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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승으로 살고 있을까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가는 수많은 이 땅의 선생님들은 과연 행복할까?

행복은 학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거늘 이 사회는 선생님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행복하게 만들라'고 요구만 할 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은 돌아온다. 지금 선생님들은 스승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근로자로 살고 있을까.


만물이 아름다운 오월,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하여 거의 한 달 내내 우리는 뭔가를 또 누군가를 기념한다. 학교 안(팎)의 스승을 기념하는 날도 촌지와 선물 그리고 행사와 휴교라는 고민을 넘어 올해도 우리를 찾아온다. 이 무렵 몇몇 선생님들은 포상을 받고,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보면서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어떤 선생님은 처음 교단에 섰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르쳤던 아이들을 추억한다.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우리는 대개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차마 스승이라는 호칭을 쓰기에는 뭔가 뒤끝이 당기는 듯하고, 선생님 외에 다른 호칭으로 불리면 왠지 우리 자신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몸에 맞지 않는 옛날 옷 같다. 올해 초 명예퇴직 신청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선생님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로 들어섰을 때의 기대와 포부가 사회로부터 옛날 옷으로 취급당하고,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선생님이 교단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례한 학생과 학부모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무기력감, 지금 이 아이들이 다시 학부모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절망감,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인지 공문서를 처리하는 행정 직원인지 알 수 없는 하루 일과를 계속 견뎌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사회는 연금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무슨 엄살이냐며 학원보다 더 잘 가르치라며 타박한다. 바뀌는 정부마다, 장관과 교육감에 따라, 시대에 맞춰 창의적인 학생을 길러내라고, 혁신하고 행복하게 만들라고 요구한다. 둘러보면 온갖 좋은 말들이 넘쳐난다. 이에 따라 입시는 매년 바뀌고, 교육과정도 매년 다르고, 학교에서 해야 할 프로그램은 매년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선생님들이 많다. 밥을 위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호봉까지만 버티며 눈감고 귀 막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삶이 아니다. 행복은 학생에게만 필요한가. 학생이 행복한 학교는 논의해도 선생님이 행복한 학교는 어디에서도 논의하지 않는다. 학생의 꿈과 끼는 말해도 선생님의 꿈과 끼는 말하지 않는다. 행복은, 꿈과 끼는, 선생님에게 먼저 필요하고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도 선생님을 닮아간다. 그러나 선생님의 꿈과 끼를 위한 정책은 없다. 요구만 있다.

직업인에게 성직자의 소명의식을 요구하거나 성직자를 직업인 취급하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선생님 스스로 변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가 선생님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처참한 현실 앞에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지 확신하기 어렵다. 고르기아스의 매듭처럼 엉켜 있는 우리 현실의 어느 한 부분을 잘라야 매듭이 풀릴 것 같지만 어느 고리를 잘라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광야의 초인이 나타나길 기다려야 할까. 작년 이맘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 교수님의 반성문이 회자되며 우리에게 선생님이라는 직업과 소명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스승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근로자로 살고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스승으로 아니면 근로자로. 답은 개인의 몫만이 아니다. 국가 교육 정책의 몫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생님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각 단계를 맡아서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흐름은 적어도 앞으로 십년간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나쁜 결과를 내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사람이 국가경쟁력의 근본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님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그나마 믿을만한 언덕이다.




김경범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대학교대학원에서 스페인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으로 활약 당시에는 미래 한국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인재상’확립에 힘썼다. 교육부 교육과정심의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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