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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다시 생각해야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학생이 배우는 교과서에 한글 옆에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해 9월 2015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밝혔다. 따라서 몇 년 내에는 모든 교과서에 한자어가 병기된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은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됐다. 하지만 1970년 한글 전용화 정책에 따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자가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교육부터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이어져 왔다. 급기야 이번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모든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려는 정부 방침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공청회를 거치는 등 절차가 남아 있지만, 교육부는 시험에 출제하지 않는다는 등 구체적인 계획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확정 단계만 남았다.

하지만 한자 병기 정책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동의를 할 수 없다. 한자 병기에 대한 정부 방침에 ‘인문·사회적 소양을 함양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교과서에 한자를 나란히 쓰고, 초등학생들이 어려운 한자 몇 개를 외우듯 배운다면 이런 효과가 있을까. 차라리 한자 병기로 단어의 뜻이 명확해지고 개념을 쉽게 익힐 수 있다면 수긍이 가겠다. 인문학적, 사회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서 체험 등 다른 방법을 권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인성교육 강화를 위해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도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자 병기는 오히려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더해 인성을 해칠 우려가 있지 않을까.

1980년대 이후 신문도 가로쓰기가 보편화되면서 한자 표기가 사라졌다. 대학 교재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한자 표기를 하지 않고 있다. 국어국문학 전공 서적도 한자 표기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초·중·고생이 배우는 교과서만 한자가 표기된다. 기형적인 정책이고, 거북한 모습이다.

일반화된 문서와 함께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인터넷도 한자 표기가 필요 없다. 충분히 글을 읽을 수 있고, 의미 파악에도 어려움이 없다. 사실 중국조차도 한자를 버리고 간자체를 개발해서 쓰고 있다. 이는 어려운 문자를 버리고 쉬운 문자 정책으로 가기 위한 고민이 담겨 있다. 하물며 우리가 중국에서도 쓰지 않는 한자를 쓰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자어를 모르면 전문적 문장이나 일부 문자 소통에 제한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말 그대로 전문적 문장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굳이 초등학교 교과서 등에 한자를 쓸 필요는 없다. 이러한 문제 해결은 중등 교과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문자 소통에 제한을 받는다는 주장도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일부를 해결하기 위해 한자 병기라는 큰 짐을 질 필요는 없다. 이는 일부 외래어를 이해하기 힘든 단어가 있으니 외래어에 해당 나라 표기를 병기하자는 주장과 같다.

초등교과서부터 한자를 병기한다면 새로운 병폐가 또 발생한다.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지만, 한자 학습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아동 학습 단계에서 꼭 필요한 내용이라면 감당해야 하지만, 한자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제 학업성취도평가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면서도 행복 지수가 낮다는 통계가 보인다. 이유는 과도한 학습 부담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과정 등을 조정하면서 노력하고 있다. 교과서 한자 병기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볼 때 교과서 한자 병기는 새로운 사교육으로 변질된다. 사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교육활동 등을 통해서 한자 급수를 따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한글 전용 표기를 반대하고 한자도 함께 표기하자는 사람들은 오직 소리만 알지 뜻을 모른다고 걱정한다. ‘수학여행’과 ‘수학 성적’에서 ‘수학’은 소리는 같지만, 뜻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단어 옆에 한자를 병기하면 정확한 뜻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도 억지다. 예에서 보듯, 일상적인 언어생활 중에 단어의 연결 관계로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과정만 이수해도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신문 등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 국어는 80% 이상이 한자어다. 오랜 전부터 한자를 빌려 섰고, 그에 따라 우리 언어생활을 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한자어를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한자 표기에 있다. 언어생활이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한자를 병기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교육부의 인문·사회적 소양과 인성교육은 논리가 부족하다. 한자 표기가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 문제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교과서에 한자 표기를 병기할 필요는 없다. 특히 한자 표기 병기는 우리의 모국어를 가꾸고 다듬는 상황에는 해가 되는 것이다. 한글 창제는 문자와 언어생활의 주권을 찾으려는 민족적 사건이었다. 그 업적을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과서 한자 병기는 이유를 막론하고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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