 돋보인다. 그 외 증기기관차라든가 자동차, 미츠코시 백화점 내부 모습과 의상 등 1930년대를 재현해낸 미장센도 기억해둘만하다.

굳이 흠을 잡자면 ‘만주 한국독립군 주둔지’라 나오는데, ‘한국’이란 용어가 맞는지 하는 의문이다.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호인 대한민국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 아닌가? 안옥윤의 쌍둥이 설정은 흥미롭지만, 너무 드라마틱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럴망정 모든 것이 천만영화로 손색 없는 ‘암살’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