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 흐림동두천 16.5℃
  • 맑음강릉 14.0℃
  • 맑음서울 18.0℃
  • 맑음대전 15.2℃
  • 맑음대구 17.0℃
  • 맑음울산 15.0℃
  • 맑음광주 16.9℃
  • 맑음부산 17.6℃
  • 구름조금고창 ℃
  • 흐림제주 18.4℃
  • 구름많음강화 17.4℃
  • 맑음보은 14.1℃
  • 맑음금산 11.6℃
  • 구름많음강진군 13.5℃
  • 맑음경주시 13.9℃
  • 맑음거제 15.4℃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내내 불편했던 조선건국 미화 '육룡이 나르샤'

내내 불편했던 조선건국 미화 ‘육룡이 나르샤’

SBS 창사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가 3월 2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50부작 대하드라마로 2015년 10월 5일 시작했으니 6개여 월 동안 안방극장을 제법 뜨겁게 달군 것이다. ‘제법 뜨겁게’라고 말한 것은 지상파 3사가 같은 날 새 드라마로 진검 승부를 펼쳤는데, ‘육룡이 나르샤’가 우승을 차지해서다.

닐슨코리아가 밝힌 3사 드라마의 10월 6일 기준 시청률은 SBS ‘육룡이 나르샤’ 12.4%, MBC ‘화려한 유혹’ 9.7%, KBS ‘발칙하게 고고’ 3.2%다. ‘육룡이 나르샤’의 초반 이런 시청률은 방송 내내 이어졌다. 방송 6회 만에 15%를 넘어섰는가 하면 길태미 역의 박혁권의 인기가 여기저기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정도전(김명민)이 방원(유아인)에게 죽음을 당하는 47회(3월 14일 방송) 시청률은 16.7%로 나타났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를테면 시청률 15% 내외를 유지한 제법 인기 끈 대하드라마로 기록된 셈이다. SBS가 오랜만에 대하드라마로 1건 올렸다고 할까.

사실 SBS는 대하드라마로 큰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 24부작 ‘비밀의 문’(2014)⋅24부작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35부작 ‘대풍수’(2012)⋅36부작 ‘제중원’(2010)⋅39부작 ‘자명고’(2009) 등 최근 몇 년 동안 방송되었던 SBS 대하드라마들이 대박을 친 경우는 없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인기도 첨엔 예측불가였다. ‘정도전’(KBS)이라든가 ‘대풍수’ 등에서 이미 다루었던 시대와 인물이란 기시감이 걸림돌이었던 것. 그러고 보면 같은 인물이라도 어떻게 빚어내느냐에 따라 드라마 성패가 갈림을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이정표로 우뚝 선 ‘육룡이 나르샤’가 되었다.

그 육룡부터가 새롭거나 다소 기괴한 발상이다. 이성계(천호진)⋅정도전⋅이방원까지는 익숙하겠는데, 나머지 분이(신세경)⋅이방지(변요한)⋅무휼(윤균상) 3룡이 그렇다. 필자로선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민중을 통한 이방원 내지 이성계에 대한 미화 바로 그것이다.

글쎄 유아인의 대중적 인기에 힘입은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특히 이방원 미화가 심해 보인다. 작가의 상상력이야 자유이긴 하지만, 이방원이 정몽주(김의성)를 죽이게 사주하고, 정도전과 세자 방석까지 죽인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이복 동생 세자를 죽인 것은 만고에 씻지 못할 대죄라는 것이 일반적 역사인식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지금 와서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그릇된 사관의 드라마가 그려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민중 포함 6룡이라 새로운 전개이긴 하지만, 결국 2015년판 용비어천가나 다름 없는 게 아닌가? 어떻게 보든 그것은 시청자의 자유지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가장 거슬리는 것 중 하나도 그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민중이 전하는 정치권 소식이다. 오늘날 같은 인터넷, SNS 세상도 아닌 여말 선초시대에 일개 백성들이 상왕전하가 이성계에게 하사품을 내린 것(28회 방송)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분이 조직이 있다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 외 임금의 교지를 받드는 정도전이 뻣뻣이 선 채라든가 태조와 방원이 원형 탁자에 마주 앉아 얘기 나누기 등 사극의 기본기마저 파괴되는 등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또 이방원의 책사인 하륜(조희봉)에 대한 묘사가 기존 드라마보다 너무 약해 보인다. 방원에게 언사로도 질질 끌려다니는데, 그게 책사의 몫은 아니다.

쿠데타(무혈혁명) 당위성에 포커스가 맞춰진 탓인지 죽음도 너무 ‘신사적’으로 그려져 또 다른 미화 논란이 빚어질 법하다. 정몽주는 어떤 저항의 몸짓도 없이 그저 맥없이 죽음(35회)을 당한다. 정도전 역시 최후를 앞둔 사람같지 않았다. 일본 헌병에게 최후를 맞는 독립군이나 의병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결말부도 좀 견강부회스럽지 않나 생각된다. 우선 마지막 선물인 양 척사광(한예리)⋅길선미(박혁권)⋅이방지⋅무휼 등 고수의 칼쌈 액션이 진동하지만, 좀 뜬금없어 보인다. 착하게 살던 척사광이 다시 칼을 휘두른 것도 의아한데 피아간 구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야말로 그냥 칼춤에 불과해 보여서다.

견강부회의 절정은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까지 그려진데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방원이 정몽주⋅정도전⋅방석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 땅에 한글은 어림도 없다는, 뭐 그런 얘기인 셈이다. 다만, 무휼과 분이의 떠남을 통한 이방원 비판의 시사성, 거기에 더해진 ‘정치란 나눔’이라는 메시지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겠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