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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뜯어 고침이 없이 너를 뜯어 고쳐 보려는 꿈
- 제1차 교육과정의 탄생(2)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교육과정은 미국에서도 이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듀이의 경험중심교육과정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였다. 100년 이상의 공교육 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과 시도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나라 교육의 차이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새교육’이라는 낯선 요리를 먹어보고 충분히 소화시킨 후, 이 요리를 소개하거나 팔아야 했다. 그러나 “교육이 가야 할 목적지점에 대한 명료한 인식 없이 외국을 모방한 커리큘럼 제정은 ‘소나무 위에 대나무를 접붙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국 교육사절단의 권고와 교육 관료들의 행정적 판단에 따라 ‘선(先) 시간배당기준령 채택, 후(後) 국가교육과정 공포’ 순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어른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이는 꼴이었다.

“너(한국 교육)를 일본으로부터 도로 찾았을 때,
그리고 너를 내 손으로 길러온 지 10년이 넘는 오늘,
내 손으로 길러 왔다고 하기가 부끄럽구나. 병든 너다.”

정확하게 60년 전인 1956년 1월, <새교육> 병신년 신년호(제8권 1호)에는 매우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당시 중앙교육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성내운의 글 ‘교육의 새해, 문제의 교육 : 병신년 교육계의 과제’라는 독백이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열한 살이 되는 한국 교육(너로 의인화)에게 바치는 참회의 글이다. 당시 교육은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외국인과의 대화 형식을 통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유했다.

“한국에서 오셨다지요? 제가 하나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비(比)입니다. 대체로 말하여 몇 대 몇이나 될까요?”
“예,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공립학교도 없고, 사립학교도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공립도 없고, 사립도 없다니.”
“한국에 있는 학교란 모두 사친회립(師親會立) 학교입니다.”


제도뿐인 의무교육제에 대한 조소, 교육 불평등에 대한 비판, 정부와 사립재단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공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월사금을 받는 학교, 사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재단에서 교육재정을 충당하지 않는 학교, 입학을 둘러싼 부정과 금품 수수 비리가 횡행하고 있던 시대 교육의 아픔을 젊은 교육학자는 이렇게 비판하고 있었다. 성내운은 교육자로서의 자기비판을 이어갔다.


너를 꼬마 어른의 모임으로 여겨서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학생 시절을 뜻있게 살게끔 도와주지 못한 나를 생각할 때 얼굴이 붉어짐을 어찌하랴. 하기야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발악이기도 하였지만, 그 바람에 학생 그 시절을 살지 못하였구나. 한 달은 고사하고 반 달이 못되어 잊어버릴 그까짓 토막지식을 외우다가 그 귀중한 한 해를 보낸 생각을 하면 네 앞에 다시 설 면목이 없을 지경이다. …(생략)… 여덟 살 나는 어린이는 여덟 살을 살아야 할 것이오, 열여덟 살 나는 학생은 또한 ‘열여덟 살을 살아야 할 것이다. 애당초 사람은 그럴 권리를 타고 난 것이 아니었더냐. …(중략)… 나의 새해는 저 입에 옮기기도 지긋지긋한 시험 준비를 때려눕히고, 학생이 보람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해이리라.


커리큘럼 개조와 관련된 의견 개진과 토론의 장, <새교육>
젊은 교육자 성내운이 이런 자성의 목소리를 내도록 한 계기는 바로 전년도 8월 1일에 공포된 제1차 교육과정이었다. 전쟁 중이던 1952년부터 피란지 부산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커리큘럼 개조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새교육>은 커리큘럼 개조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토론되는 장이었다. 당시 커리큘럼 개조에 관심을 두고 있던 전문가와 교사들의 의견은 세 가지로 모아졌다. 이것은 새로운 국가교육과정이 따라야 할 방향이기도 하였다. 첫째는 새로운 국가의 교육적 이념 정립의 필요성이었다. 즉, 교육 혼란 배경이 교육철학의 부재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둘째는 지식중심교육이 아닌 경험중심교육, 생활중심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서두른 나머지 외국 제도의 형식적 모방에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점이었다. <새교육>의 입장이기도 하였으며 이것은 당시 교육자 7만 명의 목소리였다.

