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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대하역사소설을 멜로드라마로 전락시킨 '장사의 신'

2015년 9월 23일 방송을 시작한 KBS 특별기획드라마 ‘장사의 신- 2015 객주’(이하 ‘장사의 신’)는 김주영 대하역사소설 ‘객주’를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 ‘객주’는 1979년부터 4년간 연재를 거쳐 1984년 5월 9권짜리 단행본으로 발간되었고, 100만 부 넘게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서울신문 연재를 거쳐 전 10권으로 완간된 것은 2013년 9월의 일이다.

각색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우선 반가웠다. ‘역사재현의 리얼함과 민중의식’이란 비평을 쓰면서 원작소설의 문학적⋅대중적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83~84년 KBS TV로 방송된 ‘객주’를 리메이크한 ‘2015객주’로 새롭게 방송되는 것이어서다.

그러나 ‘장사의 신’은 내용이 더해갈수록 원작과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원래 36부작이 41회로 늘어나 2월 18일 종영한 건 유감스럽게도 높은 시청률 때문이 아니다. ‘장사의 신’은 방송 내내 10%(TNmS 전국시청률 최저 4.1%, 최고 9.9%)를 밑도는, ‘특별기획드라마’치고는 약한 모습이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시청률 부진으로 이어졌겠지만, 가장 큰 실책은 ‘멜로’가 아닐까 한다. 멀쩡한 대하역사소설을 멜로드라마로 만들어낸 것이다. 드라마가 원작소설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기본 흐름 내지 큰 줄기는 같은 맥락이어야 하는데, ‘장사의 신’은 그런 흐름이 없다.

아마 원작자(김주영)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조소사(한채아)와 천봉삼(장혁)의 결혼행각을 예로 들 수 있다. 육의전 대행수 신석주(이덕화) 등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정의로운 거상으로 서기까지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인 봉삼의 사랑이 너무 부각되어 몇 번이고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TV를 끄고 싶었을 정도였다.

원작과 다른 전개는 그뿐이 아니다. 원작에서 최돌이(이달형)⋅선돌이(정태우)⋅송만치(박상면)는 도중에 죽는다. 송만치는 길소개(유오성)에 의해 죽는데, 드라마에선 그러긴커녕 바꿔져 있다. 길소개는 보부상 계율에 의해 죽고, 송만치는 살아있는 것.

또 선돌이는 양반임이 밝혀지는 등 신분 급선회의 반전이 이루어진다. 38회에선 육의전 대행수에 올라 보부청 도접장 봉삼이와 충돌한다. 또 월이(문가영)는 원작에서 최돌이와 혼인, 남편이 죽자 시동생 격인 봉삼과 부부가 되는 인물형이다. 그런데 봉삼이는 자신을 짝사랑해온 개똥이 겸 국사당(김민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조소사 죽음(31회) 후에도 멜로의 끈을 놓지 못한 국사당과의 맺어짐이다. “소도 키우고…유수도 잘 키우고”하는 국사당의 사랑은 닭살 돋음과 함께 뜬금 없는 반전의 전개라 할 수 있다. 임오군란과 개항 등 큼직한 비극적 역사 내지 시대사적 칼날보다도 여자가 봉삼일 내리치는 도저히 ‘대하’같지 않은 멜로드라마 ‘장사의 신’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느 드라마보다 신문의 지원사격이 거의 없었다. 소설을 연재했던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에서만 다루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서다. 대하역사소설 ‘객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프로야구 중계와 연말특집 등 결방이 잦았던 것도 무덤을 스스로 판 꼴이 되었다면 너무 가혹한 지적일까?

보는 내내 의아스러웠던 건 또 있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에 비해 유독 둔한 것인지 남장 여자 개똥이가 활개치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예사로 하는 등 황당함이 넘쳐났다. 그 황당함은 교형(絞刑) 직전 천봉삼을 살려내는 결말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조소사 죽은 소식에 이성 잃는 신석주의 모습도 캐릭터상 충돌을 일으켜 못봐줄 지경이다.

그나마 건질게 있다면 죽음을 앞둔 신석주의 일갈이다. “단 한번만이라도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벼슬아치들이 되란 말이오?”가 그것이다. 오늘의 정치 내지 정치인에게도 통할 수 있는 ‘명언’이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신석주 재산을 둘러싼 김보현(김규철)⋅민겸호(임호) 등 양반들 이전투구도 나름 시사성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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