<새교육>의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과 제언은 1955년에도 지속되었다. 제7권 2호에 실린 ‘교과서개편에 대한 취지’(신태현), ‘미국교육에 있어서의 듀이 맹신’(짠 에이 하아든, 고광만 역, 제7권 3호에 연재), ‘국정교과서 생산의 기초 확립’(이호성), ‘교육문제해설 : 코아 코리큘럼’(편집실), ‘문화에 봉사하는 교육과정 구성’(하롤드 벤자민), 제7권 6호에 실린 ‘교육문제해설 : 교과서 문제’(편집실), 제7권 7~8호에 실린 ‘듀이 교육사상과 한국의 교육’(오천석), ‘교육문제해설 : 과외활동’(편집실), 제7권 8호에 실린 ‘교육과정과 사회적 요인’(김호권) 등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했던 1차 교육과정
그러나 공포된 제1차 교육과정은 이 세 가지 방향을 따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제1차 교육과정은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담고 있지 않았다. 즉, 교육을 통해 양성하려는 바람직한 인간상, 이들이 만들어갈 바람직한 사회 모습을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각급 학교별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교육내용을 제시하는 데 급급하였다. 과목별 교육과정이 따라야 할 총칙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이 공포되기 1년 4개월 전인 1954년 4월 20일에 문교부령 제35호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사범학교의 교육과정 시간배당기준령이 먼저 공포되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출발을 하는 모습이었다. 제1차 교육과정은 이미 1년여 전에 발표된 과목별 시간배당기준의 단순한 종합에 불과하였다.

오랜 전통인 지식중심교육에서 벗어나 생활중심·경험중심의 새로운 교육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에 대한 교사 및 교과서 집필자들의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다. 즉, ‘새교육’이라는 낯선 요리를 먹어보고 충분히 소화시키는 경험을 한 후에 이 요리를 소개하거나 팔아야 했지만, 그런 준비 없이 외국에서 좋은 요리라고 하니까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기 위해 요리를 팔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모든 교과목이 따라야 할 기본태도 7개 항에는 “아동이 각 방면의 욕구를 고루 충당하며, 그 개성을 최고도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었지만, 이것은 선언에 그쳤을 뿐 구체적으로 교육내용에 구현시키는 방법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새로 등장한 사회생활과가 이런 졸속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 새로 등장한 사회생활과는 공민·역사·지리 과목을 통합하되, 이들 세 영역을 관통하는 ‘미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 과제’를 중심에 배치하여, 다른 과목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즉, 미국의 사회생활과는 ‘통합’보다는 ‘중핵과 선도’에 더 의미가 있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측면을 도외시된 채 단순한 과목의 통합에 머물렀다. 즉, 정신은 배제된 채 행해진 체형만의 모방이었다. 흉내 내기 수준의 제1차 교육과정의 공포를 지켜본 성내운은 우리나라 ‘새교육’의 초기 역사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 와 있는 ‘새교육’입니다. 그 새 나는 여러 군데를 찾아다녔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 안 가본 데가 없습니다. 산골짜기 들판할 것 없이 다 가보았고 심지어는 섬까지도 찾아갔었으니까요. 그 바람에 구경은 실컷 하였습니다. 산 구경, 들 구경, 그리고 사람 구경, 그중에서도 교육자 구경….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이 한국의 교육자이더군요. 왜냐고요? 찾아가기만 해 보세요. 나를 환영 안 하는 곳이 있나, 나를 환영 안 하는 사람이 있나, 특히 교육자치고 말입니다. 그런데 구경만 하고 사지는 않거든요. 웬 칭찬은 그리도 하든지 내가 소개되고 나면 박수 소리가 터지도록 요란스럽답니다. 그런데 막상 나를 사는 교육자란 없단 말씀입니다. 그러니 불가사의라고 안 할 수 있겠어요? 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야 하나요. 열에서 하나는 못되어도 백에 하나는 나를 사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는 그들 중에는 자기가 먹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다가 남에게 되팔려고 사는 이가 있다 보니, 나를 사 먹고 새 교육자가 되는 그런 교육자란 천에서 하나는 될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이 고대하는 것은 나를 구경만 하고 칭찬만 하는 그런 교육자가 아닙니다. 나를 사서 손에 들고만 다니는 그런 교육자도 아니지요. 나를 휘둘러보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의 학생은 한국의 교육자가 나를 먹고 소화시켜서 새 교육자가 되어 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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